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5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려고 길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아주 짧고 심플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행간을 생각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인생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그런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첫 부르심을 받았던 아브라함은 많은 것들을 떠나야 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어려움을 만날 때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친척들을 떠나야 했고, 또 함께 길을 떠났던 아버지를 중간 정착지 하란에서 묻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두번째 부르심을 받고 하란을 떠나는데, 히 11:8은 그가 걸어갔던 길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간 길'이었다고 말씀하고, 또 창 12:4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던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갔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이 쉬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직선으로 1600 마일, 길을 따라 걸었으니 2000 마일은 족히 넘었을 그 길이 분명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꼭 이 길을 가야만 하는지, 의심도 했을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큰 어려움을 만났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길을 갔습니다. '마침내' 들어갔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왜 그 길을 갔을까요? 정말 큰 민족을 이루고, 자기 이름 석자를 창대하게 하고, 세상의 복이 되기 위해서 그 길을 갔을까요? 길을 떠날 때 그게 어떤 것인지 알기나 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길을 떠난 오직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그 길을 떠난 것입니다.
오래 전, 2시간 거리에 살면서 매주 교회에 출석하시던 집사님을 심방하러 가다가 운 적이 있습니다. 매주 그 길을 운전하고 다니시던 집사님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꼭 이 길을 가야만 하는지 의심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 저런 힘든 일을 만나면 당장 다른 교회로 옮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실 때가지 그 먼 길을 마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그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요 20:25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거절했습니다.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도마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습니다. 왜요? 다시 도마를 찾아오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