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가장 기본은 절대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교제하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신부터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만드신 만물 가운데 당신의 신성을 분명히 드러내었기에 하나님이 없으니까 믿지 않겠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롬1:20).
만드신 만물의 첫 번째는 자연으로, 장엄하고 정밀한 자연을 보면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꾸려나갈 수 있도록 완전한 여건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디자이너가 반드시 있다는 뜻이며 그런 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 자체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여러 측면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조금 색다르게 접근해보겠습니다.물질이 우연에서 우연들이 거듭되어서 인간이 되었다면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만도 아주 신기한데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비하지 않습니까? 최근에 뇌 과학의 발달로 두뇌도 혈액과 산소가 공급이 되어야 살 수 있는 세포로 구성된 물질적인 신체조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안에 아주 고급한 지정의를 갖고서 사고 활동을 이뤄내고 있는데 물질이 우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 당장에 동물도 새끼를 잃으면 눈물을 흘리며 슬픈 감정을 내보이고 먹이 감을 어떻게 쟁취할지 계획을 세워서 의지를 동원해 실행하는데, 인간은 그런 지정의가 최고 단계로 진화 되었을 뿐이라고 반발할 것입니다.그러나 동물은 아침에 바다에서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와 저녁에 너무나 아름다운 노을을 드리우며 지는 해를 보면서 절대로 경건해지거나 겸손해지지 않습니다. 그 벅찬 감경으로 시가를 지어서 읊조릴 수 있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비가 오는 소리에 취해서 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온갖 다양한 색깔과 모습으로 변화하는 산천을 보고 음악을 작곡하는 것도 인간만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들 생로병사나 희로애락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시기 질투 갈등 분쟁 같은 부정적 요소와 화해 구제 용서 관용 사랑 같은 긍정적 요소들이 씨줄 날줄처럼 교차적으로 직조되는 삶과 인생을 두고 소설을 지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런 일들이 물질에서 우연히 생길 수 있는 산물일까요?
인간은 굉장히 독특한 존재입니다. 물질계에 제한된 동물적인 존재임은 틀림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자연에 종속되지 않고 완전히 초월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도 가졌습니다. 물질에서 우연히 물질로 진화된 존재라면 자연에서 시작하여 자연에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자연을 부인하거나 초월하려면 죽음만으로 가능할 뿐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나면서부터 얼마든지 자연에 묶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장 쉽고도 단적인 예로는 스스로 생명을 포기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연을 초월해서 자연을 사용해서 자기 뜻대로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이처럼 자연에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의 특성은 자연 밖에서 자연을 만드신 초월적 존재가 부어주어야만 가능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고 설명합니다. 성경은 또 인간이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지만 그런 자유 의지를 준 초월적인 존재가 따로 있음은 절대로 잊지 말라고 선언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물질이 과연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계획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에 종속된 물질은 자연을 넘어서거나 자연 자체를 부인하거나 파괴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은 물질이 우연히 진화된 존재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만이 전부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인간은 도저히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 앞으로 겸손하게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출처:박진호 목사 홈페이지 www.whyjesuson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