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끼리 갔다 와 난 이제 못 가..." 오랜 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너희들끼리 갔다 오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당신 몸도 예전 같지 않으시다며 장시간 차를 타는 일을 못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조금은 머리가 더 세시고, 허리도 조금은 더 굽으셔서 진작에 예전 같지 않으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어머니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괜히 더 속히 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우린 미국에서도 왔는데..."
그랬습니다. 장장 11시간 30분만에 한국엘 왔습니다.1992년 3월 10일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래, 한국으로 오는 길은 늘 힘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태풍 때문에 44 시간이 걸렸던 적도 있었지만, 특별히 마스크를 쓰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어야 했던 이번 11시간 30분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온 것은, 늘 그리운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콧속 깊이 찔러 대는 PCR 검사를 마다하지 않은 것도 늘 그리운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나고 있는 어머니는 제가 그리워하던 어머니가 아니셨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쫄딱 망했을 때 가세를 일으켜보겠다며 보험 가방을 들고 친척 집을 전전하시던 용감했던 어머니도, 제가 아직 세상을 방황하고 있었을 때 저를 좀 바르게 키워보겠다며 소리를 지르시던 엄한 어머니도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금 더 작아지고, 조금은 초라해진 어머니만 계셨습니다.
아아, 얼마나 더 어머님을 이곳에 붙들어 둘 수 있을까요? 얼마나 더, 이렇게 서글퍼진 어머니라도 앞에 모시고 옛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에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를 산다고 하시는데, 저는 얼마나 더 제게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하여 지혜로울 수 있을까요? 엡 5:15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십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후회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일까요?
2022년 9월 10일 토요일, 오늘은 공교롭게도 추석입니다. 제가 30년만에 처음으로 어머님과 함께 맞이하는 추석 아침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님께 고운 옷 한 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마도, 가게 문을 다 닫았을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미리 하지 못했는지... 아쉽지만 몸이 아프신 장모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한 벌 사드려야겠습니다. 이제 장모님을 뵈러 길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추석 명절에 처갓집에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이, 아프신 장모님을 후회없이 사랑하고 돌아오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후회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이번 주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멀리 있으니, 여러분들이 더욱 그립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