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나누어 먹는다. 그러나 그런 전통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길이 없다. 몇 가지 전설이 있지만, 진부한 이야기를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최근에는 부활절에 구운 달걀, 삶은 달걀에 색칠을 하고, 예쁜 스티커를 붙이고, 어떤 이는 그런 것을 예술과 문화로 이해한단다. 또 부활절에 삶은 계란 나누는 운동을 큰 기업에서 움직이고 있다. 부활절에 계란 먹는 것이 전통에서 나왔고, 단백질 보충에 도움이 될 것이고, 어려운 양계업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전통이 오래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가 오래되면 교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의 핵심인 예수께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한다면서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전설인 삶은 색계란 먹는 행사로 변질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전도사님이나 유년 주일학교 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계란에서 병아리로, 번데기에서 나방으로, 새봄에 마른 나뭇가지에서 움이 돋아나듯이> 예수는 부활했다고 설명했었다. 지금도 목회자들의 설교도 이 지경이다. 자기들 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과학적(?), 합리적(?)으로 해설해 보겠다는 심리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런 목회자들은 참으로 웃기고 모두 엉터리다. 대부분 이런 분들은 성경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운 사람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확신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인문학적으로 취급하거나 성경을 전기, 소설, 교훈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하나님의 아들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었다. 또한 예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이것은 전 성경이 우리에게 밝히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Plan of Salvation)이자, 메뉴얼(Manual)이다. 그래서 예수는 죽어야 했고, 예수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다. 또한 이것은 성경의 기록이 명백히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니 부활을 믿는 자는 성경이 참됨을 믿고, 성경이 참됨을 믿는 자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믿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른바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 신학을 가진 사람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논리적 합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좀 낫다는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20세기의 천재 신학자 바르트를 모두 따르면서, 성경의 이적과 기사는 굳이 따지지 말고, 그 본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며,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만 알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믿으니 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사건은 신화화하고, 그냥 이야기로 삼아, 이른바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라 하여 기독교를 <종교화>, <문화화>, <교양화>로 둔갑시켰다. 그러니 부활절을 색계란이나 까먹고 즐기는 축제(Festival)로 만들었다.
확실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은 스토리가 아니고 사건(Fact)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도 부활도 그 당시에 온 세계의 대형 뉴스였다. 만약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없었고, 오늘의 교회도 없다. 기독교 성경은 좋은 이야기가 쓰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교양서적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생을 죄에서 구속하시려는 아젠다이다. 그 성경은 그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핵심이다.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은 가히 세계적 사건이었다. 성경 기자들은 그 전후좌우를 아주 자세하게 육하원칙에 의해서 들은 데로, 본대로 예수 그리스도 부활을 소상히 밝혔다. 예수의 부활을 기록한 분은 무려 6명이나 있다.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동아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의 엘리트 기사가 그 사건을 자기 입장에서 취재한 꼴이다.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베드로 특히 베드로는 부활의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자였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개종한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서 자기 자신을 계시해주었다. 이런 기자들의 내용은 조금씩 강조점이 다르면서 더욱 진실에 가깝도록 취재했고, 이 그리스도 사건(Christ event)은 너무나 자명한데도 이것을 신화로, 교양으로 덮여 씌워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사실로(Fact) 알기보다는 전설로 이야깃거리로 교양인의 입맛에 맞도록 만든 메시지야말로 기독교 신학과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초자연 사건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진리를 역사적 사건으로 덮어놓고 그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만을 알면 그만이라는 교양 종교도 많았다. 우리가 그 모양이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기원전 그리스도(B.C)를 없애고, BCE라는 새로운 단어를 써서 공동시대 이전, 문화시대 이전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아마도 노무현 시대 때 거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만들면서 종북, 진보 역사학자들이 역사에 <예수 빼기>, 역사에 <기독교 빼기를> 시도한 것 같다. 그래서 국립박물관 유물 연대는 BCE로 통일되었다. 이는 정통 유대주의 자들과 진보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이 역사를 나누는데, 역사의 중심에 예수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사상이다.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요지경인데도 한국교회는 이 놀라운 부활절에 계란이나 삶아 먹고, 부활 성가만 부르면 된다고 보는지?
예수의 다시 사신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고, 그 사건은 악을 정복하고,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온 열방 가운데 증명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리의 희망이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정성구 칼럼] 부활절과 삶은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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