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식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Photo : 기독일보) 박동식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배가 아프단다. 무얼 잘못 먹어서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잘된다는 소식을 들어서 배가 아프단다. 누가 대형교회 담임으로 갔다는 소식에 배가 아프단다. 개척교회 모임을 하다가도, 어느 교회에 성도가 몇 명 왔다 하면, 또 배가 아프단다. 자신의 처지는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이 이름을 내면 배가 아프단다. 배 아픈 이유도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이런 배 아픈 증상은 본능적인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능적이고 자연스럽다고 해서 모두 바른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돈이 밭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나타나는 증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믿는 이들도 같이 배가 아파야 할까. 본능이니 배는 아파도 시기할 것이 아니라 축복하고 자기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 믿고 안 믿고의 차이일 거다.

아픈 배를 참고 서로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함께 하다가도 한 사람이 잘 되면 시기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를 축복하자. 그래야 하나님 나라가 조금이라도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은 모든 설교는 울리는 징과 같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열매가 없어도 다른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도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연대 의식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사무엘하 15장부터 17장까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연대'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왕의 참모였던 아히도벨을 끌어들여 아버지에 대한 반역을 시작한다. 그 반역으로 아버지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가고자 한다. 하지만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그들의 두 아들 아히마하스와 요나단은 성읍으로 돌려보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자 한다. 또한 다윗은 친구 후새를 압살롬에게 가게 한다. 후새가 소식을 전해올 때까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린다.

이제 후새가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는 과정을 보자. 후새가 압살롬을 만나 '자신은 더 이상 다윗을 따르지 않고 압살롬을 따르겠다' 하면서 '압살롬 왕 만세' 한다. 그렇게 해서 후새는 압살롬의 신뢰를 얻는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자신이 세운 모략을 말한다. 12,000명을 뽑아서 다윗 왕만 죽이고 나머지 모든 백성은 압살롬에게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압살롬도 모든 이스라엘 장로들도 좋게 여긴다. 결정하기에 앞서 압살롬이 후새의 의견도 들어본다. 이제 올 것이 왔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계획대로 하다가 우리 중 몇이 죽기라도 하면 압살롬을 따르는 군대가 졌다는 소문이 날 것이니 그렇게 하지 말라 한다. 대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을 왕께 불러 모으고 난 뒤, 왕께서 그 많은 군대를 친히 거느리고 전쟁터로 가시라 한다.

압살롬이 후새의 계획을 아히도벨의 계획보다 좋게 여겨 하나님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좌절시킨다. 이제 후새는 이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해야 한다. 먼저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빨리 다윗 왕께 사람을 보내 오늘 밤을 광야 나루터에서 보내지 말고 강을 건너가시라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전멸당할 것'이라 전하라고 한다. 사독과 아비아달이 자신의 아들들인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에게 전해야 하는데, 그들은 지금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에느로겔' 샘터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느 여종을 보낸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가서 알린다. 탄로가 나자,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바후림 마을로 가서 어떤 사람의 집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숨는다.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보리를 널어놓아서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한다.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에 와서 여인에게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 여인은 '그들이 방금 저 강을 건너갔다'고 말한다. 그들이 뒤쫓아갔으나 찾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다윗 왕에게 가서 강을 건너가시라 하자 모두 요단강을 건너간다.

후새의 처음 말이 다윗에게 닿는 과정을 보면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다. 후새->사독과 아비아달->여종->아히마아스, 요나단(바후림 여인의 도움)->다윗. 후새와 다윗 사이에 중간 과정을 연결해 주었던 인물들이 있었기에 다윗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길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가? 비록 작은 역할을 담당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점이 많아지면 선이 된다. 그런데 그 선에서 하나의 점이라도 빠지면 선은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니 작은 점 하나라도 얼마나 소중한가. <아주 작은 어린 양 한 마리를(원제: 그의 나라 온 땅에)> 이라는 찬양곡이 있다. 가사가 이렇다.

아주 작은 어린양 한 마리를 애태우며 찾으시는 하나님

보잘것없는 과부의 헌금을 넉넉히 받으시는 하나님

강을 따라 버려진 한 아이를 지도자로 세우시는 하나님

일꾼들이 쓰다 남은 버린 돌로 머릿돌을 삼으시는 하나님

가장 낮은 이들을 하늘 높이 올려서

하늘 아래 모든 권세 부끄럽게 하시네

후렴) 이토록 놀라운 그의 나라 온 땅에

이토록 아름다운 그의 나라 온 땅에(2번)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비전을 함께 공유한 공동체다. 교회가 크든 작든 하나님 나라 계주 경기의 한 구간을 담당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손에 들려 있는 복음의 바톤을 떨어뜨리지 않고 다음 주자에 건네주며, 우리 귀에 담겨 있는 기쁜 소식을 다음 사람의 귀에 전해주는 것이다.

불가사리들이 조류에 휩쓸려 해안으로 밀려오자, A가 햇볕에 말라 죽게 된 불가사리를 다시 물에 던져 넣는다. 이것을 본 B가 A에게, '당신이 그런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A는 다른 불가사리를 집으며 "얘한테는 변화가 있겠지요!" 했다. 이 예화를 언급하면서 리퀴드(liquid) 교회 담임목사인 팀 루카스는 "한 사람, 한 아이, 한 가족, 한 아파트를 위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1」'고 했다.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 작은 것을 위한 사랑과 헌신이 하나님 나라를 앞당길 수 있다. 진정한 변화는 거기서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점 하나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귀한 역할이 있음을 깨닫고 점과 점으로 이어져 있는 거룩한 연대에 틈이 없게 하자. 그렇게 이어진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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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팀 루카스, 워렌 버드, 유정희옮김, 『리퀴드처치』(규장, 2022), 370-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