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블버리즘(Bulverism) 의 영향이 일상의 여러 일들에 혼탁함을 더하게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서 드리는 찬양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삼위일체를 경배하는 찬송입니다. 삼위일체론은 기독교 신학에 있어 가장 뿌리요 그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의 제자들과 속사도들이 목숨을 던지며 삼위일체 복음을 확장해 오던 가운데 로마의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로마종교나, 영지주의(Gnosticism) 등의 영향으로 삼위일체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초기 기독교 성지자 중 한 명인 아리우스(arius, 250/256 – 336년)가 중심이 된 아리우스 파에 의해 삼위일체론은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로마의 핍박이 종식된 후 첫 종교회의인 니케아 공의회(First Council of Nicaea, 325년) 에서 대두된 가장 큰 논쟁은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신성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건이 가장 큰 화두였고 그것이 결국 당시 알렉산드라아의 대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와 그를 추종하던 세력에 의해 삼위일체론을 정론화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과 정통 수립 과정은 신학적 논쟁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예배와 그 안에 드리는 찬양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4세기 이후 교회들에서는 삼위일체 영광송 (Trinitarian Doxology) 을 찬양하는 일에 더 집중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 찬양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세 절에 걸쳐 삼위 하나님을 나누어 찬양하다 마지막 사절에서 삼위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찬송가 중 위와 같은 형태의 가장 대표적인 삼위일체를 찬양하는 찬송은 전능왕 오셔서(Come, Thou Almighty King) 입니다. 이 찬송에 담긴 역사적 사건은 또 한 번 오늘을 사는 예배자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당위성을 가슴에 담게 하는 큰 교훈을 줍니다.
미국의 독립 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로 알려진 롱아일랜드 (Battle of Long Island) 가 1776년 8월 22일부터 30일까지 일어났던 일로 미국이 독립(1776년 7월 4일)
선언한 지 약 일개월 여 지난 후 미국의 군대가 영국군과 싸운 첫 전투입니다.
이 기간 중 주일날 미군과 영국군 모두 교회에 참석했는데, 작은 동지애와 긴장감이 공존하는 자리였습니다. 예배가 끝날 무렵, 군인들은 회중에게 '은혜로우신 우리의 왕을 구하소서' - (영국의 국가)를 부르라고 명령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오르간 연주자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인들은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God save our gracious King, Long live our noble King…
하나님 은혜로우신 우리 왕을 구하시고 우리의 귀하신 왕 만세!
하지만 미국 회중들이 부르는 삼위일체 찬양에 그 소리가 완전히 묻혀버렸습니다
Come, Thou Almighty King, Help us Thy name to sing, 전능왕 오셔서 주 이름 찬송케…
이때 불리워진 튠은 1745년 만들어진 영국의 네셔널 안템 입니다. 1575년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의 『사회 예배를 위한 찬송집』 제22판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그 당시 이 튠울 그대로 하고 가사만 바꾸어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같은 곡 안에 두 개의 가사가 공존하였습니다. 이 찬송은 작시자 비밀에 대한 의심스러운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찬송가와 영국의 국가와의 연관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튠은 Italian Hymn” 이라는 곡조로서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펠리체 자르디니 (Felice Giardini , 1716-1796)가 1769년에 작곡한 것입니다. 이 작곡가는 이탈리아 에서 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며 크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때 개신교의 철저한 후원자였던 헌팅던 백작 부인의 요청으로 이 튠을 작곡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흔들릴 때 가장 첫 번째로 부각되었던 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출발이었음을 보게 되며 또 오늘날까지도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위에 거론했던 두 역사적 사건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아타나시우파에 의해 정립된 삼위일체론은 이후 기독교 예배자들에게 찬송이 되어 지속적으로 불리며 그 당위성을 가슴에 새기게 하면서 흔들림 없이 삼위일체 신학을 오늘날 까지 지속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또한 1776년 8월 마지막 주일 롱아일렌드 어느 교회 예배에서 찬송가와 애국가라는 서로 다른 두 곡의 노래는 각 나라의 충성심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은혜로우신 왕'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들이 결국 승자가 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오늘을 사는 예배자들이 삼위일체 영광송 (Trinitarian Doxology)이 중심이 된 찬양을 을 끊임없이 고백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부합된 원초적인 진리 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