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년 지구촌의 수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몰아넣고 움츠리게 만든 불편한 단어 -코로나로 새해 첫 인사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코로나란 단어가 나오기에 그렇습니다. 모름지기 신실한 성도들은 매일 성경을 열어 말씀을 대합니다. 남미의 많은 국가를 포함하여 20여 국가 5억 이상의 스페인 계통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성도들에겐 성경을 읽을 때'코로나'로 쓰여진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들의 성경에 기록된 코로나는 결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오히려 사모해야 할 대상이라고 교훈하고 있음을 아시나요?
저는 스페인 언어권 성도들의 심정으로 아직도 현재 진행형 코로나 위기 속에 진정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 대신 참된 코로나의 복된 영적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글 성경엔 면류관, 영어성경의 크라운(crown) 으로 번역된 단어가 라틴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성경 등 그 외 여러 성경번역에 지금도 corona 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코로나는 원래 왕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그 단어의 뿌리는 고대 헬라어 "코로네"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언어권 성도들의 성경에 코로나란 단어로 남아있게 된 역사적 배경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Damasus 1세 교황(380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라틴어는 로마제국의 주요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문자는 헬라어(Greek)였습니다.
그때 로마 기독교가 국교란 이름 하에 하나로 묶고 확장하기 위한 필요가운데 헬라어 성경이 아닌 라틴어 성경이 번역되게 됩니다. 이일을 교부시대라 불려지는 시기의 한사람인 Eusebius Hieronymus (영어 Jerome) 제롬의 감독하에 구약의 히브리어와 신약의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로 성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헬라어로 쓰여진 면류관에 해당되는 단어를 고대부터 사용되던 헬라어 코로네가 라틴문화에 더 어울리기에 corona로 번역되었고. 바로 그 라틴어 성경이 근 일 천 오백 년 동안 로마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언어학적으로 라틴어는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의 모체 역할을 해 온지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번역된 다양한 성경에서 코로나란 단어가 사용된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스페니쉬 성경엔 거의 70회 이상, 이탈리아 성경에선 90 회 이상 코로나란 단어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루에도 수없이 들려지는 코로나란 단어를 들으면서 성경에도 만나는 코로나 앞에 스페인 언어권 성도들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겠습니까? 굳이 코로나 질병이 아니라도 수 없는 재해와 삶을 위협하는 수많은 것들 앞에 정말 저들이 갈망하게 되는 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면류관을 사모하는 삶이라는 것을 간증하지 않을까요?
우리도 한번쯤 우리말 번역 면류관 대신 코로나로 바꾸어 읽는다면 기분이 어떠실까요? 코로나를 사모하며 받으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 코로나는 결코 우리를 불쾌하거나 저주받은 단어가 아니라 사실은 사모해야 할 축복의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쓰신 관이 가시로 만들어진 코로나 이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9절)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불태워 온 복음 전도자로서 마지막 그의 삶의 결산을 바라보며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코로나(면류관)가 (디모데후서 4장 8절) 예비되어 있노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와 함께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동역자들을 일컬어 나의 기쁨이요 코로나(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 (빌립보서 4:1) 이라 말하면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나의 코로나(면류관) 나의 자랑인 사랑하는 동역자여! 함께 신앙생활하고 계신 지체들을 향하여 나의 사랑스런 코로나 형제님, 코로나 자매님이라 부르실 수 있으신가요?
코로나 펜데믹의 위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광야 골짜기를 우리는 통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며 움츠리게 만드는 그것도 잠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그 어떤 위험도 코로나 19도 오미크론도! 왜냐하면 세상이 결코 묶어놓을 수 없는 자유를 주시기 위해 주님이 가시로 만든 코로나를 쓰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오늘 경험하는 온갖 환란과 아픔을 넘어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스런 코로나 (면류관)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자랑스럽게 세워지는 (데살로니가전서 2:19)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2022새해 아침에 소망해 봅니다!
- 주님, 참된 코로나의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북가주 기독교 총연합회 회장 이동성 목사 (상항서머나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