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존과 그리스도인들 평안
위해 군 병영문화 개선 필요해
병력규모 급감 사태 곧 현실화
한 사람 가치 높이는 방향 개혁
◈국방력 제고: 무기체계 발전만으로 이룩할 수 없는 국방력 유지와 강화
근래 대한민국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국군의 실질적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당연히 전쟁 억지가 최우선 목표이자 존재 의미일 것이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래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를 지속하고 있고, 우리 군의 주적 북한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전쟁 발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공산당의 지역 패권을 향한 야욕 때문에 북한 및 대만과 관련해 높은 수준의 전쟁 위협 아래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 군의 최우선적 존재의미는 당연하게도 전쟁 억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쟁 억지'라는 목표는 심히 모호하다. 우리가 처한 국제안보 현실 속에서 전쟁 억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세밀하게 고심하고 살피지 않는다면, 전쟁 억지라는 궁극적 목적은 현실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 억지를 위해 우리 군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군은 미국을 중심에 둔 아시아 태평양 자유민주주의 진영 군사동맹의 일익으로서, 동아시아 지역 주둔 미군, 일본 자위대, 그리고 대만군과 함께 북한과 중국 공산당의 영역 확대 야욕을 저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사시 실전으로 돌입해 적을 타격할 준비를 갖추는 동시에, 애초 실전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상당한 규모의 국방력을 유지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야 할 책임을 맡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군의 역량은 이 책임을 자력으로 담당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근래 한국 방위산업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선진화된 군대로 자리매김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차, 자주포, 순항미사일, 전투기, 잠수함 생산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런 무기체계들이 과연 한국의 주적 혹은 가상 적국의 무기체계를 압도할 만한 성능을 갖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처럼 아예 세대를 뛰어넘는 압도적 수준의 선진 무기체계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준수한 수준의 무기를 높은 가성비로 생산하고 운용하는 것이 우리 국방산업의 강점인 만큼, 현재 한국이 개발한 무기체계 수준이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 해서 우리 군이 주변국 군에 비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국방력 제고는 단지 무기체계 발전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AI 무기체계가 주력을 담당하게 될 미래 전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 군의 무기체계 운용은 거의 전적으로 군인들, 즉 사람이 담당하고 있다. 무기체계가 우수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병력의 지식이나 훈련 수준, 혹은 전투 의지가 낮다면 그 성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불운하게도, 현 상황에서 우리 군의 맨파워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징병제에 의존하는 병력자원 규모는 향후 10-15년 새 거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고, 군 간부 지원자 수 역시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들은 의사, 변호사, 해외 엔지니어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길을 선택하지, 결코 군무에 종사하지 않는다. 군의 인력 규모는 급감하고 있고 그 인력의 역량 또한 저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력 제고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군 지도부는 국방에 대한 구시대적 인식과 전투 교리를 가지고 군의 규모와 역량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과거처럼 60만 이상의 상비군 병력을 가지고 병사들을 갈아넣어 전쟁 억지력을 갖추는 방식은 곧 강제적으로 무력화될 것이다.
향후 10년 내 젊은 여성들까지 총동원해 징집하지 않는 이상 현재의 병력규모와 운용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군 운용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규모에 의지하는 우리 군의 국방력 저하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넷플릭스 'D.P.' 시즌2 중 한 장면. 병영 내 가혹행위와 부조리한 폭력은 군 병력의 질적 저하, 전투 의지 박탈을 초래한다. |
◈국방력 약화: 병력규모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군 운용방침과 병영문화 선진화의 필요성
드라마 'D.P.' 시즌 1과 2에 묘사된 군대 내 병영생활의 고질적 부조리, 그리고 수십 년째 이것을 은폐하고 무마하는 데만 급급한 군 수뇌부의 일관되게 무책임한 행태는 우리 군의 암울한 인력 동향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는 일본의 군국주의 군대로부터 물려받은 구시대적 병영 전통들이 군을 유지하고 운용하는 데 주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아예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과 선진화된 시민의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군대도 내부 문화를 개혁할 당위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개인화, 인권,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태가 일반화된 현재,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해 동원할 수 있는 현역 병력자원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구시대적인 병영문화와 군 운용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군이 자멸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미군을 비롯한 선진국 군을 모범 삼아, 변화되는 사회의 세태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병영문화와 군 운용방침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만이 우리 군의 맨파워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명령을 준수하는 엄정한 군기는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상관의 부당한 권위 강요나 악의적 인권침해 행태까지 엄정한 군기의 범주에 집어넣는 구시대적 발상은 철저하게 뜯어고쳐야 한다. 우리 군은 이런 전통이 유독 강한데, 여기에는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연원이 존재한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의 말석을 차지하던 시절 일본군에는 하급자가 군 내부 악습에도 철저히 순복해야 실전에 능한 군을 양성할 수 있다는 일본군 특유의 근성을 강조하는 병영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일본군 장교 출신 지휘관들을 중심으로 창군된 초기 우리 국군 역시 이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겉보기에 어떠한 상황이라도 상명하복이 이루어지니 군기가 엄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겉보기에 그토록 엄정해 보이던 일본군은 당시로서 후진 군대였던 중국군을 향해서만 맹위를 떨쳤을 뿐, 정작 일본군보다 훨씬 느슨해 보이는 병영문화를 가진 미군에게는 무참하게 패배했다.
물론 일본군의 패배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경제력과 산업 역량의 압도적 열세에 기인한 것이 사실이지만, 미군이 일본군보다 훨씬 효율적이면서도 병사 개개인의 인명과 인권을 중시하는 군 운용방식을 고수한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일본군 패배의 요인이었다.
미군이라 해서 처음부터 선진 군대는 아니었다. 1917년 미군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당시만 해도, 미군의 군사력 수준은 치열한 참호전을 겪었던 프랑스나 영국군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훈련도 장비도 싸울 의지와 당위성도 부족했으나, 막대한 병력자원과 물자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유지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열강의 지위를 차지한 다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다시 수많은 병력을 잃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로소 미군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력을 갖춘 정예군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즉 실전에 능한 정예군이란 상당한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고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은 이후에야 비로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며, 이런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병사들이 최선의 몸상태와 의지를 가지고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선진적인 병영 문화를 유지해야 한다.
미군도 이런 군을 보유하기 위해 막대한 희생을 치렀으며, 게다가 흑인과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인종차별 전통 때문에 이후에도 수많은 내홍을 겪었다.
우리 군이 진정 정예군으로 거듭나려면 당연히 유혈이 낭자한 실전 경험과 함께, 그 가운데서 우리 젊은이들이 힘써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군 운용방침과 병영문화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국가의 안녕을 위해 군사력 증강과 군 운용의 선진화를 원한다. 그러므로 에 묘사된 우리 군 내부 병영의 악습과 부조리의 타파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
하지만 현재 우리 군이 대규모 실전을 경험할 길은 요원하다. 만일 우리 군이 대규모 실전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아마 대한민국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전면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당연히 이런 비극적 상황이 도래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군의 존재 이유는 최우선적으로 이런 전면전을 억지하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 군의 정예화를 위한 차선책은 동맹국들과 최대한 빈번하게 연합훈련을 수행하고, 군 내부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게 운용방침을 개선하며 악습이 만연한 병영문화를 혁파하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 'D.P.'의 메시지는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간혹 군 내부에 산발적으로 장병들 간의 범죄나 인권유린이 일어날 수는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군대인 미군에도 어이없는 사건들이 간혹 발생한다. 사회에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처럼 군 내부도 아무 문제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범죄나 인권유린, 악습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퇴락해 있는 현재 우리 군의 상황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 오로지 현상유지를 위한 은폐와 사태 무마에 급급한 군 수뇌부의 행태는 그대로 일선 병영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 군 수뇌부가 진정으로 전쟁 수행능력과 전쟁 억지력을 갖춘 군대를 양성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병영에 산적한 구시대적 악습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 안간힘을 써야 한다. 특히 몇 년 지나지 않아 병력규모 급감 사태가 현실화될 것이므로,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지금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고 군 운용방침을 개혁해야 한다.
부당한 억압이 아니라 정당하고 합리적인 군 운용을 위한 계급질서 확립이 선행되어야 우리 군의 전쟁억지력을 내부로부터 갉아먹는 병영 내 악습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런 악습은 단순히 군복무를 수행중인 인원들의 고충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이 필요한 맨파워를 확충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저해하여 군 병력 전반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데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드라마 'D.P.'에 묘사된 병영 부조리와 악습, 그리고 이를 대하는 군 수뇌부의 비틀린 대응방식은 군 장병들의 복지를 저해하는 문제인 동시에, 우리 군의 전투력 약화, 군기 약화, 비효율화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신호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우선시하는 신앙인 입장에서도 국가의 안녕을 중시하며 국방력 증강과 군 운용의 효율화를 지지한다.
따라서 우리는 'D.P.'가 보여주는 군 내부의 구시대적 악습과 뒤떨어진 군 운용방침에 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노령화에 따른 경제규모와 병력규모 축소가 가시화된 우리 한국의 어두운 앞날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은 국민들의 평화로운 생존을 위해 우리 군의 병사 인권에 관한 인식의 제고, 그리고 병영문화 선진화를 위한 변화 의지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라 확신한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