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에이브라함 조)·김은이(유니스 조) 목사 부부는 미국 247년 역사 최초 아시아인 미군 군목이다. 

최근 업무 및 휴가차 한국을 찾은 부부는 올해 초 함께 중령(Lieutenant Colonel)으로 진급했다. 이 역시 아시아인 최초다.

조진호 목사는 미 육군 연방이 명령하면 파병을 나가는 상비군 군목(Reserve Chaplane), 아내 김은이 목사는 남편이 있던 캘리포니아주에서 조지아주 애틀랜타 부대로 옮겨 군목 모병관으로 각각 근무 중이다.

조 목사는 미국 유학 중 1995년 여름방학에 잠시 귀국했다, 김 목사를 소개받아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부부이지만 자주 떨어져야 하는 어려움은 군인 가족들만의 고충이다. 부부 모두 서울신학대학교와 아주사퍼시픽대학을 졸업하고 목회자가 됐다. 둘은 모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목회자다.

조 목사는 지난 2002년 군목으로 입대해 2004-2005년 이라크 전쟁 당시 파병을 다녀온 특별한 경험이 있다. 당시엔 영어가 부족해서 몸으로 떼우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파병을 나간 것도 '오역(?)' 때문이었다. 동기부여(motivation) 코스인 줄 알고 지원했는데, 파병(moviliazation) 프로그램이었던 것. 

군목들의 경우 전투 지역에서도 부대 밖으로 함께 작전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알카에다는 미군을 제보·납치하거나 죽일 때마다 상금을 지급한다. 종교적 집단이기에 군종의 목숨값이 장군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장군이 1만 달러라면, 군종은 2만 5천 달러에 달한다. 그래서 알카에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미군을 죽이려 혈안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한다리 건너 죽음을 보고 사는 병사들이 두려움에 "같이 가면 우리가 안 죽을 것 같다"고 하는데,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군목들보다 훨씬 많이 따라나갔다. 군목들에게는 총도 지급되지 않기에, 사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결국 폭탄이 터지는 가운데 차량에 치여 부상을 입고 상비군이 됐다.

조진호 목사는 파병 중 기도와 성경공부, 예배 등으로 병사들의 '영적 무장'을 돕고, 상담으로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등 '정신적 멘토' 역할을 맡았다. 또 현지의 상황과 종교, 사회적 배경 등을 이해하고 임무에 나서도록 교육을 실시하는 등 간접적 선교활동도 진행했다.

그 가운데 조진호 목사는 이라크 파병 당시 이라크인들의 변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라크만이 중동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에 대해 어느 정도 열려 있는 국가라는 것. 중동이라고 다 무슬림은 아니고, 말씀을 전하거나 궁금한 점들을 알려주다 보면 와서 세례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레즈비언 커플이 주례나 강아지 안수를 요청받은 아찔한 기억도 털어놓았다. 교단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거부했고, 총회가 적절한 서류를 제때 발급해줘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우리 교단이 그래서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 목사와 달리 사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사역을 비롯해 상담과 예배 인도와 설교 등 풀타임 군목 사역을 하고 있는 김은이 목사도 남편의 이라크 파병 당시 미국에 남아 가족들을 돌본 경험이 있고, 2009년 직접 이라크로 파병을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파병 가족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 뿐 아니라,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희생자들을 직접 목격한 체험을 갖고 군인들을 상담하고 군목을 모집한다.

김 목사는 조 목사와 같은 극적인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병사들을 방문하면 자주 와 달라고 하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조진호 목사는 정년퇴직 후 사역할 수 있는 새로운 개척지를 조금씩 탐색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함께하고 있는 조 목사는 제대 후 '복음성가 창작 가요제'를 만들고 싶은 비전을 품고 있 있다.

김은이 목사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이 잦은 이동으로 신앙생활이 어려움을 감안, 은퇴 후 큰 덤프트럭을 사서 운전자들을 위한 '움직이는 교회' 사역 또는 재향군인 병원 사역 등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사역하고 싶은 꿈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