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피난 갔던 신앙인들이 찾아간 도시가 안디옥입니다. 교통의 요충지였고 번성하는 도시였고 번창했던 안디옥에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또한 안디옥은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 피난민 유대인들이 적응하여 살기에 좋은 도시였습니다. 안디옥에 정착했던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모범적인 교회를 세웠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본받고 싶은 교회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교회 이름이 안디옥 교회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안디옥은 두 곳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도시는 시리아 안디옥이고,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해서 회당에서 설교했던 도시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두 안디옥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왕의 장군 중에 하나였던 셀쿠스 1세(Seleucus I Nicator)가 정복하고 셀쿠스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안디옥이라는 도시들을 곳곳에 세웠습니다.
셀쿠스 왕조는 안디옥을 큰 도시로 세워가려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몇 대의 걸친 왕들이 안디옥 도시개발에 힘씁니다. 안디옥을 개발하면서 모델로 삼았던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제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했던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시대 최고 도시로 성장하면서 후대 제국의 황제들이 부러워했던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두 안디옥 중에 시리아의 안디옥은 셀쿠스 왕조의 수도가 됩니다. 셀쿠스 왕조에서 가장 악명 높은 왕이었던 안디옥 4세에 의해서 더 견고한 도시가 됩니다. 역사가 폴리비우스가 '미친사람 (Madman)'으로 불렀던 안디옥 4세는 폭군이었습니다. 이 안디옥 4세의 통치 기간에 시리아 안디옥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안디옥 4세는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박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안디옥 4세의 통치하던 시기로부터 시리아 안디옥은 더욱 번창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런 안디옥의 시리아의 명성은 로마가 정복했던 기원전 64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시리아 제국의 수도로 상업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계속했었던 것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시리아 안디옥에 시리아 지역 주둔군의 사령부가 위치합니다. 이 시기에 안디옥은 지역에서 헬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죠셉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신약 성경 시대에 시리아 안디옥은 로마시대에 로마와 에베소,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4대 도시였으며 올리브오일 램프를 이용하여 세계 최초로 가로등을 설치한 도시로 유명합니다.
안디옥은 계속해서 발전하다가 4세기경에 올리브농장으로 경제적인 호황을 누립니다. 그러나 6세기경에 화재, 지진 등의 재해를 겪으며 몰락합니다. 안디옥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들이 수 차례 있었지만 결국 안디옥은 회복되지 못합니다. 특히, AD 634년 아랍 이슬람이 안디옥을 정복하게 된 이후 오늘날까지 이슬람의 코란과 칼에 의해 숨통이 멎은 상태가 되고, 이슬람 모스크들이 우뚝 서 있는 이방 종교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안디옥에 정착한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적극적으로 전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세계선교의 모델이 됩니다. 안디옥 교회가 금식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당시 가장 좋은 지도자였던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는 장면은 현대 교회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모범입니다. 한편 신약 신학자 죤 마이어(John Meier)와 몇몇 신학자들은 마태가 이곳 시리아 안디옥에서 마태복음을 집필했다고 주장하지만 뚜렷한 증거는 제사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안디옥에서 목회하던 이그나티우스 (Ignatius) 감독은 초대 교회를 대표하는 속사도 교부입니다. 이그나티우스의 담대한 순교는 교회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입니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겨울 휴양차 군사도시인 안디옥을 방문하였을 때에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명성을 듣고 만났습니다. 이그나티우스를 만난 트라야누스 황제는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그나티우스에게 현장에서 사형 선고를 합니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콘스탄티노플 대주교가 된 요한 크리소스톰이 안디옥에서 태어나 안디옥에서 성직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크리소스톰은 콘스탄티노플 교회 담임 목회자가 되어 탁월한 설교 실력을 발휘합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가로 알려진 크리소스톰은 로마 정부가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교회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431년 에베소 공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 버린 네스토리우스(Nestorius)도 안디옥 출신이었습니다. 이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받은 후 이집트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동양을 선교하게 됩니다. 이 네스토리우스파가 일본을 거쳐 통일 신라 시대에 한국에 전래되어서 불국사 기왓장에 십자가의 흔적을 남긴 경교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여하간 시리아 안디옥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고도였습니다. 세계적인 도시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고 세계를 품는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고,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감독에 의해서 캐톨릭(Catholic:보편적인) 교회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