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뉴욕 플러싱 메시야 루터란교회에서 동사목사(Co-pastor)로 첫 담임목회를 시작해 6년, 2001년부터 조지아 애틀랜타 크라이스트더킹 루터란교회에서 10년간 한인 루터선교를 감당하다, 2010년 백인 중심의 조지아 라그랜지 루터란교회에서 12년의 담임목회까지 총 29년의 목회여정을 마무리하고 62세에 조기 은퇴한 박민찬 목사의 소회와 앞으로의 비전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을 인용해 34년의 미국에서의 삶과 29년의 목회 여정을 돌아본 박민찬 목사는 “다른 것은 몰라도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붙들고 인간적인 사고나 지혜에 의존하거나 세상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성경에 입각한 원칙과 규범을 지키려 했던 몸부림이었다”고 회고했다. 부름 받은 이후 한번도 주일 성수를 빼놓지 않고 지켜온 강단에서 내려온 그의 얼굴에는 감사와 안도, 조금의 아쉬움과 함께 인생의 2막도 변함없이 함께 하실 하나님 인도하심에 대한 기대가 진하게 묻어 나왔다.
-조기은퇴를 하신다고 하셔서 좀 놀랐습니다. 늘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고 노력해 오셨고, 마지막 교회에서는 안정적이고 평안한 목회를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일찍 강단에서 내려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하나님 주신 소명도 있어 결정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어머니 때문입니다. 삼대 독자를 하나님께 바치고 34년을 한결 같이 부족한 아들을 위해 기도해주신 부모님이셨는데, 약 1년전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천국에 가시고 어머니는 당뇨 합병증인 황반으로 한쪽 눈은 실명상태고 다른 쪽 눈마저 시력이 30프로 정도밖에 남지 않으셨어요. 아버지께서 몇 년 전부터 한국에 들어오길 바라셨는데 목회라는 게 매주 비슷한 것 같아도 매일이 치열하잖아요. 그렇게 보내 드리고 나니 어머니마저 효도 못하면 너무 죄인이 될 것 같아 간절히 하나님 뜻을 구하며 장례 치루고, 미국에 돌아오면서 평안함 가운데 그만 둔다는 결단이 섰어요. 감사하게 교회도 이를 잘 이해해주고 교단에서도 조기은퇴를 허락해 주셔서 작년부터 정리를 시작해 애틀랜타로 올라왔습니다.
담임목회를 하면서도 한국에 휴가를 나갈 때면 부지런히 어김없이 여러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곤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 복음전파 사명이기에, 때를 얻던지 얻지 못하던지, 저를 반기던지 반기지 않던지 부지런히 수많은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인 목회를 하는 16년 동안은 한국 방문이 쉽게 허락되지 않았지만 미국인 목회를 하는 12년 동안은 교회에서 허락한 휴가기간 항상 한국을 방문해 부모님을 섬기고, 주일은 한국 교회를 돌면서 설교 가운데 열정을 퍼부었습니다. 지인 목사님들이 섬기는 교회는 물론 일면식도 없는 교회 목사님들께 연락해서 프로필을 이메일로 보내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게 해달라고 무작정 요청했죠 (웃음). 감사하게도 100개 이상의 한국 교회에서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례비는 일절 받지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교회에서 제 계좌로 자동 이체해주시면 바로 다른 교회나 사역에 헌금했어요. 제주도 빼고 거의 모든 시군을 돌아다닌 것 같아요. 하나님 큰 은혜입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많은 교회를 다니시면서 새롭게 깨닫거나 보게 된 부분들이 분명 있으실텐데요.
“먼저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게 무작정 문을 두드린 저에게 강단을 열어줬던 교회와 목회자들입니다. 또한 미국 교단에서 받는 연금과 한국에서 부모님께서 준비해주신 것들이 있어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복음을 가감없이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교단과 교파, 지역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보게 된 것은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의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안디옥교회의 ‘1대 담임목사’였던 바나바 목사님과 그와 함께 동역했던 사도 바울의 공동목회를 주목해 봐야 하고, 이름도 빛도 없이 안디옥교회를 세우는데 주축이 된 헌신된 교인들의 모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내 교회만 살찌우고 부흥하며, 내 교회만 우선이 되는 집단 이기주의적 신앙으로 인해 대도시의 유명세를 떨치는 교회들은 어김없이 주변 미자립 교회들과 성장세가 없는 연약한 교회를 죽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 소수이지만 초대 교회처럼 되려고 안간힘쓰고 기도하면서 목양하는 목회자들이 또한 존재함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분명히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명령하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될 것임을 분명히 외치고 싶습니다.”
-은퇴이후의 삶의 계획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저를 아끼시는 많은 목회자분들은 70세 전에 은퇴하는 것을 만류하셨어요. 수치로 따지면 62세 조기 은퇴를 만류하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100명 중에 98명정도는 됐죠(웃음). 그럼에도 단 한번도 이 일에 대해 후회하거나 아쉬워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깊이 개입하셨기 때문이죠. 분명히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조기 은퇴를 허락하셨고, 내 삶의 남은 여생은 홀로 한국에 남겨진 어머니를 돌보고 그동안 100여 곳이 넘는 한국 교회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는데 쓰임 받고 싶습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도서지역 교회를 찾아 가 필요한 곳에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려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라는 타이틀 외에는 제대로 목양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본인 자신도 영적으로 고갈된 상태면서, 교회를 먹여 살리고 성도들을 섬기고자 손이 부르투도록 수고하는 목회자들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조기 은퇴하게 해주신 것도 이런 소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임을 믿습니다. 또한 조심스럽지만, 29년의 미국에서의 담임목회와 34년 미국 생활을 돌아보며 책자 하나를 출판하려고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한가지는 아버지께서 소천하기 전에 마련해 주신 작은 부동산을 선교센터로 봉헌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선교사님들이 한국에서 편안하게 지내다 가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포부가 큰데,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안 하면 됩니다. 이미 지금까지 허락하신 은혜가 너무나 충분합니다.”
-루터교단(ELCA)이라는 백인 중심의 교단에서 소수 인종 목회자로 많은 수고를 해오셨지만 마지막 1/3은 미국인 목회, 특별히 보수적인 백인 교회를 목회하셨습니다. 1세 목사로 쉽지 않았을 텐데요.
“16년간 한인 목회를 하고 나서 원하지도 않고 계획하지도 않았던 미국 교회로 보내셨어요. 그것도 도시 지역의 열린, 약간은 자유주의 신앙이 강한 그런 교회도 아니고 조지아 남부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지배적인 라그랜지라는 지역의 백인 교회였죠.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욕심 반, 걱정 반, 그리고 불안감 속에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주일 정도를 기도하고 거절했어요. 제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랬더니 성도들이 사례비가 적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사례비를 올려서 다시 오퍼를 했어요. 이번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루터교단은 청빙제도가 까다로워요. 먼저 소속 노회나 감독들이 담임 목사가 없는 교회에 후보 목사로 4-6명의 프로필을 보내면 교회 청빙위원회에서 검토해 절반을 선임하고 2-3명의 후보를 만들어 교회 최종 의결기관인 카운슬에 회부합니다. 그럼 전 성도를 소집해서 투표합니다. 여기서 2/3 이상을 얻어야 담임 목사로 청빙되는데, 아시안 목사가 백인이 대다수인 교회의 담임으로 청빙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어요. 더구나 전 영어가 능숙한 2세도 아니고 학력도 어떻게 보면 다른 후보 목사님들에 비해 더 낫다고 할 수 없었거든요. 3차에 걸친 인터뷰 끝에 저 역시 최종 후보에 올랐고, 40년의 역사 가운데 담임 목사가 10명이상 바뀔 정도로 어려운 교회였는데, 유색 인종 목사를 청빙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였는지 당시 투표의 98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담임으로 청빙된거죠.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고 가능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또 12년간 목회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이에 대한 감사로 12년간 한국 목회자들에게 루터교단을 알리고 이들을 영입해 차세대 목회자로 키우는 일도 했습니다.”
-목회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으셨다면?
“사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목회위기가 찾아오죠. 한인 목회를 할 때는 16년이 160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고, 미국인 목회를 할 때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초긴장감 속에 목회에 임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목양실과 교회를 떠나지 않고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맡겨 주신 교회와 양들을 지키기 위해 12년을 한결같이 하나님 말씀만 붙들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최대 목회위기는 개인적인 상황이나 교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던 신앙적 결단에서 왔습니다. 바로 동성애자들을 주례문제였어요. 미국 주류교단들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축복하는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입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의하지 않는 것도 꺼려하는 분위기입니다. 동성애자들이 교회에서 축복을 받고 결혼식에 목사의 주례를 요청해 온다면 내 신앙관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를 긴장감을 갖고 12년을 버텨온 것인데, 감사하게 한번도 동성애자들의 주례 부탁을 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결혼 주례가 법원의 판사 혹은 주정부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은 목회자들만 가능합니다. 교회 성도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다 들려서 부탁하면 거절할 명분이 없습니다. 실제 교회 성도들의 결혼 주례보다 아닌 이들의 주례를 더 많이 했습니다.
제가 동성애자 주례를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미국인 교우들은 나에게 교회를 빌려주기라도 해서 다른 미국 목사가 그들을 주례하게 하라는 제안도 수도 없이 해왔는데요, 그 말에 단호히 반대했고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담임목사로 있는 동안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다는 신앙관이었기에 이 부분은 양보할 수 없었죠.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늘 긴장감을 갖고 주님 앞에 저를 긍휼히 여겨주십사 엎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은퇴하면서 이 짐을 내려 놓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미국 주류교단 내에 한인들이 한 축을 담당하고, 한인 교회를 넘어 건강한 다민족 목회를 해 나가는 목회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 발, 아니 반 발 앞선 선배로서 조언해주신다면?
“저는 1.5세, 2세 한국인 목회자들 뿐 아니라 1세 한인 목회자들이라도 다민족 목회를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안수 받고 목회지를 찾지 못해 다른 일을 하면서 버티는 분들을 많이 봐왔어요. 이미 하나님 주신 사명과 능력도 있는데, ‘한인 교회’라는 바운더리 안에서만 찾으려고 하니 경쟁 아닌 경쟁이 되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이 줄어드는 현 시점에서 한인으로만 구성된 한인 교회는 자연스럽게 줄어 들거나 다민족 교회화 될 것이 명백합니다. 젊은 목회자들은 이왕이면 한인 목회도 하지만 다민족 목회를 방향으로 잡고 가면 좋겠어요.
지금의 젊은 세대, 소위 MZ세대라고 하는 이들은 같은 민족 내에서도 ‘새로운 인종’으로 여겨지잖아요? 굳이 ‘한인’이라는 인종에 갇힐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미 충분히 국제적인 감각을 갖췄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굳건한 믿음으로 서 있다면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만 붙들고 선교하는 마음으로 다민족 목회를 도전해 보십시오. 생각지 못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저 같은 1세 목사도 했는데, 젊은 목사님들은 왜 못하겠어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패션(Passion)의 문제입니다.”
-귀한 간증과 권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나눠 주세요.
“돌아보면 미국에서 지난 29년의 담임 목회는 고통과 환난의 연속이었고 한 순간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가장 약할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더 강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응답 받은 기도는 감사함으로 받았고, 응답 받지 못한 기도 역시 감사함으로 후회하거나 고집부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 그리고 찬송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종교개혁의 원동력이자 아버지였던 마르틴 루터 박사님의 신앙 핵심을 마지막으로 제 신앙의 고백을 나누겠습니다.
‘오직 성경으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오직 그리스도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박민찬 목사의 향후 한국에서의 설교 사역 및 동역 문의는 한국 전화번호 010-3644-4924 혹은 미국 전화번호 678-622-7171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