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여행을 하려면 차를 직접 운전해서 떠나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그런데 나는 운전을 싫어한다. 때문에 먼 여행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런 내게 하나님은 기막힌 사람을 하나 붙여주셨다. 외사촌 여동생의 남편 되는 사람인데, 요리 명장으로서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운전과 여행이 특별한 취미인데, 성경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반면 나는 성경의 전문가이고 여행이 취미인데, 운전에는 은사가 없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 친구가 한 가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했다.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운전해드릴 테니, 함께 좋은 데 여행 다니면서 성경 얘기 많이 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간 동해를 두 번 다녀왔고, 지난 토요일엔 강화도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그 친구는 성경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 행복해했고, 나 또한 최고 운전사 옆에 앉아서 좋은 곳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게 되어 참 행복했다.
서로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부족을 채워주니 이보다 더 환상의 커플은 없는 것 같다. 날 잡아서 또 여행 가자고 오늘도 연락이 왔다. 성경 얘기 듣고 제대로 된 복음을 깨우치니 너무 기뻐서 빨리 또 듣고 싶다며 행복해 했다. 큰딸 결혼이 있어서 두 주 후엔 3주간 LA를 다녀오니 그 이후에 한 번 또 다녀오자고 했다. 장소는 거제도를 방문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유채꽃 필 무렵엔 제주도를 같이 여행하면 좋을 것 같다.
제주도를 갈 때마다 좋은 건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다로 바다로 가다 보면 해녀들이 물질하는 것이 가끔씩 보인다. 젊은 해녀보다는 나이 든 해녀들이 더 많은 걸 본다. 나이가 들어가니 숨이 짧아 찬송 부를 때나 설교할 때 말이 끊기는 현상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바다 속에 들어가 3~5분 동안이나 숨을 참고 바다 밑에 잠수해서 소라나 전복을 따오는 해녀들의 모습이 너무도 부럽고 신비롭기만 하다.
오늘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제주 해녀 삼대의 삶을 풀어낸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란 책이다. 해녀들의 삶을 짧은 이야기와 그림으로 소개한 내용이다. 해녀 중에서도 가장 강하기로 소문난 제주 우도 해녀들의 삶을 포착한 다큐멘터리 '물숨'의 고희영 감독이 쓰고, 그림은 세계적인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이 그린 책이다. 2016년 5월, 제주도의 한 바닷가에서 해녀들의 물질 장면을 보게 된 그와 제주 출신 고희영 감독이 인연이 되어 나온 작품이다.
해녀 삼대의 이야기가 한 편의 시처럼 매 페이지마다 울렁거렸고, 아이의 관점에서 펼쳐진 시점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교훈이나 메시지의 그 어떤 강요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해녀 할머니와 해녀 엄마를 늘 바라보고 기다리는 손녀 아이의 모습이 어쩌면 선조들의 신앙을 가까이서 지켜보긴 했지만, 정작 신앙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던 어린 시절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하게 다가온다.
무시무시한 바다인데 매일같이 그 바다로 나가는 엄마, 바닷속에서 숨 참기는 기본이고 물고기며 미역, 전복, 문어 등을 잘도 건져오는 엄마, 자식들 먹여 살리고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기 위해서 힘든 숨 참아가며 거친 숨 몰아쉬며 오늘도 위험한 바닷속에서 작업을 계속한다. 나랑 10살 차이 나는 동료 교수 어머니 역시 지금도 물질을 계속한다고 한다. 포항 호미곶에서 말이다. 80은 족히 되었을 연세인데도 말이다.
물속에 들어가 전복과 해삼을 따서 올라오다가 더 깊은 곳에 보이는 더 큰 전복 캐오려 다시 잠수했다가 그만 숨을 놓칠 뻔한 엄마 해녀의 일상과 운명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엄마를 간신히 끌어올린 할머니 해녀의 말은 해녀가 아닌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보배 같은 교훈이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물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간단다."
바다밭에 전복 씨도 뿌리고 소라 씨도 뿌리는데, 절대로 아기 전복이나 아기 소라는 잡지 않는다는 엄마 해녀들. 오직 해산물을 먹어 치우는 불가사리만 싹쓸이 하려 애쓴단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바닷 속 밭을 저마다의 꽃밭처럼 가꾸고 물질하는 놀라운 해녀들, 그 꽃밭에서 자기 숨만큼만 머물면서 바다가 내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것이 그녀들 만의 약속이란다. 물질하기 전 할머니 해녀가 딸 해녀에게 매번 해주는 한 마디가 내 가슴에 콱 박혔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나의 숨만큼만 머물면서 바다가 내주는 분량만큼만 가져가라"는 말이다. 아, '명언'이다.
할머니 해녀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매일 들어온 이 한 마디는 엄마 해녀가 딸 아이 해녀에게 대물림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명심하고 살아야 할 가치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매일 매 순간 꼭 명심하고 살자.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다음 성경 구절과 별 차이가 없는 소중한 말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 13:5a).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아멘!'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