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통한 종교다원주의 전파 '첨병'
감성적·직관적 측면 중시한 수피즘 영향
주인공, 세례 요한과 무함마드 섞은 인물
예수, 인간이자 실패한 종교 지도자 묘사

◈<듄>과 수피파 이슬람: 사막 종교문화에 대한 예찬

영화 <듄>(Dune)은 광신적 종교집단 베니 제서릿을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다.

원작 소설 <듄>에서 이 종교집단은 버틀레리안 지하드라는 폭력 혁명을 통해 탄생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오렌지 가톨릭 성경이라는 것을 경전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등 지구의 문명으로부터 유래된 각종 종교사상을 통합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종교 설정에는 소설 <듄>의 작가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종교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일단 <듄>이라는 소설은 그 제목의 의미(dune, 사막의 모래언덕)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막 지형을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는 허버트가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미국 오리건 주 사막 생태에 대해 연구하고 취재한 경험이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막이라는 자연환경과 종교문화의 연합을 구상하던 허버트가 주목한 것은 사막과 건조기후 스텝 지역을 중심으로 태동한 종교, 이슬람이었다.

여기에 더해 허버트는 원래 가톨릭 신자였지만, 1950-1960년대 당시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일본 선불교에 매료되어 불교로 개종한 상태였다.

이에 허버트는 <듄>에 선불교적 요소와 이슬람 요소를 주로 반영해서, 베니 제서릿이라는 소설 속 종교집단을 창안해 냈다.

기독교, 불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내부에도 여러 교파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수니파, 시아파가 있고, 그 외 이런저런 소수 교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수피파가 있다.

수피파는 9세기 경부터 온전한 분파를 이루었고,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였던 메카, 메디나, 다마스커스, 바그다드 지역보다는 주변부인 소아시아, 카프카스, 중앙아시아 지역 투르크인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수피파의 교의는 수니, 시아파의 교의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신비주의적이었다. 그들은 신앙의 지적 측면보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측면을 중시했다.

신은 인간의 교리나 경전 안에만 담아둘 수 없고, 각종 종교적 체험과 자연 만물의 신비한 조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종교성에 대한 강조는 사막과 초원에서 거친 자연환경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가던 투르크 유목민족과 용병들에게 커다란 설득력을 지녔다.

이로 인해 수피파는 초기 오스만 투르크, 사파비 왕조, 그리고 무굴 제국 수뇌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화약제국(Gunpowder Empires)이라 불리는 근대 중동, 남아시아 대제국들이 모두 수피파를 기반삼아 탄생한 국가였던 셈이다.

물론 이 제국들은 훗날 내부의 체제가 안정되고 영토가 거대해지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제도화도 잘 되어 있는 수니파 혹은 시아파 이슬람으로 전향한다.

허버트가 선불교의 관점으로 이슬람 교파들을 바라볼 때 가장 매력적으로 여겨졌던 것은, 당연하게도 수피파 이슬람이었다.

신 혹은 무한자를 지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는 확고한 인격으로 여기기보다는, 신비하고 불가해하면서도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분으로 믿었던 수피파의 사상은 공허를 직시하며 인간의 무지와 자기비움을 강조하던 선불교의 성향에 잘 들어맞는 것이었다.

듄
▲<듄>에 등장하는 사막민족 프레멘. 수피파 이슬람을 추종하던 투르크 유목민족이 모티프가 되었다.

◈<듄>과 종교다원주의: 종교 통합 과정에 수반되는 신앙의 약화

원작소설 <듄>의 저자 허버트는 사막이라는 기후환경에 맞춰 문화적, 생태적 개연성이 있는 SF 종교서사를 쓰려고 했다.

이런 그의 의도에 따라 수피파 이슬람과 선불교, 그 가운데서도 특히 수피파 이슬람이 베니 제서릿이라는 종교, 그리고 프레멘이라는 사막 종족의 행태와 문화를 설명하는 데 주로 활용되었다.

작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선택받은 자, 폴 아트레이드(티모시 샬라메 분)는 전 우주에 널리 퍼진 종교인 베니 제서릿으로부터는 '퀴사츠 헤더락(Kwisatz Haderach)'으로, 대단히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집단주의 문화를 가진 사막민족 프레멘에게는 '리산 알-가이브(Lisan al-Gaib)'로 불린다.

전자는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 카발라에서 빌려온 히브리어 용어로서 '길을 예비하는 자'라는 뜻이고, 후자는 아랍어로서 '다른 세계에서 온 목소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쉽게 말해 폴 아트레이드는 유대교-기독교의 세례 요한과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섞어놓은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더해 훗날 우주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만 계략에 의해 시력을 잃고 권좌에서도 물러나며, 결국 사막에 홀로 버려져 방랑하게 되는 폴 아트레이드의 비참한 운명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 왕의 서사를 빌려온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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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의 주인공 폴 아트레이드. 유대교-기독교의 침례 요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섞어놓은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듄>은 모든 종교가 하나의 초월자에 대한 신앙의 다양한 배리에이션이며, 그 초월자의 정체는 자연 만물을 감싸는 무와 공허의 신비라는 선불교 사상을 적극 반영하는 작품이다.

이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막과 우주라는 무대, 그리고 수피파 이슬람 사상을 끌어온 것이 <듄>의 종교서사이다. 그리고 이를 서구적인 감성으로 포장하기 위해 기독교, 특히 가톨릭 신앙 요소를 여럿 차용했다.

이로써 <듄>은 포스트구조주의 종교관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고, 히피 문화운동으로 대중화에 성공한 종교다원주의를 대중문화 콘텐츠에 적극 반영했고, 그 결과 커다란 상업적 성공, 문화적 반향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듄>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1942)의 우주 대서사시를 빌려와 종교서사로 변용하는 데 성공했고, 훗날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 워즈>를 제작할 때 상당한 모티프를 제공했다.

영화로서는 <스타 워즈>(1977)가 먼저 제작됐지만, 원작 소설로서는 <듄>(1965)이 약 10년 정도 먼저 나와서 <스타 워즈>의 배경 설정과 서사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타 워즈>의 감독이자 제작자였던 조지 루카스 역시 히피 운동의 영향을 깊게 받은 선불교 개종자였다는 점이다.

<듄>은 오늘날 대중문화계에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최초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고도로 발전된 기계문명에 인해 인간성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담는 동시에, 그 반작용으로 나온 광신적 종교사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강하게 억압하고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폭로한다.

결국 <듄>의 메시지는 어떤 형태로든 간에 배타적 진리 주장을 펼치는 신앙의 약화를 종용한다.

<듄>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대중문화 속 종교 이해를 결정짓는 작품이 되었다. 포스트구조주의 종교관은 학문적으로 나름의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반면 과거 1960-1970년대 히피 문화운동, 그리고 최근의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대중문화라는 경로를 통해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일반에 널리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했다.

영상 예술의 탈을 쓴 종교다원주의는 직관적이고 매혹적이라서 대중이 손쉽게 수용할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를 옹호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어떤 종교에서든 '신실한' 신앙을 갖는 것을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 현대적인 감성에 맞지 않고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준다.

<듄>의 서사를 지배하고 있는 종교적인 믿음 일반에 대한 이러한 폄하의 정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제국의 정치를 막후에서 조종하는 광신적이고 폐쇄적이며 종교집단 베니 제서릿에 대한 묘사는 명백히 중세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실패한 메시아로서 폴 아트레이드의 일대기는 기독교인들이 고수하는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를 이상향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종교 지도자로서 궁극적으로 단지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폴 아트레이드라는 가상의 인물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