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의 생애를 살피면 꼭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부모, 스승 가말리엘, 바나바 등등이 그런 인물입니다. 아울러 바울이 전도하고 양육하여 동역자로 세웠던 믿음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바울 혼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실한 동역자들의 협력과 헌신 까닭에 바울의 사역이 열매 맺습니다. 예컨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나, 에바브라디도, 오네시모 등입니다.
이런 점에서 디모데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가장 탁월한 제자요 동역자로 나아가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요, 에베소 교회 후임 목회자였습니다. 디모데는 그리스어로 티모데오스(Τιμόθεος)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 혹은 "하나님께서 높이신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인 듯합니다. 디모데의 일생과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이방인(헬라인) 아버지에 사이에서 소아시아 갈라디아지역 루스드라(Lystra)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친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는 경건한 신자로 디모데를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잘 가르쳐(딤후3:15)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모범 청년으로 양육했습니다(행16장).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서 만난 디모데는 실라(Silas)와 함께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그리스, 마게도냐, 로마 등지에서 전도하였고 에베소교회에서는 담임목회자로 사역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양육하여 신실한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도움으로 적어도 다섯 교회(데살로니가;살전3:1~2, 고린도;고전 4:17, 빌립보;빌2:19~22, 에베소;딤전1:3, 베뢰아;행17:14)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을 때 목격을 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리고 2차 선교여행에 신실한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합니다. 디모데는 1차 선교여행 목격자로, 2차 선교여행 부터는 바울의 동역자로 동행했습니다. 물론 3차 여행도 함께 하면서 에베소교회 개척을 같이 합니다.
디모데 이름이 신약에 26회 등장합니다. 또 그에게 보내진 바울의 편지가 두 권이나 있습니다. 13개 바울 서신들 가운데 8권의 서두에 디모데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할례 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디모데를 안수(딤전4:14)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주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고전4:17),"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딤후1:2)"로 표현하면서 특별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디모데는 A. D.17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디모데를 만날 때 주후 50년경이었고 바울은 48세, 디모데는 33세 경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구약을 배웠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 유대인들을 위하여 바울이 할례 받을 것을 권하자 순종하여 할례를 받습니다. 이미 할례 부담을 없애자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결정이 있었지만 디모데는 할례를 받습니다.
바울은 서신서 곳곳에서 디모데를 높이 평가(Highly value)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역 현장에서 디모데를 중용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동역하며 희로애락을 같이합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는 길에도 디모데가 동행합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을 보면 로마 감옥 생활에서는 디모데와 함께 지냅니다. 선교여행 중에 개척된 교회에서 디모데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천주교 전통은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80세 죽었다'고 말합니다. 폭스는 그의 저서 폭스의 순교사(Foxe's Book of Martyrs, 원제는 Actses and Monuments 이지만 순교사로 더 많이 알려짐)에 따르면 디모데는 주후 97년(디모데 80세) 에베소에서 우상숭배 축제를 준비하는 불신자들에게 헛된 짓을 버리라고 설득하다가 몽둥이에 맞고 앓다가 이틀 후에 죽습니다.
초대 교회사는 빛나는 디모데를 보여줍니다. 큰 지도자였던 속사도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는 디모데서신을 인용하면서 교회 밖의 공격을 방어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도 디모데서신을 수 차례 인용하면서 당시 강력한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를 반박합니다. 터툴리안도 이단을 반박하면서 디모데서신을 수 차례 인용 했습니다. 특히 마르시온과 진짜 성경책이 어떤 것인가를 다투는 정경(Canon)논쟁에서 디모데서신을 부정하는 마르시온을 공격하면서 디모데의 사역과 삶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18살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던 오리겐은 탁월한 영성과 학문으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오리겐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다는 이유로 '제2의 디모데'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리겐이 디모데를 따랐기 때문에 존경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디모데를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추앙하였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그리고 교회사에서 디모데는 신실하고 헌신된 신앙인입니다. 디모데의 헌신과 열정이 신약 교회가 세워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순종하는 겸손한 제자였습니다. 반면 바울도 디모데를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관계는 동역하기 어렵다고 하는 한국 교회에 큰 도전이 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고, 바울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