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마게도냐를 방문하고 이어서 헬라를 방문하고 아시아로 돌아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드로아(Troas)에 잠시 머물며 주간의 첫날(주일)에 성찬식도 하고 설교도 합니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앗소(Assos)로 가서 헤어졌던 일행들을 만나 일행들과 함께 미둘레네(Mitylene), 기오(Chios) 그리고 사모(Samo)를 지나 밀레도(Miletus)에 도착합니다. 그러니까 밀레도는 바울의 3차 선교여행 마지막 지점입니다.
밀레도(Miletus)는 소아시아(Asia Minor) 서쪽의 출구 역할을 하는 항구 도시였으며 라트미안 만의 남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당시의 밀레도는 해안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강과 바다에서 밀려온 침전물이 쌓여서 큰 배의 출입이 어려워졌고, 지금은 항구가 메워져 해안에서 7~8km 떨어진 내륙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밀레도는 성경에 꼭 두 번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던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와 밀레도에서 말씀을 나눕니다. 밀레도는 디모데후서 4장 20절에 등장합니다. 인생을 정리하는 바울이 밀레도에 둔 병든 드로비모(Trophimus)를 언급합니다.
행전 20장에 기록된 바울의 밀레도 설교는 사도행전의 다른 설교들과는 차별성이 부각되는 설교입니다. 특히 바울의 밀레도 설교는 성도들(장로들)에게 주었던 메시지라는 차원에서 바울의 서신서 교훈과 설교 내용이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디벨리우스는 누가의 창작성을 강조하면서 서신서의 가르침과 바울의 밀레도 설교의 가르침의 차이를 강조했습니다.
반면 루돌프 페쉬(Rudolf Pesch)는 이 설교의 메시지와 사도 바울이 쓴 목회서신이 유사하다고 전제하면서 몇 가지 이유들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성령에 의해 장로들이 세워졌고, 둘째로 목회 서신이 전제하는 것처럼 거짓 교사 출현을 언급하고, 셋째 이 설교와 목회서신에서는 복음과 바울의 권위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 예르벨(Jacob Jervell)은 바울의 이 설교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만 전한 메시지가 아니라 당시 전체 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전한 설교에서 교회론과 목회론을 풀어 설명합니다. 바울은 회상(행20:18절~21절), 전망(22절~24절), 자기변명(25절~27절), 경고(28절~31절), 축복(32절~35절) 등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분석을 하는 근거는 22절, 25절, 32절에 지금(Now)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바울은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장로들을 설득하면서 예수님처럼 그리고 자신처럼 교회와 양떼를 돌보라고 권면합니다.
밀레도는 오래인 고대 도시입니다. 밀레도는 B.C.14세기에 요새화된 도시입니다. 망하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B.C. 6세기경에는 이오니안 해양 산업의 선도적인 중심지로 출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B.C.334년에 알렉산더 대제가 정복하자 밀레도는 새 역사를 맞이합니다. 이때 놀라운 건축물들이 밀레도에 세워졌고 밀레도는 크게 번창했습니다.
밀레도는 많은 철학자들을 배출한 학문의 도시입니다. 고대 헬라 역사 지리학자 헤카타이오스(Hekataios)가 밀레도 출신입니다. 또 최초의 철학자, 최초의 수학자, 최초의 과학자로 알려진 탈레스(Thales)가 밀레도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 7대 현인중의 한 사람입니다. 탈레스는 그가 창시한 밀레도 학파 때문에 유명합니다. 밀레도 학파는 그리스 최초의 철학 학파입니다.
밀레도 학파는 탈레스 이후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가 이끌어갔습니다. 이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보다 백 년 이상 앞선 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당시 성행했던 헬라 신화적 관점이 아닌 새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이들은 만물의 근원을 자연의 논리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밀레도 학파를 자연 철학파로 분류합니다. 따라서 탈레스의 또 하나 이름은 자연철학자로 부릅니다.
좁은 반도에 위치한 밀레도는 네 개의 항구를 가진 해양 도시였습니다. 태풍과 외침을 막아주는 지형 조건은 평화를 누리는 조건이 되기도 했지만 노리는 적들이 많아 많은 전쟁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침략과 멸망 그리고 재건이 반복되었는데, 재건될 때마다 번창했습니다. 성서지리학자 마크 윌슨은 자신의 책(Biblical Turkey)에서 밀레도가 B.C.6세기경에 가장 번성한 헬라 도시(most prosperous Greek city)라고 말합니다.
밀레도는 농업도시로 출발했습니다. 곡물, 포도, 그리고 올리브의 생산으로 밀레도는 큰 부를 누렸습니다. 아울러 밀레도에는 시장들이 발달했습니다. 미첼 레디쉬(Mitchell G. Reddish)는 '밀레도에 세 개의 시장(Agora)이 있었고, 그 중 남부시장은 고대 헬라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답니다.
밀레도에는 대형 극장이 있었습니다. 헬라 시대에 5천3백명 정도를 수용했는데, 로마시대에는 1만5천명으로 확장되었고, 로마 말기에는 2만5천명으로 계속 확장했습니다. 이 극장의 의자들에 새겨진 글들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다섯 째줄, 서쪽에서 두 번째 줄 의자들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유대인들 좌석"이라고 새겨 있습니다. '데이빗 그레이브'의 성서고고학(Biblical Archaeology)에서 '이는 유대인 지정석을 의미하고, 이는 밀레도에 상당수의 유대인이 거주한 증거다'라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