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Photo : 기독일보) 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3) 실망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다. 사탄이 장터에 자기 물건을 많이 내어 놓고 팔고 있었다. 팔려고 내어놓은 제품을 보니 인기, 박수, 풍요, 형통 등 모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가 비매품으로 깊이 숨겨놓은 물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망"이라는 제품이다. 사탄은 좋은 제품을 팔면서 거기에 "실망"이라는 것을 슬쩍 끼어서 파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것들을 가지고 기뻐하던 사람들이 어느 새 실망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실망"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을 나약하게 하고 무너뜨리기에 강력한 효력을 가진 것이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실망은 사역의 현장에서 많은 사역자들이 경험하는 아픈 현실이다. 최선을 다해서 뛰고 달리면서 열심히 전도했지만 결실이 없거나 훈련과 교육 사역의 열매가 잘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이 차가울 때에 전도자는 실망하기 쉬운데 그건 사탄의 한 무기에 걸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망하게 되면 누구든지 낙담하고 힘을 잃고 일할 의욕이 없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포기할 수도 있다. 사탄이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경우를 보라. 그 많은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엄청난 과업을 앞에 놓고 그는 긴장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거의 실망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들이 나를 향해서 공격하고 불순종하면 어떻게 하지?"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주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내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오직 강하고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죄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5, 7).

다윗은 그의 생애에 많은 공격과 고난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사울에게 쫓겨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 힘을 얻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 42:5).

또한 강력한 선지자인 엘리야도 힘에 지쳐서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는 갈멜산에서 많은 바알 선지자들과 대항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여 엄청한 승리를 얻었지만 그 후에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도망쳐 광야로 나갔다. 조금 전에는 포효하는 무서운 사자같던 엘리야가 지금은 완전히 나약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왕상 19:4). 엘리야는 아무도 자기를 돕는 자들이 없다고 생각하여 크게 낙담하고 실망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여 다시 힘을 얻고 일어날 수 있게 하셨다.

최선을 다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거나 일이 힘들고 장애물이 많을 때에는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장애물 경주"를 한다고 생각하고 더 힘을 내라. 장애물이 종종 우리에게는 사고를 방지하게 하는 유익이 되기도 한다. 장애물이 없는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에는 대부분의 차들이 고속으로 달린다. 그래서 고속 도로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대부분이 대형 사고가 된다. 그렇지만 길이 굴곡이 많고 커브가 심한 길에서는 차량들이 조심스럽게 천천히 가야 하기 때문에 사고가 적은 편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는 길이 모두 평탄하고 일마다 계속해서 잘 풀리게 되면 교만하거나 방심할 수도 있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게 된다. 실망에 빠지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힘을 상실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4) 욕심

모든 지도자는 일반인들보다 일에 대한 야심과 꿈이 크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칫 그것이 개인의 욕심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자신의 야심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더 좋고 많은 것"에 대한 욕심을 극복해야 한다. 더 높은 직위,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인기, 더 좋은 소유물에 대한 욕심이 숨겨져 있으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크게 책망하실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그 많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겠지만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그런 것을 자신의 편리와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고 이웃과 나누고 베풀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른바 "기부 천사"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재산이 많아질 때에 더 좋게 보이는 곳(?)을 찾아 멸망의 도성인 소돔성으로 내려갔다가 결국 가정이 깨어졌다. 그의 물질적인 욕심이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여호수아 군대에 속한 아간의 사건을 기억하는가?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욕심을 품고 금지된 전리품을 자기 장막에 감췄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끝내 돌에 맞아 죽는 비극에 처하지 않았는가? 초대 교회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건이 있다. 그들은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재물을 바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헌신을 결단했는데 자신의 소유 일부를 감추고 그것을 전부인 것처럼 사도를 속이는 바람에 결국 부부가 급사한 것이다. 재물을 드리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지만 거짓으로 드렸기 때문에 "바치고 죽은" 슬픈 사례이다. 배신자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훗날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앉으실 때에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놓고 다툼이 있었는데 주님께 책망을 들었다.

한편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도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선한 마음을 가졌다 (딤전 6:6). 사도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고 말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경고한다 (히 13:5). 다만 하나님을 향한 선한 욕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예를 들어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모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열심있는 마음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 42:1). 남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갓난 아기가 젖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또 그와의 동행을 갈구하는 것은 선한 욕구가 된다.

사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나님이 사탄을 왜 창조하셨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그는 원래 천사의 위치에 있었는데 그가 자신을 높여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악한 욕심을 가졌다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사 14:13-15). 교만의 탐욕이 사탄을 탄생시킨 것이다. 일에 대한 욕심에 있어서도 분별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