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구약의 끝과 신약의 시작 사이에 제법 긴 시간의 공백이 있습니다. 통상 말라기 4장에서 마태복음 1장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간격이 400년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시간에 관한 견해에는 이견(異見)이 있습니다. 400년보다 더 짧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여하간 이 기간이 유대민족에게는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세계 질서의 패권도 바벨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헬라 그리고 로마로 주역이 바뀝니다.

이 기간 중에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패권을 차지했던 제국마다 속국을 다스리는 정책이 달랐습니다. 바벨론 이후 강대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이스라엘은 지배국 정책에 따라 운명에 결정되는 운명의 부평초 세월을 보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와 포로로 살았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역사의 급류에 휘말려 이곳 저곳으로 강제 이주 당합니다. 또 헬라와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된 유대 땅에 살던 유대인들도 자녀들의 교육과 생업을 위하여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그리고 로마 등등의 주요 국제도시로 이주합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이동은 당시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교의 확산을 가져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인 10명이 있는 곳에는 회당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당시 주요도시마다 회당이 있었고, 1세기 말에 로마세계에 1천여 개의 회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유대인의 이동과 정착 현상은 1세기 기독교 선교에 결정적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이 신구약 중간기가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발생한 유대인의 문화가 그리스 로마 문화와 함께 신약형성에 또 초대 교회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예수님 시대나 신약성경이 구약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개념들이 신약에 등장합니다. 예수님도 신구약 중간기에 생성된 종교적, 사회적 제도와 문화를 수용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물론 기독교는 허공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있었던 삶의 공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신구약 중간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신약 성경도 초대 교회 신앙 문화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중간기에 배경이 되는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인문학적 접근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 밖의 정세도 혼란스러웠지만 유대 민족 내부도 복잡했습니다. 이 시기에 발생한 대표적 사건이 마카비 혁명입니다. 이 마카비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하는 것이 하스몬 왕조입니다. 마카비 혁명은 민족과 신앙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시작된 독립 왕조가 하스몬 왕조입니다. 하스몬 왕조는 유대인의 마지막 독립왕조입니다. 

마카비 전쟁은 기원전 167부터 기원전 142년까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유대인들과 셀레우코스 왕조의 전쟁입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헬라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유대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점점 심해진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해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통치하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기원전 168년 당시 강력했던 로마의 개입으로 안티오쿠스 4세는 이집트를 정복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퇴각해야 했습니다. 귀환도중에 안티오쿠스 4세는 분풀이를 예루살렘에서 합니다. 명분은 부정한 방법으로 대제사장이 된 야손의 파행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침공한 안티오쿠스 4세의 군대는 성전을 약탈하고 많은 유대인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의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의 제사와 신앙 활동을 금하고 성전과 제사장들을 모독하였습니다. 유대교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시기가 다니엘 세 친구의 풀무 처형과 다니엘의 사자굴 처형이 벌어졌던 시기입니다. 이런 만행들 앞에서 유대인들의 분노는 하늘에 닿았습니다. 이에 제사장 맛디아스가 다섯 아들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하여 싸우기 시작 합니다. 이렇게 마카비 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디아스가 죽고, 그의 다섯 아들 중에 가장 용감했던 셋째아들 유대가 아버지를 이어 혁명을 이끕니다. 유다가 이끌었던 혁명군은 게릴라 전술로 연전연승합니다. 3년간의 투쟁 끝에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합니다. 혁명군을 이끌었던 유다의 별명이 망치라는 뜻인 마카비였고, 그래서 이 혁명을 '마카비가 이끄는 혁명'이라는 뜻으로 마카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마카비 혁명군은 성전에 들어가 제단을 다시 쌓고 성전을 청결하고 대대적인 성전 회복식을 합니다. 이 성전 회복을 기념하는 것이 지난 호에서 다루었던 수전절입니다. 마카비 혁명군이 성전을 되찾았지만 예루살렘 성안에는 여전히 셀레우코스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혁명군과 안티오쿠스 군대의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격렬한 전투 와중에 유다가 죽고 요나단과 시몬이 형 유다의 장례식을 했습니다. 장례식 후에 요나단이 혁명군을 이끌고 투쟁을 계속하다가 셀레우코스 왕조와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전쟁을 끝내고 요나단에게 유대지역 통치권을 주었습니다. 요나단은 곧 대사장직을 차지하며 유대 전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넷째형 시몬이 유대를 통치하며 하스몬(Hasmon) 왕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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