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묘사하는 많은 표현들 가운데 '소송의 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별 문제 없이 지나갔을 법한 일도 미국에서는 소송에 들어가고, 그 일로 인해 거액을 보상하거나 받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1992년 맥도날드에서 산 커피를 자신의 허벅지에 쏟고 64만 달러를 배상 받은 한 할머니의 경우와, 2015년 서브웨이에서 판매하는 12인치 길이의 샌드위치가 광고와는 다르게 11인치밖에 안된다며 집단으로 소송해서 적지 않은 합의금을 이끌어낸 경우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법을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하겠지만, 한편으론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담임으로 부임하기전 교회가 토요일마다 한글 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한 아이가 족구 네트에 걸터앉아 놀다가 앞니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고, 그 아이의 부모가 그 일로 인해 교회를 고소한 것입니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당시 이 일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월이 흐른 뒤에, 그것도 법률 사무소를 통해 일방적으로 알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냥 치료비 정도를 원했다면 보험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이 아니어서 많이 씁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제게도 고소할 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둘째가 아직 어렸을 때, 다니던 치과가 너무 멀어서 훼드럴웨이 320가에 있는 소아 치과에 간 적이 있는데, 덴티스트가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이를 몇 개 빼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아이가 워낙 치과를 무서워해서 싫다는 걸 간신히 설득해서 정말 어렵게 이를 빼고, 치료도 했는데... 이게 완전 사기였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아이가 follow up을 전에 다니던 치과로 가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덴티스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나쁜 사람들은 고소를 해야 합니다. 고소를 하시면 제가 증인으로 나서겠습니다..."
그 날 일들이 떠올라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화가 났습니다. 치료에 방해가 되니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그냥 문밖에서 아이 우는 소리를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들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치료를 마치고 나온 아이의 얼굴엔 약간의 멍이 들어 있었고,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몸을 묶어 놓고 치료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듣고는 "아이가 유별나서 미안하다"는 사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X-Ray를 보니 멀쩡한 이를 둘이나 뽑고, 또 이런 저런 치료를 한답시고 애를 잡았던 것입니다.
고소하라는 덴티스트의 말을 듣고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쓴 맛을 보게 해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했다면, 어쩌면 많은 보상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지만, 이번 일로 고소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고소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직한 덴티스트가 되십시오." 더 나은 결과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도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더 나은 것을 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