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농사는 인류의 발전과 함께했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 한국과 일본의 농업에서 벼 농사는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인류가 언제부터 벼 농사를 시작했는지 알수 없지만, 쌀은 인간의 주요 식량으로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해 왔다.

쌀을 주식으로 했던 우리나라도 농업하면 벼 농사를 떠올릴 만큼 중요한 작물이다. 인류가 벼 농사를 시작 하면서 벼 농사를 위한 농경법 역시 발전해 왔다.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농업 기술은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태양력도 음력도 농업에 필요한 절기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정된 농지에서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벼 농사법은 '이앙법'이다. 이앙법이란 벼가 자라야 할 농지에 직접 씨앗을 파종하지 않고, 모판에 씨를 파종하는 방법이다. 모판에서 자란 벼이삭을 농지에 옮겨 벼를 재배 하는 방식이다.

이앙법은 벼의 모종을 일정 시기까지 구분하여 재배한다. 이앙법 개발로 인해 벼를 처음 관리하는 모판과 벼를 길러야 할 토지를 나누어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앙법은 초기 벼가 자랄 때 겪게 되는 병충해와 질병을 관리할 수 있게 되어 훨씬 튼튼한 벼를 재배할 수 있게 되었고, 직접 씨를 뿌려 자라게 하는 벼보다 해충에도 훨씬 잘 견딜 수 있는 재배법으로 알려져 있다.

벼가 모판에서 새로운 땅으로 옮겨지면서 적응력과 생명력이 극대화되어, 훨씬 더 많은 쌀을 수확할 수 있는 벼로 자라난다. 또 잡초와 경쟁해야 하는 직파법으로 재배된 벼와 다르게 잡초와의 경쟁에서도 견딜 수 있게 된다.

또 벼 농사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잡초 제거를 위한 초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초기 벼 농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직파법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지고 온갖 잡초와의 초기 경쟁을 해야 하기에 벼들이 얼마 살아 남지 못했다.

살아남은 벼도 잡초와의 초기 경쟁으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해 병충해를 견딜 만한 내성을 갖지 못했다. 결국 직파법으로 재배된 벼는 해가 거듭될수록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결국 종자 씨앗으로 살아남을수 없는 지경까지 되었다.

계속 한곳에 머물면 익숙해진다. 모든 것은 편안함에 익숙해진다. 익숙함이 계속되면 안주하게 된다. 안주하다 보면 새로움을 거부한다. 안주하다 보면 관성이 생겨 일을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시계추는 계속 일하지만, 주어진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관성은 타성을 만들고 타성은 새로운 생산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결국 도태된다.

반대로 익숙함을 벗고 떠나는 것은 어렵다. 새로운 환경,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익숙해질 만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일도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강해진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새로운 힘이 생긴다. 새로움을 원한다면 주기적으로 새판을 짜야 하는 이유다. 판을 갈아줘야 하는 이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삭을, 야곱을, 요셉을,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땅, 낯선 땅으로 몰아 가셨던 이유다. 새판에 옮겨 심을 때 이들도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다.

사람도 때로 새로운 판을 짜야 할 때가 있다.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감독을 교체하거나 코치진을 개편한다.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거나 오래된 선수를 방출하기도 한다.

히딩크가 4강 신화를 이루어냈지만,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을 맡기지 않는 이유다. 메이저리그도 선수들에게는 장기 계약을 하지만, 우수한 감독과 코치라도 4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꺼린다.

변화가 시작될 때 가장 나중까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사람이다. 익숙함에서 결별하기란 생각보다 쉽지않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야 한다. 결국 넓게 파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변화와 도전도 필요함을 의미한다. 사물도 사람도 판을 바꾸어야 새로워지고 강해진다. 하물며 교회도 판을 바꾸어야 새로워질 수 있다.

코칭리더 한근태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그의 코칭에서 "계속 한곳에 머물면 거기에 익숙해진다. 안주하게 된다. 설렘이 사라진다. 반대로 익숙한 데서 떠나기는 힘들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낮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야 하고, 새로운 일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사람은 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판을 바꿔야 한다. 낯선 곳에 도전해야 한다(<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한마디 리더의 비유(한근태), 163쪽)."

지속적인 도전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럼 교회는 어떻게 판을 바꿔야 하나? 그것은 선교다.

교회는 스스로 판을 바꾸지 못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교회의 판을 바꾸셨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나자, 교회는 흩어지고 새로운 곳에 심기워졌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에게 적응하면서 교회는 강해졌다. 새판에 옮겨진 교회는 새로운 교회가 되었다. 새로운 생산성과 창조성을 만들어 내는 교회가 되었다.

사마리아와 주변으로 흩어진 교회는 새로운 판에서 스스로의 생명성을 입증했다. 자칫 타성에 젖을 수 있었던 초대교회가 새로운 창조적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다.

교회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판을 만들어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로마로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아시아로 다양한 새판으로 옮겨지면서, 교회는 새로운 창조성을 만들어 냈다.

한국으로 전해진 복음은 100년 동안 한국교회라는 인류 역사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인류 역사에 유례가 없는 부흥과 열매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회도 익숙함과 편안함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다.

주기적으로 일하는 것 같았지만 시계추처럼 타성과 관성에 젖어든 교회들이 되었다. 낡은 건물들이 새로운 건축물로 바뀌었지만 생각까지 새로워지진 못했다. 그런 증거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이번 코로나 사태로 교회는 직격탄을 얻어맞았다.

한국교회도 지금까지의 타성과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교회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신선하지 않다. 교회도 이미 기득권처럼 여겨지는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관성과 타성에 젖어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였지만, 하나님은 코로나 사태를 통해 교회의 판을 완전히 바꾸셨다.

교회가 스스로 문을 걸어 잠갔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시대의 온라인 환경에 교회도 준비해야 한다. 뒤집어진 판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미 기존의 판은 엎어졌다. 새로운 판이 깔렸다.

새로움은 낯섬과 불편함이라는 말과 같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죽었던 삶을 다시 살린다. 새로움에 적응하기 위해 새롭게 일할 수 있다.

온라인 예배도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준비하는 사역자들에게도 온라인 예배가 더 이상 첨단의 테크놀로지가 아니다.

선교 현장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서서히 하늘 길이 열리기 시작 했지만 아직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국가들이 있다. (미국은 모든 하늘길을 열고 백신을 맞은 여행객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선교의 판도 기존과는 다른 새판이 열리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고 선교 현장으로 들어가야만 경험할 수 있던 현지 선교사님들을, 이제는 목장 모임에서 줌으로 만날 수 있다. 한국으로 가야 현장 집회와 강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한국의 목사님들을 만난다.

선교는 익숙함에서 낯섦의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물리적인 익숙함을 벗어나 물리적인 새로움을 선택하는 의미였다면, 지금은 선교도 보다 폭넓은 개념으로 사용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온라인 예배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선교 현장에서는 좀더 쉽게 교회와 예배를 접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온라인 강의와 모임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지구촌 곳곳을 언제든지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온라인도 선교의 현장임을 인식한다면 교회에게 온라인이란 세계는 교회에 새로운 판을 제공하는 장소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현장 예배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현장예배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하는 마음이 커진 것 역시 귀한 결과다. 하지만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판을 외면할 수 없다. 보다 더 많은 온라인 교회가 개척되어야 한다.

온라인이 교회 공동체라는 매우 독특한 신앙의 형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래도 온라인 교회는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현장 예배를 대처하고 임시방편으로 현장 예배를 대신하던 온라인 예배가, 좀더 확장성을 가지고 온라인 교회를 개척해 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온라인 세계도 우리의 선교 현장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시작된다면, 교회는 좀더 확장성을 가지고 현장과 온라인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갈 수 있다.

불판도 새로운 꽃등심이 나오면 갈아야 한다. 교회도 새로운 판이 깔렸다. 새판으로 옮겨지면 교회도 새로워지고 새로운 창조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람도 교회도 새로운 판에 옮겨지면, 새로워지고 강해진다.

박종순 목사
제자들 교회
<열혈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