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 데카당스 과시
벨 에포크 시절 강한 향수와
문화예술 선도 이미지 강화
경제적 이익 얻겠단 무리수

◈파리 올림픽: 과도한 PC주의로 뒤틀린 개막식과 경기 운영  

제33회 프랑스 파리 하계 올림픽이 7월 26일 개막했다. 프랑스에서 19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100년 만에 개최된 하계 올림픽으로, 프랑스인들 입장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 행사라 볼 수 있다.

또 이번 하계 올림픽은 2021년 개최된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파행적으로 운영된 가운데,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비로소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올림픽은 개막식부터 행사 진행까지, 여러 구석에서 PC(Pol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 목이 잘린 마리 앙투아네트, 이교적이고 젠더주의적 방식으로 뒤틀린 '최후의 만찬' 등 다양성 이념을 명분 삼아 유럽 구체제 전통 및 기독교 문화 전통에 대한 조롱과 악의가 뒤섞인 퍼포먼스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에 대해 전 세계 관람객 및 시청자들은 불편하고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세계 문화예술 선도국가를 자처하던 프랑스가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렇게 유치한 예술적 감각을 보여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이 한심한 수준의 예술성에 더해, 전 세계인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동조하는 PC주의 다양성 이념을 강요하는 억지스러운 윤리적 우월감 역시 불쾌하다는 감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행사 진행상으로도 원칙 없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남성 복싱 선수가 여성부 경기에 대거 출전하는 촌극이 눈길을 끈다. 이에 여성 선수들이 제대로 된 경기를 치뤄보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패배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프랑스 올림픽이 유독 PC주의로 인해 기괴한 예술성과 경기운영 양태를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리우와 도쿄 올림픽 이후 PC주의가 급속하게 전 세계로 퍼진 것 때문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파리 올림픽이 유독 PC주의로 뒤범벅된 모습을 보이는 데는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화사적 배경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전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이지만, 프랑스 근현대사를 돌아봤을 때 이 나라가 진정으로 강대국다운 면모를 보인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17세기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 당시 프랑스는 분명 유럽의 판도를 좌우하는 서유럽 최강대국이었다. 프랑스가 이런 국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을 골수까지 착취한 앙시앙 레짐의 기형적 경제 구조에다 천혜의 자연조건에 힘입은 유럽 농업의 절대 강자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18세기 절대 왕정 쇠퇴기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좋은 말로도 강자라고 불리기 어려운 국가였다. 나폴레옹이 잠시 서유럽 상당 지역을 점령하는 위업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러시아 원정에서 처참한 실패를 맞이한 후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을 좌우하는 일은 없었다.

▲영화 <나폴레옹>(2023)의 한 장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잠시 서유럽 상당 지역을 점령하는 위업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러시아 원정에서 처참한 실패를 맞이한 뒤로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을 좌우하는 일은 없었다.▲영화 <나폴레옹>(2023)의 한 장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잠시 서유럽 상당 지역을 점령하는 위업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러시아 원정에서 처참한 실패를 맞이한 뒤로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을 좌우하는 일은 없었다.

◈프랑스 문화사: 약화되는 국력 때문에 더 강조되는 문화예술 선도국 이미지 

18-19세기 프랑스는 유럽 바깥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현지인들을 착취하며 위세를 부렸지만, 유럽 본토에서는 영국과 독일의 위세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보불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모두에서 프랑스는 독일에 크게 져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독일 파시즘과 소련 공산주의를 견제할 주요 국가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아 승전국 위치도 확보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끼어들 수 있었지만, 승전국답지 않은 승전국이라는 애매한 위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하에서 전 세계에 확보하고 있던 식민지도 거의 대부분 상실했다. 이로써 프랑스는 과거 유럽 전역과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식민지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한 열강으로서의 추억과 문화예술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국가의 위상을 지키고 나라 경제를 꾸려 나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프랑스가 항공, 에너지, IT 산업, 농업 부문에서 상당한 강국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명품 사치재와 관광 역시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전 세계 1위 관광국가로서 매년 8,000만 명 이상이 이 나라를 방문해 관광 비용을 소비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는 좋은 국가 이미지가 곧 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조건이 된다.

패션과 예술을 선도하는 국가로서 프랑스의 이미지는 주로 19세기 후반에 형성됐다. 보불전쟁 이후 유럽, 특히 프랑스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큰 전쟁이 없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아름다운 시절)'가 펼쳐졌다. 이 시기 프랑스는 문학과 미술 부문에서 최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이는 프랑스 사회가 유럽 전역에서 그나마 사상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관용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벨 에포크 시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반 고흐. 프랑스 파리 근교 몽마르트와 프랑스 남부 아를르에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프랑스 벨 에포크 시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반 고흐. 프랑스 파리 근교 몽마르트와 프랑스 남부 아를르에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프랑스인들은 이 벨 에포크 시기의 프랑스에 강한 향수를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벨 에포크 시기 이후의 프랑스는 냉전이 끝나기 전까지 거의 100년간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규모 전쟁과 핵전쟁 위협, 그리고 식민제국 해체를 겪으며 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계속 위축되는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벨 에포크 시기 제국주의 열강이자 문화예술 강국으로서 프랑스의 이미지는 프랑스인들의 국가적 자존심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실제 산업 영역에서도 큰 이익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데카당스(Decadence)란 벨 에포크 시기 프랑스 문화예술계 일각에서 확인됐던 문화적 현상이다. 전통적 윤리의식을 과격하게 무너뜨리는 퇴폐적 예술 조류를 일컫는 말이다. 데카당스는 당시 프랑스 예술의 전 세계적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프랑스는 미국과 일본 같은 현 대중문화 강국을 의식한 듯, 원래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문화예술 선도국 위치를 확인시키려 새로운 형태의 데카당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기형적 다양성 이념에 경도된 PC주의이다.

프랑스인들이,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다양성 이념 수호에 무슨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있어 개막식이나 경기운영을 이런 식으로 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실 프랑스는 톨레랑스의 나라라는 이미지와 달리, 유럽 전체로 보더라도 인종차별 지수가 생각보다 낮지 않은 국가이다(독일, 네덜란드, 영국보다 프랑스의 인종차별 지수가 더 높다).

파리 올림픽이 PC주의를 짙게 반영한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랑스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예술 선도국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해 패션 사치재와 관광 산업에서 이익을 보겠다는 경제적 의도일 것이다. 이는 쇠락해 가는 국가 역량과 이미지를 제고해 보려는 무리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문제 장면.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PC주의를 짙게 반영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랑스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예술 선도국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해서 패션 사치재와 관광 산업에서 이익을 보겠다는 경제적 의도이다. 이는 쇠락해가는 국가 역량과 이미지를 제고해 보려는 무리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문제 장면.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PC주의를 짙게 반영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랑스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예술 선도국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해서 패션 사치재와 관광 산업에서 이익을 보겠다는 경제적 의도이다. 이는 쇠락해가는 국가 역량과 이미지를 제고해 보려는 무리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