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가리키는 한자성어 중에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이르는 '혼용'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 속 '무도'를 합친 표현입니다.
2년 가까이 진행된 코비드 사태로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이 다 되도록 아무런 업적도 없이 실정과 정책혼선만을 거듭하고 있는 현정부와 대선을 앞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 제시는 커녕 후보자들의 도덕성 논란에 빠져 서로에 대한 비난과 진부한 이전투구의 양상만을 반복하고 있는 한국의 현상황에 대한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0여 년 간의 근현대사를 돌아봤을 때 한국 역사에서 '혼용무도'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8.15해방, 6.25동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현시국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이라도 태평하고 평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항상 전쟁과 정치적 격변, 혼란과 갈등으로 얼룩진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보수정권은 보수정권대로, 진보정부는 진보정부대로 항상 임기말이 되면 부패와 무능, 측근 비리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정치권의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죽어나는 건 죄 없는 국민들뿐입니다. 구약성경 룻기 1장 1절에 보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라며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헬조선'이니, '7포세대'니 하며 온갖 부정적인 용어들이 난무하는 현시대의 한국 상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AD 1세기의 팔레스타인도 모든 것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혼용무도'의 세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1, 2장을 읽어보면 평안과 따스한 위로를 받기보단 우리 마음을 근심케 하고 불안을 주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통 불편하고 부정적인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세우신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제국의 압제에 신음하고 있었고, 로마 총독에 의해 분봉왕으로 임명된 '헤롯'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동족의 고혈을 짜내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첫 부분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등록하러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향했다고 나오는데, 이 호적을 등록하는 목적도 식민지의 인구 수를 파악하여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함이었습니다. 실로 어리석고 포악한 지도자 몇 사람 때문에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과 희생을 당하여야 하는 '혼용무도'의 극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 과정을 살펴봐도 불안함과 불길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어린 처녀의 임신을 두고 주위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소문이 난무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 유대교의 엄격한 율법 하에서 여성의 불륜이나 간음은 돌로 쳐 죽여야 할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크나큰 죄였던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요셉과 마리아가 겪어야 했던 수모와 편견, 마음고생은 오죽이나 컸겠습니까?
더구나 호적을 하러 가는 북새통에 아이를 출산할 곳도 찾지 못해 허름한 여인숙의 온갖 악취와 말의 배설물들로 가득 찬 여물통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고, 동방박사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헤롯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2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학살하여 그 어미들의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갓 태어난 아기 예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는 애굽으로 피신해야 하는 등 지옥도 이런 생지옥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상황이 부정적이었던 '헬이스라엘', '헬베틀레햄'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늘 영광, 보좌, 권세 다 버리신 채 스스로 인간의 연약한 몸을 입고 억압과 고통, 피눈물로 가득한 지옥같은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는데, 또 동시에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사 그 심판과 형벌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구원과 소망과 생명의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은혜와 위로를 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다고 모든 것이 좋아지고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그 분 안에 거해도 우리는 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부정의한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러나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모든 고난을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 비록 불의한 세상은 영원히 바뀔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나의 관점과 자세가 변화되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며, 나 자신의 평안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나 보다 더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그들에게 구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참다운 의미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세주 탄생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가장 낮고 천한 신분인, 들판에서 양들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해졌듯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가난한 자, 낮은 자, 소외된 자, 불의한 세상에서 차별당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또 이들을 진심으로 돌보는 자, 이들이 당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어지러운 '혼용무도'의 시대, '헬조선'의 상황 속에서도 누가복음 2:14에 기록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를 외칠 수 있으며 용서와 구원의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어려운 시기지만 2021년의 크리스마스가 외롭고도 의로운 길을 걸어가는 많은 분들에게 참다운 평화와 위로와 안식을 전해줄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글 | 이준수 목사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