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기반 원작 깊은 이해 없어 설정과 분위기 파괴
그 과실만 향유하려다 앞뒤 안 맞는 괴상한 서사 산출
PC 추구 평등·자유, 서구 기독교 신앙과 문화서 유래
기독교에 거부감 보이는 PC 태생적 모순 보여준 사례

◈소설 원작의 설정 파괴: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에서 주제의식 변주의 문제점

현재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에피소드 3까지 진행된 상태로, 각각 서사의 중반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대단한 팬덤을 거느린 소설 원작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그래서 처음 영상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원작 팬들은 기대감과 함께, 설정 파괴에 대한 강한 우려를 내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현재, 많은 팬들이 설정 파괴 및 서사 진행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원작 소설인 <불과 피>(조지 마틴 저)가 판타지 장르의 고전이라 취급될 만한 작품은 아닌 만큼(2018년 발표), 그 내용을 이미지로 구축하는 데 어느 정도의 자유도는 허용되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서사의 긴박감을 양호하게 유지하고 있는 덕에, 설정 파괴 논란이 어느 정도 불식되는 모습이다. 특히 왕권을 향한 왕가 구성원들과 귀족들의 광기 어린 집착과 수싸움을 잘 표현해서 원작의 주제의식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애초 원작이 판타지 장르의 고전 중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톨킨의 <실마릴리온>이다. 이 대서사시의 팬들 대부분은 원작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치밀하고 온전한 영상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영상화 프로젝트는 애초 약간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큰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조건을 떠안고 출발한 셈이다.

그나마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는 피터 잭슨 감독이 원작의 서사와 설정을 상당히 존중하는 입장이었기에, 일부 극적인 장면에서의 내용 수정을 제외하고(가령 헬름 협곡 전투에서 원작에는 없던 엘프군의 가세라든가, 원작과는 전혀 다른 사루만의 죽음 등) 전체적으로 원작 소설의 설정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연출을 선보였다.

특히 금지된 욕망(절대 반지)에 대한 인간의 집착과 그에 저항하는 선의지 발현이라는 톨킨의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전체 서사의 중심에 둔 덕분에, 원작의 주제의식이 잘 보존된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

반면 그 프리퀄인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주인공인 엘프 갈라드리엘의 여성적 강인함과 탁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 주변 남성 캐릭터들의 능력치나 성격을 크게 격하시켜 표현한다는 날선 지적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원작의 여러 중요한 서사들, 특히 시간대 설정을 마음대로 편집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올바름(PC) 이념, 특히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데 주목하다 보니, 정작 초월적 힘을 가진 반지를 둘러싼 서사와 성경의 천사들에 대한 비유로 등장하는 마이아와 엘다르에 대한 톨킨의 원 설정이 약화되거나 무시된다는 문제점을 보인다. 다시 말해, 제작진이 원작의 주제의식을 깊게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지 전달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원작의 분위기와 설정, 주제의식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 원작의 메시지 보존: 기독교 사상과 문화를 뿌리로 삼는 톨킨의 <실마릴리온> 

원작에 담긴 부분적 설정을 수정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주제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 이는 포스트모던 문화양식의 대표적인 기법 가운데 하나이다.

원작이 전통적인 가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서사나 메시지를 선보인다면, 그 재생물(영상화가 되었든, 패러디가 되었든 간에)은 원작의 외형을 어느 정도 남기되 그 메시지를 기묘한 방식으로 변조해서 오늘날에 맞는 새로운 주제의식을 선보인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기존 대중에게 각광받던 작품 양식이나 설정의 힘을 빌려, 낯설고 새로운 메시지를 보다 친숙하고 손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메시지가 기존의 작품 양식과 설정을 과도하게 파괴할 때 발생한다.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정치적 올바름 이념의 한 지류인 경쟁적 페미니즘을 부각시키기 위해 원래의 기독교적 주제의식을 거의 말살해 버렸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안에는 수많은 지류들이 있고, 그 지류들 전체를 싸잡아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전통적 가부장제는 여성의 삶의 가능성, 그리고 신앙의 가능성을 억압해 왔다.

기독교회는 "남종과 여종"의 평등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면서 이를 신앙생활 현실에 적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전통적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떠맡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남녀의 평등과 조화로운 상호작용을 촉구하는 페미니즘의 근본 가치는 원칙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

문제는 극단화된 페미니즘이다. 이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해서 삶을 지배하는 권력을 아예 여성 편으로 가져오려는 페미니즘의 지류로서, 남녀의 관계에서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을 장려한다. 이런 페미니즘은 근래 정치적 올바름 이념의 탈을 쓰고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에서 여성 캐릭터의 탁월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타 남성 캐릭터들을 악하거나, 어리석거나, 무능한 인물로 격하시켜 그려내는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감독과 제작진이 캐릭터와 서사 연출 측면에서 무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아마존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나, 제작진은 상대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연출가와 각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애초 총괄 제작자인 J. D. 페인과 패트릭 멕케이는 <스타트랙 3> 작가진으로 참여한 것 외에 눈에 띄는 경력이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원작의 설정과 주제의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듯, 원작에 없는 새로운 메시지(페미니즘) 전달에 몰두하다 원작의 설정과 분위기를 파괴하는 쪽으로 서사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게다가 거의 수백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고 1만 2천 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신화적 대서사시 <실마릴리온> 특성상, 전체적 주제의식을 확고하게 붙들지 않고서 캐릭터나 서사를 구성하면 원작과 전혀 상관없는 분위기의 영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주인공 갈라드리엘을 통해 페미니즘 사상을 주로 부각시키는 작품이다.

이는 <실마릴리온>이 성경의 구성 방식을 염두에 두면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톨킨은 애초 이 작품을 성경의 구성방식과 시간 길이를 생각하면서 작성했다. 

그는 성경이 인류의 타락과 구원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과 사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에피소드가 집결되어 있는 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실마릴리온>을 집필할 때 성경의 주요 주제인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멜코르, 사우론 등)의 대결, 반신적 존재자들(마이아, 엘다르)과 유한한 존재자(두네다인, 인간, 드워프, 호빗 등)들의 갈등과 협력을 주제로 설정했고, 여기에 더해 자신의 아내 이디스 톨킨과의 평생에 걸친 사랑을 신화적으로 그려낸 베렌과 루시엔 이야기를 부각시켰다.

즉 <실마릴리온>은 톨킨 자신의 삶과 사랑과 신앙을 성경의 구성방식과 가르침을 빌려 신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제작진은 원작에 반영된 이런 깊은 집필 전략과 정감을 전혀 적중시키지 못한 채, 일부 시청자들에게만 설득력을 발휘하는 정치적 올바름 이념을 부각시키느라 원작을 파괴하고 있고, 이에 원작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는 유독 기독교에 거부감을 보이는 정치적 올바름 이념의 태생적 모순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애초 이 이념을 태동시킨 평등과 자유 사상은 서구 기독교 신앙과 문화로부터 유래된 것인데, 정치적 올바름 이념에 경도된 이들은 그 뿌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오로지 그 과실만 향유하려 하다 보니 결국 앞뒤가 맞지 않는 괴상한 논리와 서사를 산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