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Photo : 기독일보) 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신앙의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영적인 무관심이다. 대학에 다닐 때에 어느 사회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많은 학생이 미움, 증오, 이기심 등이라고 답변했는데 교수의 대답은 달랐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대답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서 부부가 자주 말다툼을 하는 것은 그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어떤 옷을 입었든지,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아내와 내 남편을 사랑하면 그가 더 멋지게 보이고 더 좋은 모습을 갖기 원하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는 것이며,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면 영혼이 병들고 망한다. 요즘 세태는 혹 종교적인 것에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영적인 것에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항상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에서는 끊임없이 시끄러운 음악이 쏟아져 나오고, 몸을 마구 흔드는 음악이 정말 음악인지 "춤 시합"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는 서로 다투어 알려고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일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요즘 급상승하는 부동산에 관한 정보나 가상 화폐를 비롯한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권에는 항상 싸우고 속임수가 난무하지 때문에 도외시하는 이들이 많지만 하나님의 일에는 점차 더 관심을 끊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글에서 읽은 내용을 소개한다. 메사추세츠 주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바닷가를 거닐던 어떤 사람이 발에 밧줄이 걸리는 바람에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헤엄을 칠 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하여 소리치며 구조를 원했다. 그런데 주변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단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구조를 요청하는 애절한 소리를 들었을 텐데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물에 빠진 사람은 끝내 익사하고 말았다. 이에 익사자의 가족은 그 젊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현행법에서는 그가 다른 사람을 구조하지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키티 제노비스" (Kitty Genovese)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3:15 분경에 뉴욕의 한 뒷골목에서 "키티"라는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이른 새벽에 한 여자가 강도를 만나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비명 소리를 듣고 38 명의 주민이 불을 켜고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더니 모두 창문을 닫고 불을 껐다. 아무도 그 여자를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그 여자는 그 강도에게 살해되었다. 사람들은 왜 그를 돕지 않았을까? 그것은 사건을 본 사람들이 여럿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경찰에 연락하겠지 생각하고 아무도 연락하지 않았고 또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 공연히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염려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이 무관심의 무서운 결과이다.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는 장자권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붉은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다가 후에 크게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 시대가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지적하시면서 사람이 길에서 피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마 11;16-19). 구두를 닦는 사람은 행인들의 구두에 관심을 많이 갖기 때문에 그의 다른 모습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고, 헤어 드레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모양에 관심이 많아서 자기 영업소를 방문한 사람들의 헤어 스타일을 다 기억한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의 영적인 성장과 성숙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속한 것에는 늘 마음을 쓰면서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다면 그의 영성은 피폐해지고 시들게 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것만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하여 영적인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라 (골 3:1).

성적인 부도덕의 불결

성적인 부정은 영적 생명력의 숨통을 막는 끔찍한 범죄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한 것에서 멀어지면 나타나는 현저한 특징 중의 하나는 우상 숭배와 성적 타락이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대는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 종류와 짐승과 파충류의 동물 모양의 우상을 바꾸고, 자기들의 몸을 함부로 사용하여 급기야 동성애라는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롬 1:23절 이하). 바울은 아데네 거리를 보면서 온 도시에 우상이 가득했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곧 음란과 직결된 것이다.

성적인 불순은 기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해한다.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殿)이다 (고전 3;16). 그러므로 몸을 더럽히는 것은 성전을 더럽히는 것과 같아서 영적인 삶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합하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생애에 결정적인 흠은 그가 왕으로 있을 때에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한 사건이다. 그것 때문에 다윗은 아들이 죽는 혹독한 결과를 치러야 했고 마치 깨끗한 세마포에 시커먼 먹물이 묻은 것과도 같았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정욕적인 문제에 면역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性)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가장 무서운 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돌같이 무관하거나 천사같이 정결한 자가 없다는 것이다.

성적인 것에 몰두하지 않으려면 건전한 취미생활과 함께 깊은 기도가 필요하다. 특히 음란의 유혹이 될 만한 상황과 접촉하지 않도록 한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종류의 영화를 즐겨 보며 또 어떤 음악을 즐기는가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스마트 폰에서 홍수처럼 넘치는 음란물에는 "시험 삼아서라도" 보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즉 불을 피하듯이 검은 숯을 만지지 말고 유혹 주변에 얼씬거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성적 범죄를 저질렀으면 미루지 말고 그것을 자백하고 깨끗하게 정리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회개를 받으신 것처럼 죄가 있으면 감추거나 변명하지 말고 즉시 자백하여 용서받고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영성은 방치하면 먼지가 끼거나 녹이 슬고 병들기 쉽다. 철저한 영혼 관리에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