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테일러
"아바, 예수님 시대 사용된 '아버지' 의미해
하나님 '아빠'라고 부르는 것, 매우 부적절
전능하신 하나님에 너무 가볍고 버릇없어"

이영진
"아바, 헬라어 가능한 유대인들 도입 술어
성서신학자들 좌파적 반동 따른 비평일 뿐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호칭

돌아온 탕자
(Photo : 위키피디아) 18세기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화가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 1708-1787)의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773).

로마서 8장 15절과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등장하는 바울이 사용한 아람어 '아바(Abba)'가 우리 말로 '아빠(Daddy)'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TGC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복음과도시'가 소개한 크로스웨이(Crossway) 출판사 부대표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의 글에서다.

테일러 부대표는 헬라어 권위자인 신약학자 머레이 해리스(Murray Harris)의 책 《Navigating Tough Texts: A Guide to Problem Passages in the New Testament(신약 난해 본문 탐구)》을 인용해 "아바는 예수님 시대 성인이 통상 사용하는 '아버지'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 따르면, 탈무드를 비롯한 유대 문헌들에 '아이가 밀 죽을 먹을 때, 곧 젖을 뗄 때가 되면 우리의 아빠(dada)와 엄마(mama)라는 말인 아바('abba)와 임마('imma), 을 배운다는 표현이 나온다고 한다(바빌로니아 탈무드 Barakot 40a).

그러나 '아바'가 유아어에서 시작됐더라도, 예수님 시대에 이 말은 성인이 통상 사용하는 '아버지'를 의미한다는 것.

그는 '아바'가 오늘날 '아빠'에 해당하는 유아 언어가 아니라, 성인 자녀가 아버지를 예의바르고 진지하게 이르는 용어이자, 친숙한 입말(口語)이라고 주장했다.

테일러는 "어린아이의 신뢰와 순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 가족적인 단어에는 단순함, 친밀함, 안정감, 애정의 관념이 붙어 있다"며 "그래서 그 단어에 들어 있는 따뜻하고 친밀한 느낌을 끌어내려면, 우리는 이 말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의역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바울이 '아빠'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면, 틀림없이 그가 알고 있던 그리스어 파파스(papas)나 팝파스(pappas)를 사용했을 것"이라며 "이 단어야말로 아버지를 이르는 아이들의 언어 파파(papa)나 대디(daddy)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저스틴 테일러 부대표는 '아바'를 '아빠'로 번역하면 부적절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더 제시했다.

첫째, '아바'는 신약 성경 세 군데(마가복음 14:36; 로마서 8:15; 갈라디아서 4:6)에 등장하는데, 여기서 이 단어는 '아버지(헬라어 호칭 호 파테르)'로 번역돼 있다.

둘째,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pater hemon)'라 부르라고 가르치셨다(마 6:9).

셋째,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 17편 모두 '아버지(모두 아람어 '아바'를 헬라어로 옮긴 것으로 추정)'로 시작한다.

넷째, 나이가 많든 어리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창조주, 만물의 주재를 이를 때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가볍고 버릇없기 때문이다.

테일러 부대표는 "하나님에게 부적절한 친밀감을 나타낸 그리스도인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여러분은 나그네 삶을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벧전 1:17)'"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말하자면, 주님의 기도에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른다는 것은 곧 모든 사람의 전지전능하시고 불편부당하신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평범한 '아빠'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되며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영진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크투 DB


◈아바, '아빠'가 맞다

반론도 제기됐다. 이영진 교수(호서대)는 SNS에서 "'아바'는 '아빠'가 맞다"고 반박했다.

이영진 교수는 "'아바 아버지'는 바울과 같은 1세기 초대교회에서 활동하던 헬라어를 할 줄 아는 유대인 네이티브들이 도입한 술어"라며 "아바 아버지의 원문을 옮겨보면 'Ἀββᾶ ὁ Πατήρ', 언제나 '아바 호 파테르'이다. 관사 호(ὁ)가 빠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아바(Ἀββᾶ)는 아람어를 쓰는 유대인의 아바(אָב)를 헬라어 독음으로 덧댄 것으로 보인다"며 "즉 관사 호는 파테르를 명시하고, 아바는 그 관사에 덧씌운 관사적 기능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제기했다. "이 파테르는 우라노스나 제우스가 아니라 유대인 자신들의 하늘 아버지라는 의미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 유대인 중에서도 우리(바울과 같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는 너희(바울의 그리스도교와는 적대적인 유대인들 또는 유대교 때가 덜 벗겨진 그리스도인 포함)와 달리,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게 아니므로 '아바'라 호칭할 수 있다고 구별하려는 이유에서"라고 밝혔다.

이영진 교수는 "성경에까지 활자로 '아빠'라고 옮긴 건 문제가 있지만, 의미상 아빠로서 시니피에(기호의 의미(記意), 말에 있어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 편집자 주)까지 박탈하자는 이런 주장은, 이런 주장을 하는 성서신학자들 자신의 좌파적 반동에 따른 비평이지 진실은 아니다"며 "'아바'는 '아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부류로는 피츠마이어(Joseph A. Fitzmyer), 제임스 바(James Barr), 그리고 한국의 차정식과 뉴스앤조이 등이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아바'는 '아빠'이다, 라고 초기에 소개한 학자는 아마도 위대한 학자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일 것"이라며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들을 의식한 호칭이 '아바 아버지'"라고 자신의 주장을 의미심장하게 요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