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하에 평화롭던 유대 땅에 환란의 바람이 몰아친 것은 기원전 175년부터였습니다. 형을 이어 셀레우코스 왕이 된 안티오쿠스 4세는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적입니다. 우선 그는 자신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며 신의 현현을 의미하는 "에피파네스"를 자기 이름에 붙입니다. 또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야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자기 마음대로 글 대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야손의 대제사장 임명은 다윗 이후 지켜졌던 사독출신이 대제사장되는 전통을 깬 것이고, 이때부터 성직 매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안타오쿠스 4세의 악정에 대항하여 시작된 마카비 전쟁은 잠자던 이스라엘 백성을 깨운 사건이었습니다. 마카비 혁명은 제사장 맛디아스가 시작하고 마카비로 불렸던 셋째 아들 유다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맛디아스의 다섯째 아들 요나단과 둘째 아들 시몬이 셀레우코스 왕조가 무시할 수 없는 마카비 혁명군으로 세웠습니다.

요나단은 내부적으로는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고, 밖으로는 외교력을 발휘하여 당시 유럽의 패권 경쟁을 했던 로마와 스파르타 등과 우호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모습은 셀레우코스 왕실에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에 오른 지 10년 만에 셀레우코스의 실권자였던 트리폰 장군의 계략에 말려 체포되고 맙니다. 요나단이 체포되자 맛디아스의 둘째 아들인 시몬이 마카비 혁명군의 지휘권과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권을 승계하여 마카비 혁명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트리폰은 교활했습니다. 포로가 된 동생 요나단을 내세우면서 시몬과의 협상을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트리폰을 믿지 못하고 협상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트리폰은 요나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트리폰은 본국에 돌아가 어린 왕을 살해하고 왕이 되어 셀레우코스 왕조를 직접 통치합니다.

시몬은 트리폰에 의해서 왕에서 쫓겨났지만 셀레우코스의 왕권을 주장하던 데미드리오 왕과 우호관계를 맺고 유대인들에 대한 세금을 면제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42년에 '시몬 제1년'이라는 공식 연호를 사용하면서 '하스몬 (Hasmon) 왕조'를 공식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물론 왕조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이 하스몬 왕조는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하스몬 왕조는 다윗 왕조가 바벨론에 멸망한지 445년 만에 팔레스틴에 유대인이 세운 왕조입니다. 비록 다윗 왕조의 혈통은 아니었지만 종교와 정치에서 독립한 명실상부한 유대인의 왕조입니다. 하스몬 왕조는 바벨론 유수이후로부터 20세기까지의 긴 세월 속에서 유대인이 세운 유일한 독립 국가입니다.

하스몬 왕조의 공식연호를 선포한 시몬은 아직 예루살렘 요새에 남아 있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군대를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군대를 강화했고 외부적으로는 로마 및 스파르타와의 외교 관계를 공고히 했습니다. 시몬이 통치하는 기간 중에 유대 땅에는 평화와 번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왕좌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에 의해 여리고 지역 사령관으로 임명된 시몬의 사위 프톨레매오가 장인이 시몬과 시몬의 두 아들들 즉 두 처남을 살해합니다. 프톨레매오가 유대 땅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방문한 장인과 처남 둘을 살해한 것입니다.

이때 시몬의 셋째 아들 요한 힐카누스가 살아남습니다. 사전에 상황을 파악하고 프톨레매오가 보낸 암살단을 제거하고 아버지의 리더십을 승계합니다. 힐카누스는 군대를 이끌며 나라 안정을 꾀합니다. 하지만 국내 권력 다툼을 평정한 안티오쿠스 7세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큰 위기를 만납니다.

힐카누스는 이 위기 상황에서 몇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우선 화친을 제안하고 다윗왕의 묘를 열어 삼천 달란트를 안티오쿠스 7세에게 바쳤습니다. 또 유대인 군대를 셀레우코스에 보내 안티오쿠스 7세가 파르티안과 벌이는 전쟁을 돕습니다. 대신 유대의 종교적 자유와 평화를 보장받습니다. 나아가 힐카누스는 안티오쿠스 7세가 파르티안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세력을 잃자 독립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합니다.    

힐카누스가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하며 사마리아를 정복할 때 그리심산에 있던 성전을 파괴했고 이두메를 정복하면서 많은 이방인들을 유대교로 개종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에 남는 이방인을 유대교로 강제 개종 시킨 사건인데 이때 헤롯 대왕의 아버지 헤롯 안티파터가 개종하고 유대인이 됩니다. 헤롯 안티파터는 힐카누스 신하가 되고 그 때부터 로마 황실과 하스몬 왕가를 넘나드는 권력 줄타기로 결국 팔레스틴 지역의 실력자가 됩니다.

힐카누스는 외부적으로 주변지역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바리새파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힐카누스의 어머니가 한 때 이방인의 포로였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힐카누스는 바리새파를 떠나 사두개파가 됩니다. 바리새인들을 주요 직위에서 제거하고 사두개인들을 중용(重用)합니다.

바리새파와 갈등한 힐카누스가 급격히 힘을 잃고 사망하자 장남인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는 통치체계를 바꾸어 자신을 왕이라 칭하고 권력강화 작업을 합니다. 형제와 어머니를 정적으로 처형하거나 감옥에 투옥시킵니다. 이렇게 시작된 왕실의 권력투쟁이 하스몬 왕가의 몰락을 재촉하고 헤롯 가문의 등장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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