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이고니온으로 갔다가 찾아간 곳이 루스드라와 더베입니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방문했던 많은 도시들 가운데 빌립보와 더불어 회당이 없었던 도시입니다. 유대인들이 10명도 살지 않았던 완전한 이방인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루스드라의 선교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남긴 설교는 선교 신학적으로 소중한 자료입니다.
루스드라는 더베와 더불어 루가오니아 지방의 중요 도시였습니다. 루가오니아는 동으로 갑바도기아, 북으로는 갈라디아, 남으로는 길리기아, 서로는 비시디아와 부르기아 등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루가오니아 사람들은 용맹스럽고 호전적이어서 많은 외침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헬라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 무너져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로마시대에는 버가모왕에게 다스리도록 했지만 로마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습니다.
이후 북부지방은 갈라디아에 동부지방은 갑바도기아에 남부지방은 길리기아에 분할되었고, 사도시대에는 갈라디아의 속주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루가오니아 언어는 사라지지 않고 존속했으며 바울이 다리 불구자를 고쳤을 때 루가오니아 방언이 통용됨을 언급합니다. 루가오니아어는 6세기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루가오니아 지방은 처음에는 셀류커스 왕조에, 그 다음에는 아칼루스 왕조에, 마지막으로 모라인에게 복속되었습니다. A.D 6년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Augustus)"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함께 루스드라와 더베를 로마의 직할 식민지로 지정했습니다. 이 사실을 선포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이 새겨진 비석이 이고니온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고니온(콘야)에서 남쪽으로 32km 떨어진 루스드라의 위치는 1885년에 발견된 비석에 의하여 명확하게 밝혀졌습니다. 이 비문에 의하여 루스드라는 하툰사라이의 북쪽 언덕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졸더라(Zoldera) 혹은 조르둘라 휘윅(Zordulahuyuk)으로 알려진 이 언덕은 B.C. 3000년 - 2000년부터 형성되었습니다.
루스드라는 하툰사라이 남쪽과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 제공하는 충분한 물로 비옥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농업의 발전하였습니다. 상업적 발전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에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지역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루스드라 남쪽 지역에 사는 로마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루스드라에 군대를 배치한 기록이 전해집니다.
로마가 루스드라 지역을 지배할 때에 황제는 비시디아 지역에 비아 세바스테(Via Sebaste)도로를 개설하였습니다. 이 도로는 이고니온에 연결되었고 이어서 루스드라와 더베, 길리기아로 확장되었습니다. 바울이 이 도로를 이용하여 여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식민지를 로마화하기 위해 로마의 황제들이 만든 도로들이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이런 점에서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던 시점에 바울의 선교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 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는 도로망과 언어(헬라어)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울의 메시지를 경청합니다. 바울이 그 사람에게서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보고서 치유를 선포합니다. '네 발로 일어서라!'합니다. 이에 그 사람이 일어나 걷습니다. 이 기적의 현장을 목격한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칭송합니다. 심지어 두 선교사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에 두 선교사가 옷을 찢고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외칩니다.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런 인간선언이 반복됩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고침 받자 사람들이 베드로 주변에 모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며 자신들이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선언을 합니다. 또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러 갑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으며 발 앞에 엎드립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현장에서는 이런 위대한 인간선언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신들을 섬겼던 루스드라 사람들은 날 때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걷는 것을 보고 바울은 헤르메스, 바나바는 제우스라고 부르며 제사를 지내려 합니다. 이것은 그 지방에 있던 전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우스와 그의 아들 헤르메스가 인간 모습으로 브루기아 산지를 방문했었는데 여러 번 거절을 당했답니다. 그러나 초라한 오두막에 살던 빌레몬(Philemon)과 바우시스(Baucis)라고 하는 늙은 농부 부부는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후히 대접했습니다. 후에 그들은 이 농부 부부에게는 후히 보상했지만 그들을 맞이하지 않았던 다른 집들은 홍수로 쓸어 버렸답니다.
이 전설 때문인지 루스드라 시민들은 신들의 방문인줄 알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희생을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1909년 람세이(W. Ramsay)는 이 성읍 부근에서 토박이 루가오니아인이 제우스와 허르메스 신상에 바친 비문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신화와 우상이 점령했던 곳에서 복음이 선포되어 교회가 세워집니다. 현재 이 곳에는 초대 교회 때 교회로 사용했던 두 군데의 동굴 교회가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