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지난 2021년 8월 경에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뉴스 중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을 붕괴시키고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 세력들에 대한 보도였습니다. 이들의 무자비한 행동들로 인해 세계 사람들에게 큰 지탄을 받으며 아픔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최연소 여성 시장 자리파 가파리(Zarifa Ghafari 1994 - )와 최초의 여성 교육부 장관 랑기나 하미디(Rangina Hamidi,1978 - )라는 두 여성의 리더십이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아프간 여성 인권의 상징이라고 일컫는 약관 26살의 자리파는 마이단샤르 지방의 시장에 임명되면서 아프간 최초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당시 탈레반이 아프카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날 그녀는 “나는 이 곳 카불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라고 외치며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 한 명의 여성, 랑기나 교육부 장관은 마지막 까지 자리를 지킨 관료로 평가되고있으며 당일 아침에도 평상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동요하는 직원들을 달래고 가장 마지막으로 퇴근했다고 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날, 그들의 대통령이었던 아슈라프 가니(Mohammad Ashraf Ghani Ahmadzai, 1949 - )는 돈으로 가득 채운 4대의 차와 부인, 참모진들을 이끌고 빛의 속도로 급히 수도 카불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으로 도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메스컴을 통해 전 세계에 대서 특필되며 이슈라프 대통령이 큰 지탄을 받고 있는 때에 이 두 여성들의 리더십이 큰 대조로 비추어졌던 것입니다. 이 두여성의 공통점은 자신의 목숨과 안위보다 자신의 조국과 사회 그리고 자신의 사역에 속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한 리더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버린 대 반전 사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그것이 모든 예배, 찬양, 그리고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 목사님은 그의 책 “이것이 예배다”에서 “그러므로 나는 십자가 속죄의 보혈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에서는 단 한시간도 마물고 싶지 않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속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에서는 ‘가인의 예배’가 드려질 수밖에 없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한편, 마틴 로이드 존스 (D. Martyn Lloyd-Jones 1899-1981) 목사님은 그가 쓴 “십자가”에서 “많은 일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지만, 기독교와 정반대되는 헛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첫 번째 일은 어떤 것이 참된 메시지인지 를 찾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전하고 십자가 상에서 죽임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파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기독교 메시지의 진수입니다. 라고 서술합니다. 20세기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이 두 설교가의 공통점은 “십자가.” 그것만이 기독교가 전해야 할 전부라고 이야기 합니다.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시로 표현해서 찬송하는 대표적인 찬송 가운데 “십자가로 가까이 (Jesus Keep Me Near the Cross)”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송은 19세기 찬송작가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가 1869년에 쓴 것으로 그녀가 출생 직후 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능력의 생생한 장면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기법(hypotyposis)을 사용하여 표현했습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원수된 것을 십자가능력으로 하나되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만드는 이 능력의 십자가를 묘사한 것 처럼 말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6

당시 에베소 교회는 헬라 사상과 유대 사상에 선과 악, 영과 영의 대립 그리고 분리 사상이 너무 팽배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간의 분열되고 부조화 된 사상을 만들게 된 모습을 열거하며 저자인 바울은 이 같은 현상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만이 해결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사건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과 멀어진 수직적인 관계를 화해 시킴이요 서로 간의 극명한 대립을 일삼고 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중재자로 하나에 되게 하는 수평적 화해를 이루어 원수 된 것을 소멸하게 하심인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크로스비 여사의 십자가 정신을 담은 찬송을 소재로 조성은 작곡가가 “십자가” 라는 안템을 썼습니다. ‘치욕의 십자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곡을 만들게 되었다’고 작곡자는 이야기 합니다. 이 곡의 내면을 보면 전반부 고통과 수난의 길,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길을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표현할 때는 단조를 사용하여 특유의 어둡고 호소력이 있는 모습으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길을 리듬을 통해 무거운 발걸음을 걷는 듯 연속해서 표현합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십자가 사랑의 뜨거운 감격을 장조로 변화시켜 짧게 표현하고는 간주에 멜로디를 통해 그 깊은 의미를 묵상하게 합니다. 이어 다시 고난의 길을 반복하여 단조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짧은 간주에 이어 승리. 영광의 십자가를 장조로 전환하여 환희를 드러내며 역설의 십자가를 표현하며 종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하려면 고통의 십자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순종과 헌신을 보이기 이전에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원한다면 치욕의 십자가 그 맛도 보아야 합니다.

물질만능의 시대, 모든 것이 점점 더 편안해 저 가며 우리를 유혹하는 큰 요소는 영광의 예수님을 원하지만, 고통의 십자가는 점점 더 희미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사순절 기간을 마무리해 가며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가슴에 선명하게 새기며 기독교가 전해야 할 것은 그 십자가가 시작이요 끝이라는 사실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감성과 함께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십자가의 은혜가 선명히 드러나는 감격의 찬양과 예배가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때 십자가는 우리 찬양의 마지막 고백처럼 “무한 영광”이라는 이 역설의 진리를 우리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