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르네상스 시대에 최고의 책을 묻는다면 주저함 없이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말합니다.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요 진정한 개혁사상가였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여러 작품을 남겼고 그 작품들이 당시 개발된 인쇄술을 통해 전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페스트 후 유럽의 인구는 8천만 명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에라스무스와 토마스 모어 같은 인문학자들 책이 1만부 이상 팔렸다합니다. 전유럽이 인문학 서적을 읽고 종교개혁의 기운을 품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토마스 모어와 함께 북유럽 르네상스를 이끌며 종교 개혁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종교개혁은 에라스무스가 낳고 루터가 부화시켰다고 말합니다.

인문학의 왕자라고 불렸던 에라스무스는 헬라어와 라틴어에 정통하고 방대한 독서로 탁월한 인문학자였습니다. 그래서 헬라어 성경과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였고, <그리스도 병사의 단검>, <격언집>, <대화록>, <자유의지론> 그리고 <우신예찬>을 저작했습니다. 모든 저서들이 당대 화제의 서적들입니다. 신부가 쓴 책의 논리가 천주교의 입장과 전혀 다른 책입니다.   

우신예찬은 에라스무스가 3년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가 토마스 모어의 집에 도착해서 쓴 책입니다. 에라스무스 스스로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뒤따라오는 자기 서적을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면서 한 주 만에 완성한 책입니다. 이태리에서 목격한 3년 동안 교황과 추기경 등의 부조리를 보면서 느낀 점을 단숨에 정리한 것 같습니다.

우신예찬은 중세적 질서와 종교적 허위의식을 조롱하며 그 부조리를 폭로합니다. 당시 기득권층 부조리를 까발리고 조롱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13쇄가 팔렸답니다. 그 시절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주로 기득권층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책은 어마어마하게 팔린 것입니다.

우신예찬은 풍자소설입니다. 풍자는 웃으며 지적하고 까발리는 유쾌한 폭로입니다. 로마시대에 시작된 풍자문학이 르네상스에서 꽃을 피웠고, 우신예찬이 꽃 중의 꽃입니다. 우신예찬은 모리아라는 여신의 입을 통해 시원하고 통쾌하게 세상을 풍자합니다. 모리아(Moria)는 스스로 신들과 인간들을 즐겁게 해주는 어리석은 신, 우신(遇神)이라고 소개합니다.

우신예찬에서 우신은 어리석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여기서 '어리석음'은 다양합니다. 우선 그냥 어리석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는 똑똑한 척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우신이 주로 공격한 대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거룩한 어리석음 즉 예수님 정신을 말합니다.

우신예찬은 당시 교회가 갖고 있었던 중요한 문제, 즉 미신적 신앙, 형식과 절차에 얽매인 제도적 신앙 그리고 돈과 권력을 탐닉하는 탐욕적 신앙을 지적합니다. 우신예찬은 그리스도의 철학, 예수정신을 보여 줍니다. 교회 체제나 교권이나 종교 생활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생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천주교 신부였던 에라스무스가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의 용기, 정의감, 저항정신이 돋보입니다.

우신은 자신을 아버지 '부유'와 어머니 '청춘'의 딸이라고 소개합니다. 우신의 유모는 '만취'와 '무지'입니다. 우신의 하인들은 '자아도취' '아부' '태만' '환락' '경솔' '음란 호색'이며, 우신의 머슴은 '광란 축제'와 '인사불성'입니다. 우신은 이들을 통해 세상만사를 다스리고 복종케 합니다.

우신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어리석음이라고 합니다. 어리석기에 존재하고 어리석기에 세상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진짜 어리석은 인생을 조롱합니다. 다음은 잘난체하고 똑똑한 척하는데 진짜 어리석은 바보들을 조롱합니다. 귀족들, 노름꾼들, 성인 숭배자들, 8품사에 매달리는 문법학자들, 등등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똑똑한 바보들입니다.

우신은 신학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이들은 스콜라 신학자들입니다. 당시 스콜라 신학자들은 괴상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대답하면서 비생산적이고 무가치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들은 똑똑한 바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신의 조작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신은 교권자들의 어리석음을 고발합니다. 교황과 추기경들은 예수를 대리한다고 하면서 예수와 정반대의 삶을 산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가장 무서운 적이 교황이라고 조롱합니다. 수도원을 지키는 수도사들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발 매듭의 수나 허리띠의 색깔에 규칙을 만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규칙을 지키느라 예수님 가르침에 소홀합니다.

청빈, 기도, 눈물 그리고 고행에 몰두해야 할 교황들은 재물과 영광 그리고 쾌락에 빠져 있고 금전을 부지런히 모으느라 너무 바쁩니다. 악한 군주들을 가르치고 저항해야 할 추기경들이 오히려 장군이 되어 싸움을 주도합니다. 주교(Episcope)는 이름 뜻(돌보는 자)대로 양 떼를 보살펴야 하는데 잘 먹는 것밖에는 모릅니다. 우신이 고발하는 어리석은 교회 모습입니다.

교황은 사도들이 담당했던 돌봄과 긍휼의 사역은 추기경에게 맡기고, 추기경들은 주교들에게 이양하고, 주교들은 또 사제들에게 이양합니다. 사제들은 은밀하게 이득을 취하느라 그 일은 탁발수도사들에게 이양합니다. 탁발수도사들은 이를 양털 깎는 목자들에게 이양합니다. 이런 모습이 우신의 조작입니다. 여하간 우신의 손에 놀아나는 세상은 어리석은 세상입니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을 통해서 거룩한 기독교의 어리석음을 소개합니다. 이 어리석음은 예수님의 삶에서 나타나는 어리석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친구로 삼았습니다.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바보처럼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바보 영성이 세상을 살리고 천국을 연다고 가르칩니다.

우신예찬은 카톨릭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과 정반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고발했습니다. 이 책을 읽었던 유럽 시민들은 이미 궤도를 이탈한 카톨릭의 어리석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당시 전 유럽이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타락한 천주교를 보고 부글부글 끓던 유럽이 이 책으로 종교개혁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이 우리 자화상을 발견하는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