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본문)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가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으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람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힙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저희가 나갈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은 영어로 resurrection입니다. We must be resurrection 우리는 반드시 부활한다. 이것을 믿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오래 다녀서 장로도 되고, 안수 집사도 권사도 됩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었을 지라도 그 사람에게 실질적인 부활 신앙의 확신이 없다면 그 신앙은 거짓이고 헛된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신앙을 믿어지는 믿음이 보배로운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내가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느냐"는 고백을 했지만, 지극히 높은 자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심으로 잉태하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믿었습니까? 믿지 않았습니까?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말하기를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헌신할 의사를 허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약혼했던 마리아가 요셉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낳았다고 해서 요셉에게 맞아 죽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처녀가 애를 배면 동네 사람들이 손에 돌을 들고 와서 때려죽이는 것이 율법이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맞아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낳고 요셉하고 결혼해서 나사렛 동네에서 예수님을 잘 키우고 그 뒤에 아들 넷, 딸 몇을 요셉 사이에 낳아서 행복하게 잘 살기도 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어떤 모양으로 헌신을 하게 되던지 간에 그 일로 인하여 그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일로 인하여 절대로 피해되는 일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입증된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신앙이 믿어지는 확신이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육신의 본능을 따라 살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소망이 없는데 어떻게 영적인 소망을 따라 살 수 있겠는가?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나 저나 부활 소망의 신앙! 이것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부활하고 반드시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으로 더불어 성령에 이끌리어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이 나를 성령케이스에 끼워가지고 아버지가 아들로 더불어 성부 성자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부활이란 약속이 믿어지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설문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목사님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숫자가 69.7%가 거의 70%가 하늘나라도 없고 하늘나라 가겠다는 믿음도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충격적이라 당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교회 나갈 것인가를 상당히 신중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문제가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님이 장님을 인도한다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기 때문에 교회를 선택하는데 상당히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나라 소망이 없는 사람이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할 것인가?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 신앙의 장래가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따라 했던 것처럼 "We must be resurrection"은 우리는 반드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 resurrection이라고 하는 부활은 믿어지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배롭게 여기며, 귀중히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를 볼 때, 이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님의 몸이라 믿고, 그러기 때문에 교회가 예수님처럼 존귀하게 되고 보배롭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기대는 내가 생명의 부활을 통하여 하늘나라 갈 때 까지 내 영혼의 소망을 가꾸고 이끌어 주는 곳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떼에 있어서 내 아버지, 어머니 보다 소중하고 내 아들, 딸 보다 소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이 보다 소중한 것은 내가 이분을 통하여 영적인 소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진심으로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하늘 나라가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부활에 참여해야 되겠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믿어지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 생활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이 바뀌게 되고 행동까지도 바뀌어 생명의 부활에 맞추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 안 될 곳은 가지 않게 되고, 하면 안 될 일을 결코 하지 않을뿐 해야할 일은 내가 아무리 힘이 들고 부담이 되어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아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순교의 향기로운 제물이 될 수 있다면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께서 기쁨으로 맞아주실 때 그 인생이 얼마나 성공적인 인생이 되겠습니까?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행29~31)

여기 갈릴리에서 저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 사람들은 제자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로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그 제자들이 예수님 따라 예루살렘 갔다가 예수님이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팔리워서 빌라도에게 넘겨지고 사형 선고가 떨어지고 십자가 형틀을 지고 가시다가 세 번 쓰러지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12시에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데 시간 맞출 수가 없어서 자기들이 지시받은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신체가 건강한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고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운반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십자가의 형틀을 대신 날라 주는 것이라 기분 나쁘게 생각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예수님과의 인연이 되어서 그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볼 수 있었고, 천지가 개벽을 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이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백부장도 그 사건을 보면서 감탄하는 말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도다'라고 했을 때 구레네 사람 시몬도 감탄을 하고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기 시작해서 그 아내와 아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 가정이 다 하늘나라 가는 부활 소망의 신앙 가문으로 대를 잇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관계가 되어 지면, 어떤 일로 쓰임을 받았던지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영적 신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예수님께서는 10여차례 부활하신 몸을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서 예수님 살아계심의 증인이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님를 죽은 자리에서 살려 내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예언이 성취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편 16:10)

다윗은 다윗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열심히 섬기다가 죽어서 그 조상들과 땅에 묻혀 썩음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 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우리 죄를 대신 벌 받아 죽임 당하셨다가 무덤에 사흘 계셨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썩지 아니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구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일러준 말이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영어로 'Jesus.'"예수"라고 하는 두 글자 그 이름의 뜻은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라는 뜻이 그 이름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말의 뜻이 자기 백성들이 지은 죄에서 구원해 낼 사람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이름이 그토록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라 그 이름으로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힙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행13:39~41)

하박국 1장 5절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1장 1절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강포와 죄악을 일삼고 못된 일을 스스럼없이 행하고 도저히 믿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애가 타도록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없는 자와 같이 살면 안되는 것을 알고 그들이 지은 죄를 부르짖고 매달리면서 이 백성들의 죄악을 중단시켜 주시고 회개할 마음을 주시고 용서 받게 해주라고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멸시하는 사람들이 누구를 멸시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못 된 행동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할 짓 못할 짓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그들이 비참하게 멸망당할 것을 이렇게 예언 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행13:42)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설교를 마치고 나가니까 무언가 듣고, 귀가 열리기 시작했고, 은혜를 받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 한 것입니다.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행13:43)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편 16편 10절에 저가 썩음을 당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부활 시켜 주신다는 이 예언을 묘하게도 사도 바울도 전도할 때 인용했고, 베드로도 사도행전 2장 25-33절까지 이 말씀을 인용해서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힘 있게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3년간 따라 다녔고 그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생전에 직접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적 기사를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전하면서 온갖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통하여 복음이 증거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사도바울을 사로잡아 붙들어 쓰시는 성령님이나, 수제자 베드로를 사로잡아 붙들어 사용하시는 성령님이나 똑같은 하나님의 영이고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는데 베드로가 설교할 때도 이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실질적인 사건이었다고 아주 힘주어 확실하게 증거하고 사도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부활 소망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시편 16편 10절을 인용해서 저가 죽었으나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예언 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셔서 부활 했다고 하는 사실을 베드로도 설교하면서 외쳤으며 사도 바울도 전도 설교할 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목사님들이 성령에 붙잡혀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의 성령에 붙들려 쓰임 받는 종들은 자기 생애를 부활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바치며 희생과 수고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받았던 성령, 사도바울이 받았던 성령은 지금도 강단에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말씀을 듣고 누군가를 지옥가지 않게 전도해서 생명의 부활로 꼭 하늘나라 가게 하도록 전도 대상이 생각나면 그 사람을 찾아가서 기를 쓰고 부활 소망의 신앙을 애타게 전한다면 그 사람도 같은 성령으로 쓰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성령이 충만하면 부활 소망의 신앙, 믿어지는 믿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어질 때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고, 하늘나라 갈 확신과 소망이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조건을 최대한 투자해서 부활 소망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자기 생애를 온전히 헌신하며, 봉사하고 투자할 수 있게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쓰셨던 성령, 사도 바울을 쓰셨던 성령, 지금 목사님을 사용하시고 계시는 성령, 똑같은 성령님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18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했으며, 에베소서 5장18절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했습니다.

성령 충만해지면 우리들의 생활이 하늘나라로 직행하기만을 힘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허욕 때문에 죄지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세의 소망을 목적으로 살아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그렇게 살아지는 것입니다. 땅에서도 하늘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