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2. 일반적 레퀴엠에 대한 이해
1) 근원
레퀴엠(Requiem) 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 유래되어 고레고리안 단선율로 불리다가 15세 초 중세 후반에 다성음악 양식으로 만들어지며 서양 음악 발전에 두드러지게 공헌하게 되었다. 이 레퀴엠을 다성음악으로 만든 최초의 작곡가는 기욤 뒤파이(Guillaume Du Fay, 1397-1474)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현존하지 않고 그 뒤를 이어 만들어진 오케겜(Johannes Ockeghem, 1420-1407)의 레퀴엠이 최초의 다성음악으로 남아있다. 이어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 or 1526 – 1594) 로부터 오늘날 엔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작곡가들은 가톨릭 종교에 심취되어 있지 않거나 특별히 종교적 신념이 없더라도 레퀴엠을 자신의 레퍼토리로 만들게 되었다. 그 이유는 레퀴엠 가사는 그 배경이 되는 의식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제공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레퀴엠을 작곡할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상실의 슬픔과 분노, 미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마지막 심판에 대한 공포를 음악에 담아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취해왔다.

2) 대표적 작품들
레퀴엠 장르의 대표적 작품들 가운데 유사한 특징을 지닌 작품들을 3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려 한다. 첫 번째는 가사의 극적인 성격을 강조하여 대곡의 작품을 만든 것은 고전 시대 모짜르트(W.A. Mozart,1756-1792)의 레퀴엠 (Requiem in D minor, K. 626) 낭만 시대의 헥터 베를리오즈( Hector Berrios, 1803-1869) 의 레퀴엠(Grande Messe des Morts Op.5)과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레퀴엠( Messa da Requiem Op.48)를 들 수 있다.

(1) 모차르트(W.A. Mozart,1756-1792)의 레퀴엠 (Requiem in D minor, K. 626)
모차르트가 이 작품을 쓰게 되었던 동기는 1791년 그의 생애 마지막 해의 일이다. 그가 마지막 오페라 마적(The Magic Flute)을 끝낼 무렴인 그 해7월, 어느 낫선사람이 작곡을 의뢰(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 Count Franz von Walsegg) 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발제크 백작의 부인이 그해 2월 20세의 짧은 생을 살다 마감하게 되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발제크 백작이 대리인을 시켜 모짜르트에게 의뢰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많이 궁핍해 하던 모차르트는 선뜻 그 제의에 승낙하였지만 그해 오페라 마술피리가 초연된 9월 30일 이후가 되어서야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병상에 눕게되어 12월 5일 생을 마감하면서 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기되었다. 이후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 가 스승의 스케치를 이어받아 완성하였고 이듬해인 1792년 2월 의뢰자에게 전달, 발제크 백작의 아내인 안나(Anna) 가 사후 1년 뒤인 1792년 2월 초연하게 되었다. 이 곡은 모짜르트 다른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작품을 시작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되었다.

(2) 엑토르 베를리오즈( Hector Berrios, 1803-1869) 의 레퀴엠(Grande Messe des Morts Op.5)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1830년 7월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식전에서 폭탄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제로 사용하기 위해 1837년 당시 내무부 장관 이었던 아드리앙 드 가스파레(Adrien de Gasparin, the Minister of the Interior)가 위촉, 1837년 완성된 작품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그 해 7월위령제에 연주 되지 못하고 12월 5일 담레몽 장군과 콘스탄틴 공성전에서 전사한 병사들(General Damrémont and the soldiers)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초연되었다. 이 곡은 대규모 음악 구성(200명 이상 합창, 4개의 오케스트라, - 8쌍 팀파니)으로 워낙규모가 크고 방대해서 국가적 특별한 행사에만 어울린다. 가사의 종교적 의미보다 가사의 음악적 분위기를 강조한다. 거대한 합창과 변화무쌍한 오케스트라의 색채감과 웅장함이 있다.

(3)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레퀴엠( Messa da Requiem Op. 48)
베르디는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이탈리아 민족 시인 만쪼니(Alessandro Manzoni ) 가 1873 년5월 죽게 되자 그 해 6월 파리로 건너가 바로 작곡에 전념하게 되어 이듬해인 1874년 5월, 1주기 추모식에서 초연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한편의 오페라와 같은 대규모의 음악으로 작품 전면에 흐르는 음악적 감동은 모든 것을 수용한 거대한 종교음악의 형상을 보여준다. 특히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진노의 날”은 절규에 가까운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대화는 가위 환상적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