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미국의 전략은 코로나 백신과 반도체를 앞세워 남북중 삼각편대를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보다 중국이 이끄는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쪽으로 선회하는 남한의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꽉 붙잡은 것이다. 필자는 이전 칼럼('남북중밀월의 서막과 미국의 대응'(데일리NK ))에서 남북중의 밀착에 대해 미국이 공세적으로 대응하며 한미동맹의 위기관리를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미국의 액션은 매우 저돌적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의 강도 높은 대응으로 현재 남·북·중 안에는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강경 드라이브
한미정상회담 이전, 양국의 사전 조율이 있었음에도 바이든 행정부의 깜짝 쇼로 인해, 문재인 정부는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을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바로 직전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6.25 참전 용사(중공군과 전투)에게 명예훈장 수여식을 한 것은 압권이었다. 문재인 정부에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확실히 보낸 것이다. 하나는 북한과 중국의 실체 보여주기로써, 반 민주주의 국가들로 한미 공통의 도전과제라고 정상회담 이후 연설에서 분명히 못을 박았다.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혈맹'으로 지난 70년간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며 매우 끈끈하게 이어왔다는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또한, 처음부터 끝가지 한미동맹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한미동맹을 냉전동맹으로 치부하며 평화동맹으로의 전환을 꾀하려는 것에 대해 분명한 선긋기이며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핵심 축임을 명료하게 각인시켜 준 것이다. 더 나아가 '한미동맹의 파트너 관계'를 한반도, 동북아를 넘은 글로벌한 문제로 보며 그 '파트너 십' 정도에 따라 쿼드문제도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쿼드 참여여부가 한미동맹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간접적인 쿼드참여에 대한 독려이자 강력한 주문이다. 동시에 쿼드 결성 목적을 역내 안보를 위한 대중국 군사적 대응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문재인 정부의 분명한 입장정리를 요구했다. 뒤이어 "뜻을 같이 했습니다"라는 바이든의 발언은 미국의 요구가 어느 정도 수용되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은 선제적으로 남한에게 미사일 사거지 제한 조치(미사일지침)를 해제해 주었다. 이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서 직접 발언했었다. '미사일지침종료'를 비롯해서, 대중국전략으로 문 정부를 강하게 이끈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중국은 곧 바로 '불장난 하지 말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한 지난달 27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리룡남 주중북한대사를 만나 북중의 혈맹관계를 과시했다. 남북중에서 남이 살짝 떨어져나간 모양새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미국의 전략대로 남북중의 밀착에 틈새가 확 벌어진 것이다. 비록, 문대통령이 정상회담 연설에서 한미동맹과 '전시작전권 전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싱가포르 합의 존중', '남북대화와 협력지지'를 연결시키며 소신발언을 했지만 주목을 끌지 못했다. 정상회담 이후 문 정부의 후속행보가 어떠했는지 북한의 국제문제평론가라는 한 인사의 사설로 의해 여지없이 드러났다.
북한, 갈팡질팡하는 문 정부 꼬집기
지난 5월 31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국제문제평론가 타이틀을 가진 김명철이라고 하는 인사의 사설 '무엇을 노린 <<미싸일지침>> 종료인가'를 실었다. 이 사설은 다음 날(6.1) 노동신문에 실리지는 않았다. 북한의 공식적 입장으로 보기에는 좀 애매하다. 하지만, 당의 검열을 받는 북한의 언론 보도 체계 및 속성상 개인의 사견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나온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북한 당국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당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공신력 있는 언론의 한미정상회담 관련 사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노동신문에는 필자 명, '김명철 박사'로 2019년 10월 27일 자에 '사회경제발전과 관리 인재의 역할'이라는 사설이 실렸었다.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과는 분야가 다른 만큼, 동명이인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신문에는 사설을 쓴 필자들 신분 중에 '국제문제평론가'인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만큼 이번에 남한 전문가들과 언론에 주목받고 있는 김명철이라는 인물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듣·보·잡'이다. 그만큼 그의 말에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그나마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있는 만큼 검토할 필요는 있다.
김명철이 그의 사설에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기고,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 연설에서 밝힌 '미사일사거리 해제'발표에 대해 집중공략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사설 제목을 노골적으로 달면서 그 노림수는 바로 한미양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일괄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자위적인 국가방위력강화'의 정당성 담보로 귀결시켰다. 사설 말미에는 문 대통령을 향해 "일을 저질러놓고는 죄의식에 싸여 이쪽저쪽의 반응이 어떠한지 촉각을 세우고 엿보고 있는 그 비루한 꼴이 실로 역겹다"라고 인격적 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장만 봐서는 '비루한 꼴'을 단지 문 대통령이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지침 종료' 사실을 밝힌 것 자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설 이후 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 꼬집는 것이다. 남한의 언론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이후 행동거지를 밝히고 있는데, 특히 '죄의식에 싸여'라는 표현은 압권이다. 김명철이라는 사람이 점쟁이도 아니고 문 대통령의 속을 들여다보기 만무한데, 과감히 이런 표현을 썼다. 그러면서 이쪽저쪽의 반응에 촉각을 세우고 엿보고 있다고 했는데, '저쪽'은 중국과 북한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문 정부가 북한당국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채널을 가동해 직간접적으로 남한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으로 읽히기 쉽다. 또한 '비루한 꼴'이라는 표현에서 남한의 입장이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 및 문 대통령의 연설과는 실재로 차이가 있다는 식의 해명으로 비춰진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지난 달 25일, 정의용 외교부장관의 발언이 북한에 보내는 하나의 시그널이 었다고 본다. 북한 눈치보기는 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이후의 소감 및 지시와는 달리 청와대 참모들과 주무 부처들이 엇박자를 내는 것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청와대와 주무 부처들의 북한 눈치 보기
한미정상회담 직후로 돌아가 보자.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길 기내에서 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최고의 순방,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자평했다. 귀국 후 24일 오후에는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을 하면서 다시 한번 최고의 순방이었고 백신, 안보,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방미 성과를 경제협력, 백신,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의 분야별로 각 부처에서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영민 비서실장은 한미정상회담 후속조치 관계 수석회의를 통해 청와대 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상하게도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부문은 제외되었다. 문 대통령의 SNS 내용을 보면, 대북문제를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었고 직접 구두로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고 하명을 했는데도 말이다. 이 특이사항은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도 나타났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한미정상회담을 '유례없는 성과를 거둔 회담'이라고 하면서 관계 부처에게 후속 조치에 대해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그의 지시 내용에서도 한미동맹,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관련 부처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초까지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논의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발 빠른 행보를 보였는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통일부의 공식 입장은 내지 않고 다만, 주무장관이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소회를 밝혔을 뿐이다.
이런 점들은, 청와대와 내각, 주무 부처들이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만일, 문 정부 인사들이 북한의 눈치를 봤다면 어떤 것을 가장 크게 염두 하였을까? 위에서 기술한 북한의 비공식 사설의 내용대로 '미사일지침 종료'건 인가?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이 사안은 북핵 문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문 대통령의 연설과 SNS 내용에서 북한이 가장 심기가 불편한 지점은 다른 것이라고 본다. 바로,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성김 대북특별대표의 임명을 발표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반응이다. 문 대통령은 성김 대북특별대표 임명에 대해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 연설에서 환영의 뜻을 밝혔으며, 그의 SNS 글에서는 성김 특별대표의 임명이 미국의 깜짝 선물이라고 표현하며 장문으로 성김 대표를 자세히 소개하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했었다. 성김 대표를 '비핵화 협상의 역사에 정통한 분',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여한 분', '통역없이 대화할 수 있는 분'으로 자세히 소개하며 성김 대사의 임명은 미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언제든지 나설 수 있다는 하나의 메시지라고 크게 의미부여를 부여했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매우 우호적인 평가에 대해 청와대 참모와 주무부처 장관들은 견해를 달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김 대표가 문 대통령의 평가대로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여한 바 있지만 제2차 미북정상회담인,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데에도 분명한 역할(영변핵시설 + α)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김정은이 제8차 당 대회 시, 미국을 '최대의 주적'으로 발언하며 선전포고를 했을 때도 그 대응책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성김 대표를 국무무 동아태차관보 대리로 지명했었다. 북한 측에서 볼 때는 매우 껄끄러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성김 대표는 북한의 선 비핵화 입장을 분명하게 고수하고 있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경제적 제제 조치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인 압박을 주문했었다. 무엇보다 '핵시설 신고 및 사찰'을 북핵 문제의 핵심 Key로 보고 있다. 그런 그를 향해 문 대통령이 입이 마르게 칭찬했으니 북한이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겠는가. 청와대 참모들과 주무부처 장관들은 이 점이 매우 신경 쓰였을 것이다. 이것이 지난 달 25일, 정의용 외무부 장관이 대통령 방미 성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와 우리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는 큰 차이가 없다"라는 북한 달래기 식의 무리한 발표의 배경이라고 본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큰 무리수였던지, 그는 3일도 못 지나 그 말을 도로 주어 담았다. 이처럼, 북한 눈치 보느라 갈팡질팡하는 문 정부를 향해 조선중앙통신 사설에서 김명철은 '역겹다'라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딱하고 측은하다.
한미정상회담이후, 북중의 양수겸장
한미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매우 큰 불쾌감을 드러낸 반면, 북한은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그런 북한에게 중국은 '교역 재개'라는 선물공세를 하며 양수겸장을 주문했다. 혈맹관계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북핵문제로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가 작동되는 가운데, 안보리 결의 위반을 감수하면서 까지 미국에게 정면승부를 걸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혈맹관계로서의 한미-북중이라는 냉전당시의 구도가 재현되었다. 치열한 미중 간 신 냉전의 양극체제 속에서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동북아 안보체제'라는 남북중 삼각동맹을 꿈꿔왔던 문재인 정부는 하루아침에 북중의 양수겸장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미국이 북한에게 대화의 창을 열어두었다고 하지만 북미 양쪽에 문 정부의 훈수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북한, 중국에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혀버린 문재인 정부, 한 마디로 외통수에 된통 걸린 것이다.
이글은 WORLDVIEW 7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정교진 박사(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