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 고대 근동 자연환경 반영
맥스, 아브라함의 영화적 재현
퓨리오사, 아담과 하와 재구성
할리우드나 넷플릭스 작품들,
성경 기피하거나 적대하던 중
성경 기사와 인물 반영 반가워

◈영화 속의 종말: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서사 공식 정립한 <매드 맥스> 시리즈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1979년 처음 개봉된 <매드 맥스> 3부작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매드 맥스> 시리즈의 소프트 리부트 작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2015년 개봉된 후 9년 만에 관객에게 선보인 작품으로, 개봉 전까지 이 시리즈 팬들에게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된 현재 이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시리즈 설정을 훌륭하게 이어받은 진중한 서사에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인공인 퓨리오사(안야 테일러 조이 분)의 연기도 좋지만, 그보다 메인 빌런 디멘투스 역을 맡은 크리스 헴스워스의 연기가 크게 돋보이는 작품이다. 역시 영웅에 관한 전설을 그리는 영화에는 치가 떨리도록 악독하면서도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매력적인 악역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매드 맥스> 시리즈는 인류가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식수, 그리고 에너지 자원을 두고 벌인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인해 과거 문명이 거의 궤멸 수준으로 파괴되고, 소수 생존자들만이 살아남아 처절한 혈투를 벌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정부 체계는 모두 붕괴되고 강력한 군사력과 얼마 남지 않은 자원을 확보한 독재자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이루어 군웅할거하는 시대상이 펼쳐진다.

1979년 <매드 맥스> 1편이 개봉되기 전에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 영화는 여럿 존재했다. 하지만 <매드 맥스> 시리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서사 및 설정 공식을 정립한 작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사막 지형, 가죽 자켓, 기괴하게 개조된 바이크와 자동차를 활용한 추격전 같은 설정은 이후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나 드라마에서 오마주됐다.

이번에 개봉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역시 시대 및 공간배경 설정에 있어 시리즈 전체 설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권력에 미쳐버린 군벌 부족들과 달리, 그나마 과거 문명의 유산이 살아남아 있는 곳 '녹색의 땅' 혹은 '풍요의 땅'이라 불리는 곳에서 자란 어린 소녀 퓨리오사는 그곳을 염탐하던 바이커 갱단들에게 붙들려 가고, 그런 퓨리오사를 찾아 바이커 갱단을 추적하던 퓨리오사의 어머니는 그들의 수장 디멘투스에 의해 살해된다.

이런저런 사정들 때문에 어머니의 원수이자 독재자 디멘투스의 무리에서 성장한 퓨리오사는 출중한 전투력과 치밀한 계획을 앞세워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디멘투스를 처단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해당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나지만, 그렇다 해서 퓨리오사 본인과 인류의 처지가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류는 원초적 폭력으로 점철된 생존 경쟁의 굴레 아래에서 고통받고, 과거 문명을 복원할 희망은 점점 더 멀어져 가기만 한다. 퓨리오사 개인 입장으로도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디멘투스를 처단했지만, 그녀의 또 다른 적수가 되는 임모탄 조를 상대해야 하는 앞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메인 빌런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와 그의 수하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메인 빌런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와 그의 수하들.

◈영화 속 성경: 대중문화계에 큰 영감을 준 성경적 모티프와 인간 이해

<매드 맥스> 시리즈 모든 작품은 조지 밀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호주 태생의 밀러 감독은 정형외과 의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처음 <매드 맥스> 시리즈를 발표했던 1979년은 아직 미국과 호주 사회 모두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이 대중문화계에서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던 때였다. 당시는 아직 냉전 시기이다 보니, 마르크스주의 반종교사상으로부터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서방 자유진영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인류 문명의 종말이라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당연한 듯 성경 일화들이 작품 설정과 서사 속에 직접적으로 반영됐다. 인류 멸망 이후 지구의 풍경이 척박한 사막 지형으로 변한다는 설정은 성경에 등장한 고대 근동 지역의 자연환경, 특히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배회했던 아라비아 사막의 이미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막에서 서로 생존을 위해 혈투를 벌이는 갱단 무리의 설정은 성경 속 사막 지역에서 자주 소규모 전쟁을 벌이던 부족국가들의 모습을 빌려왔다.

성경에 기록된 고대 근동 지역의 삶의 조건을 연상시키는 <매드 맥스> 시리즈의 이런 설정들은 단지 성경으로부터만 빌려온 것은 아니다. 사막 지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좋지 않은 인식은 중세 유럽사를 통해 더 강화된 면이 있다.

중세 유럽은 훈족이나 마자르족처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세를 키운 유목 민족의 침략, 그리고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의 침략에 계속해서 시달렸다. 이런 경험 때문에 유럽인들은 문명에 위협이 되는 야만인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사막에서 부족생활을 하며 말을 잘 타는 유목 민족을 떠올리게 되었다.

비슷하게 과거 한반도나 중국에서는 야만인이라 하면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만주 등지에서 세력을 키운 흉노, 말갈, 거란, 몽고, 여진족을 떠올리곤 했다.

<매드 맥스> 시리즈 원 주인공 맥스 로카탄스키의 행적 역시 다분히 성경적 인물의 이미지, 특히 아브라함의 이미지가 짙게 반영돼 있다. 맥스는 원래 문명 사회의 경찰관으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인류 문명 붕괴와 폭주족 범죄자들의 공격 때문에 황폐화된 사막을 떠돌아다니며 악을 응징하는 영웅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풍요로운 도시국가 우르(Ur)의 주민이었다가 척박한 사막 지역을 돌아다니는 나그네로 변모한 아브라함의 삶을 연상시킨다.

▲<매드 맥스> 시리즈의 원 주인공 맥스 로카탄스키. 성경의 아브라함과 같이 풍요로운 문명 사회의 거주민이었다가 척박한 사막 지역을 돌아다니는 나그네로 변모한 인물이다.
▲<매드 맥스> 시리즈의 원 주인공 맥스 로카탄스키. 성경의 아브라함과 같이 풍요로운 문명 사회의 거주민이었다가 척박한 사막 지역을 돌아다니는 나그네로 변모한 인물이다.

이번에 개봉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매드 맥스> 시리즈 전체에서 처음으로 맥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인유(allusion)는 계속된다.

맥스가 아브라함의 영화적 재현이라면, 퓨리오사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여자의 영화적 재구성이라 볼 수 있다.

지구 전체가 황폐화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녹음이 우거지고 농경이 가능한 땅, 거기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된 뒤 고난과 죄악이 가득한 사막에 정착해야 했던 퓨리오사의 삶은 아담과 여자의 실낙원 기사를 연상시킨다.

이는 미국의 기독교 언론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영화 평론에서도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밖에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 그려진 퓨리오사의 삶이 호머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인유한 것이라는 평론도 있다.

최근 할리우드나 넷플릭스에 의해 제작된 작품들 대부분이 성경 모티프를 기피하거나 적대시하는 와중에, 이번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반갑게도 성경의 기사와 인물들을 적극 인유해서 대중문화 속에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선보이고 있다.

이는 <매드 맥스> 시리즈 최초 개봉 시기가 아직 서구 대중문화계에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1970년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리즈가 당시 서사 설정을 유지하는 한, 후속편 역시 성경적 모티프와 인간 이해를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퓨리오사 이야기가 창세기의 실낙원 기사를 인유했다고 설명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작품 평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퓨리오사 이야기가 창세기의 실낙원 기사를 인유했다고 설명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작품 평론.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