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D. Kim 교수
(Photo : ) J. D. Kim 교수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 18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19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20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22 그는 그의 하나님의 음식이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23 휘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그가 내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4 이와 같이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더라 (레위기 21:16-24).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그들과의 관계를 설립하는데 어려움을 줍니다. 레위기 21장의 제사장에 관한 규정, 특히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부분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 강화 시켰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장애와 장애인을 결함과 흠, 세속적이고 죄악 되고, 저주 받은 존재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Nancy Eiesland 라는 장애인 신학자는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장애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증폭시킬 수 있는 위험을 포착하여, "레위기 17-26장의 '거룩한 규율은' 신체적 장애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왜곡이며 모든 성스러운 것의 본질적인 모독임을 강력하게 전달한다... 이와 유사한 구절들은 역사적으로 장애인을 교회의 가시적 지도체계 및 권위로부터 배제하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되었다"라고 지적합니다 (Nancy L. Eiesland, “Encountering the Disabled God,” 11). 또한 Amos Yong 신학자는 토라의 (모세 오경) 두 부분이 (레위기 21장과 22장)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깊이 기여했다고 주장합니다 (Amos Yong, Bible, Disability, and the Church, 18).

이러한 부정적 관점은 장애인에 대한 체계적 배제와 차별의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Saul Olyan학자는 이 구절의 해석이 장애인에 대한 낙인과 박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데 동의합니다 (Saul M. Olyan, Disability in the Bible, 2). 이러한 해석은 아프리카 교회 내에서 장애에 대한 정상적인 시각으로 변질 되었습니다 (Makomborero A. Bowa, “Representations of Disability,” 389–90). 아마 이 구절을 읽어본 기독교인들도 한 번쯤 왜 하나님께서 장애인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장애가 “흠” 이 되며 왜 장애인들이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지 생각해 보셨을 것입니다. 또한, 간혹 장애를 귀신들림이나 장애인 혹 그 부모의 죄의 결과나 저주로 해석하고 기도를 통해 치유하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도 있을 것입니다.

레위기 21장의 일반적인 해석은 장애인과 하나님에 대해 세 가지 주요 관념을 제시합니다. 첫째, 장애인은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거나 휘장과 제단에 가까이 가는 것이 금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단순한 육체적 약점이 아닌 결함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제사장의 역할을 맡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둘째, 장애인이 성소에 있는 것은 도덕적이거나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되어 장애는 성소를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장애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해한다는 개념은 장애와 죄 및 부도덕의 부정적인 연관성을 더욱 강화합니다. 셋째,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장애관을 차별적이며 배척적이고 불공정하며 장애인에 대해 적의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자와 비신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과 동일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지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 기독교인들이 이 구절의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관점 중 하나 이상을 고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에 대응하여 여러 학자들은 본문이 주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대제사장의 완벽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세상을 위한 대제사장이자 속죄 제물로서 임하는 메시아를 통해서 장애나 도덕적 죄악, 정신적 또는 영적 상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상을 섬길 수 있음을 예시합니다 (벧전 2:9). 한편으로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완전한 대제사장에 대한 희망을 조명합니다. 대제사장은 부서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이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결함이 장애와 직접적으로 연관됨으로, 결함은 장애와 장애인의 속성으로 남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장애와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영향력은 지속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지만, 장애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해석이며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다음 몇 주 동안 필자는 장애를 가진 제사장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배려를 연구하여 레위기 21장의 해석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또한, 레위기 21 장은 장애를 가진 제사장에 대한 제한은 배제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와 포용을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해석이 하나님과 장애인에 대한 더 미묘하고 관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공감과 존중의 마음을 기르며,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여 교회와 사회 내에서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도록 돕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다음과 같은 주제로 레위기 21 장을 해석 할 것입니다: "흠" 과 "더럽힘” 과 같은 히브리어 용어의 문맥 분석, 장애를 가진 제사장의 직분, 도덕적 혹 의식적 결함, 고대근동의 종교적 관습, 하나님의 자비, 등.

기독교인들이 장애인들을 공감을 가지고 이해하고, 교회와 사회 안에서 그들의 포용을 증진시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성경은 기독교인들이 장애인들을 돌보고 포용할 의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장 14 절에서, 하나님은 장애인들이 그들의 장애를 이용하는 자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규정을 설정하셨습니다: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 이니라.” 더욱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을 위해 말하며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신원 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잠언 31:8-9). 이는 장애인들을 위한 권리 옹호를 포함합니다.

바울 사도는 개인의 관심과 필요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관심과 유익을 돌보라고 권고하며 (빌립보서 2:4),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있어 장애인들의 은사를 발견하여 그들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22-25). 또한 예수님께서는 장애인들을 우리의 삶과 교회에 초대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길 원하시며 친히 갚아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4:13-14).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인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대변인이 되어야 하며, 참여의 장벽을 허물고, 소외된 장애인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건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공동체에서 배제된 자들을 위해 접근가능성과 포용성을 확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환영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34).

레위기 21 장 연구가 장애의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과 가족을 위로하고 그들을 우리의 삶과 교회에 품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장애인들의 다른 능력이 인정되고 계발되어 믿음의 공동체와 사회안에서 귀히 선용 되길 바랍니다. 또한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고통받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