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콘텐츠 유행, 한 번뿐인 삶과 부정적 내세관
완전한 죽음으로 삶 완성된다, 실존철학적 이해
기괴한 불사 이미지, 기독교 내세 신앙의 걸림돌
◈불사의 존재와 이교 오컬티즘: 구전설화에서 낭만주의 문학으로
오늘날 대중문화계 전반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좀비 콘텐츠들은 하나같이 불사(不死)에 대한 기괴한 선입견을 불어넣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불사란 원래 인류 공통의 종교적 소망이었다. 그런데 이런 불사의 소망에 기형, 기괴함, 시체의 부패, 살인마 등의 이미지가 부여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를 알아보려면 유럽 중세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불사의 존재들에 대한 믿음의 기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이 중세에 기독교화되면서 이교 신앙의 오컬트(occult)적 요소들은 음지화되거나 미신과 민담 형태로 각 지역에 잔존하게 되었고, 종래에는 기독교 신앙과 혼합되기에 이른다.
가톨릭 교회가 걸출한 신학자들을 여럿 배출하며 기독교 신앙을 온전한 형태로 지키려 애썼지만, 이런 노력이 민중들 사이에까지 큰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일부 공인된 성직자,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구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아예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았다. 결국 성직자들, 사제들의 설교를 통해 성경을 배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 사제들조차 성경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수도원이나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신학을 배운 이들 외에는 대부분 신학적 소양이 크게 부족했다. 성경을 읽고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라틴어를 모르는 사제들이 태반이었다.
따라서 민중들을 향한 성경교육, 신앙교육은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여러 이교 오컬티즘 요소들을 기독교 교리와 뒤섞어서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파생된 여러 종교적 요소들은 물론이고, 켈트족, 갈리아족, 게르만족 고대종교의 신화, 제의 등이 기독교 신앙에 섞여 들어왔다.
때문에 유럽 전역에는 지역별로 귀신, 유령, 뱀파이어, 정령(엘프) 등 불사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이 문화의 중심부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봤을 때 내세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심어줄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믿음들은 가톨릭 교회의 검열 대상이 되는 정식 문학의 형태로는 기록되지 못했다. 대신 민담, 구전설화, 음유시인들의 서사시 속에 흡수된 채 보존되었다.
중세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특히 영국에서는 경험론자들(토마스 홉스, 존 로크 등)이, 프랑스에서는 과학주의자들(쥘리앵 라메트리 등)과 계몽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학문의 영역에서 기독교적 내세 신앙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들 유물론 성향의 세계 이해를 공유하던 사상가들은 영혼의 불사, 영생과 영벌에 대한 기독교의 믿음을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불사라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몸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죽지 않게 하거나 부활시키는 것이라 믿었다.
이런 생각은 18-19세기 유럽 전역에 낭만주의가 발흥하면서 문화예술 부문으로 이식되었다. 낭만주의자들 가운데 다수는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상상력과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라고 믿었다.
따라서 불사 개념을 생각할 때 기독교의 내세 신앙보다는, 그간 예술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했던 이교 신앙의 불사 개념을 참고하고 환영했다. 현대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불사의 존재들에 대한 이미지 대부분은 낭만주의 시대 때 완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과학주의와 이교 오컬티즘의 불사 개념이 낭만주의적으로 종합된 결과, 1818년 불사 괴기 문학의 시초,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출판되었다. 메리 셸리의 친구였던 존 폴리도리는 1년 뒤 낭만주의 시대 최초의 흡혈귀 소설 <뱀파이어>를 발표했다.
그 후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에서 불사의 존재란, 잊을 만하면 다시금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나 뱀파이어는 물론이고, 웨어 울프(늑대인간), 도리안 그레이(오스카 와일드 소설의 불사의 청년) 등이 문학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영국에서는 아예 이런 괴기스러운 존재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B급 잡지 페니 드레드풀(Penny Dreadful)까지 출간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불사의 존재와 기독교 내세신앙: 낭만주의 문학에서 21세기 문화 콘텐츠로
이처럼 근현대 대중문화에서 불사의 존재란 매우 기괴하고, 왜곡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인간을 농락하고 살해하는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표상되고 있다.
그 원인은 근대 낭만주의 시대 문학계가 기독교 신앙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과학주의와 이교 신앙의 불사 개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좀비 문화는 이러한 낭만주의적-이교적 불사의 존재에 대한 상상의 현대적 산물로서, 그 문화사적 연장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 최초의 좀비 콘텐츠는 1922년 미국에서 발표된 소설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Herbert West-Reanimator)였다. 영화 편으로는 1932년 미국에서 제작된 <화이트 좀비>(White Zombie)가 최초의 좀비 영화였고, 1943년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I Walked with a Zombie)가 그 뒤를 이어 제작되었다.
이 시기의 좀비는 21세기형 좀비와는 모습이 크게 다른, 서인도제도 아이티의 부두교적 좀비(주술로 정신을 조작해 노예로 만든 사람)와 유사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모습을 최초로 영상화한 작품은 좀비 영화의 거장 조지 로메로 감독이 1968년 제작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이었다.
로메로 감독이 상상한 좀비의 모습과 특징들은 현대 좀비 콘텐츠의 표본이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설정에 생체 과학기술(좀비 바이러스 개발과 창궐)이라는 모티프가 합쳐지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전형이 완성되었다.
전편의 논평에서 언급했던 일본 캡콤의 게임 <바이오하자드>(1996), 영국 영화 <28일 후>(2002)가 오컬티즘과 과학기술 모티프가 합쳐진 21세기형 좀비물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낭만주의 문학에서 최초로 불사의 존재를 다룬 작품 <프랑켄슈타인>의 서사가 현대 좀비 콘텐츠와 유사한 서사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몸의 죽음을 극복하더라도 그 결과는 참혹하고 비참한 괴물의 탄생이라는 것, 이것이 <프랑켄슈타인>과 오늘날 좀비 콘텐츠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서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 '단 한 번 사는 삶'의 소중함을 강변하는 실존철학의 가르침에 부합한다. 인간의 삶은 '완전한' 죽음을 통해 완성되고 본래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인간 이해가 오늘날 거의 모든 좀비 콘텐츠에 반영되어 있다.
인격의 존속, 영혼의 불사에 관한 기독교 신앙은 비현실적인 종교적 욕망의 일환이라는 것, 좀비 콘텐츠는 이러한 믿음을 반영한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죽어야 한다. 인간이 죽지 않고 불사하게 된다면 그 끝은 오직 인간성의 상실과 기괴한 욕망의 극대화일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뱀파이어, 좀비를 비롯해 온갖 양태의 불사의 존재에 대한 서사를 다루는 문화 콘텐츠를 관통하는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좀비 신드롬이라는 문화현상 이면에는 이교 오컬티즘, 과학주의에 대한 양면적 태도(수용과 회의), 그리고 실존철학적 인간 이해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들이 연합해 기독교의 내세 신앙을 허망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려는 사상적 의도가 확인된다.
이미지의 힘은 은근하지만 강력하다. 좀비 콘텐츠 서사의 허구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좀비의 모습으로 유형화된 불사 상태의 이미지는 의식 깊숙한 곳에 남아 내세와 영생을 불쾌한 것으로 취급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성경적인 내세 신앙을 확립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좀비물 한두편 관람한다고 신앙이 훼손되지는 않겠지만, 좀비 문화가 대중문화의 주류에 편입되어 불사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지배하면 할수록 기독교 내세 신앙은 점점 더 거부당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 <부산행>, <킹덤>, <살아있다>, <반도> 같은 한국의 좀비 콘텐츠들은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작품성을 떠나, 그것들이 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독교적으로 문제시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세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현세 중심 정신문화 유산을 물려받은 한국 사회에 내세 신앙을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서구 좀비 문화가 유입되고 유행한다면, 대중문화 영역에서 기독교 신앙의 요소, 기독교적 문화 요소들은 점점 더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