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온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 경제가 무너져 내리고 사람 간의 불신과 거리두기를 해야 하며, 일상 전반에 변화된 삶을 강요받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여러 가지 변종이 생겨나서 감염 속도가 빨라지고, 인간에게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는 발표도 있다. 우리에게 내일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며 적응해야 할 것인가?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성전 예배를 제한받는 문제에 대해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며 대처해아 할 것인가?

언론에서는 연일 코로나19 전파의 진원지로 성전 예배를 지목하고 과장되게 보도하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언론과 사회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신앙생활 전반에 대해 자신을 성찰하고 행여나 잘못된 점이 있다면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고 바로 서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코로나19, 이 엄청난 풍랑 앞에서 우리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성전 예배를 제한받는 것의 기원은 인정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내지 거부(사 1:11-15)는 아닌지 깊이 통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19로 인해 성전예배를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코로나19를 이용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경고하고 제한하시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실한 성도라면 다 알 수 있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지만,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점검해 보고자 한다.

첫째, 예배에 대하여 "영과 진리로 예배(요 4:23-24)"하고 있는가?

예배 중 하나님을 찬양하되, 혹시 유명한 가수나 연주자에게 돈을 주고 그 받은 돈의 대가로 하나님 찬양을 노래하고 연주하게 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 찬양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이다.

기도를 하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자기가 하지 않고 믿음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무례한 기도는 하지 않는가?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능멸하는 행위이다.

기도자는 말씀에 먼저 순종하는 삶을 살고, 그렇지 못했으면 진심으로 회개한 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기도하는 자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기도가 먼저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과 회개가 먼저이다. 강단에서 목사님이 말씀을 선포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대언하기보다, 자기 주관, 자기 주장, 자기 변호에 급급한 설교를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대언하되,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회 지도자의 삶이 주님을 본받아 자기 희생과 사랑과 섬김과 헌신의 삶이 아니라, 자기 정욕을 따라 유익을 추구하며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이기적 삶을 산다면 그가 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사명(使命)에 대하여

교회와 성도의 일반적 사명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 남한 교회와 성도들에게만 유일하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 있다.

이 사명을 바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남한교회와 대한민국에 특별하게 주신 은혜와 축복의 이유가 무위로 돌아가고 한국교회 존재이유는 반감하게 될 것이다.

1. 북한(北韓) 선교(宣敎)의 사명(使命)

우리 남한 교회는 북한 교회에 빚 진 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선교사를 보내주셔서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남북한 분단 이전에 북한에는 약 3,000여 교회와 예배처소가 있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였고, 남한에는 1,800여 교회가 있었다.

북녘에 공산 정권이 세워지고 교회와 성도들은 공산당의 극심한 탄압을 피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1.4후퇴를 기점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으로 이주하여 영락교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오늘의 남한교회 부흥을 주도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부흥되고 경제발전에 들떠 있는 동안, 우리의 형제 2,500만이 살고 있는 북한은 완전히 마귀의 손아귀에 떨어져 복음의 암흑천지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남한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꿈에도 소원이 북한의 복음통일이었다. 산에서 교회에서 밤새워 울부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응답으로 20여 년 전부터, 북한의 형제들을 우리의 품으로 보내 주셨다.

이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공산사회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치하에서 75년을 살아서, 모습과 언어는 같으나 생존방식과 사고와 의식구조가 우리와 판이하게 달라진 북한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할 모델을 보여 주시고 복음통일을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첫째는 우리가 북녘 형제에게 복음 전할 준비를 하고 훈련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탈북민들(국내외)을 전도하여 북녘 형제들에게 전도할 전도자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마귀의 손아귀에 잡힌 2,500만 북한 형제의 생명을 구하는 이 엄청난 영적 전투를 훈련시키고 준비하게 한 것이다.

흑암의 세력에 포로 된 2,500만 형제의 상태가 어떤지를 알아야, 싸워서 승리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탈북민은 탈북과 남한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어, 우리와는 인격적인 교류가 극히 어려운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다.

탈북민과 북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동일한 환경에서 같은 고난을 겪은 사람들만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따라서 이분들을 위하여 선택된 '특별한 북한 전문 사역자'가 필요하다.

'북한 형제 복음화를 위한 북한전문 사역자의 준비', 이것은 이 지구상에 우리 남한 교회와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일 것이다. 남북통일과 남한교회 부흥의 전제 조건(前提 條件)을 위한 하나님의 관심은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고 본다.

2. 남한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세계 11위라는 놀라운 경제성장과 복음화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저개발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고, 세계 171개국 거의 모든 나라에 2만 7,99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 2위의 놀라운 선교사 파송을 자랑하고 있다(2018년 12월,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또한 북한 선교를 위하여 남한 교회는 많은 교회와 단체와 성도들이 국내외에서 다방면으로 인도적 지원, 복음 사역, 탈북 사역을 조중 국경을 중심으로 하며 탈북민 지원과 국내 정착사역을 해 왔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엄청난 선교 활동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한 수준 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 남한 교회가 북한 선교와 비교해 세계 선교에 더 많은 관심과 역량을 집중한 것은, 북한 선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못하게 훼방하는 마귀의 엄청난 궤계였다.

북한 선교는 어렵다. 그리고 노력에 비해 가시적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선교비 지출을 투명하게 증명하기도 어렵다.

북한 선교 활동이 자칫 악한 북한 정권을 도와줄 수 있다는 인식으로, 악한 정권과 북한 형제를 동일시하기도 했다. 특별히 북한 전문 사역자를 길러 낸다는 것은 단기간에 그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많은 비용도 소요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맺음말

알게 모르게 오늘날 우리 교회가 번영신학의 영향으로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밀어내고, 십자가 없는 영광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지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한다. 예배와 신앙에 영과 진리와 믿음보다 가시적 외형적 형식적인 것들로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찾아보았으면 한다.

이러한 인식 하에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섬기는 담임 교역자에 대하여', 그리고 '사명에 대하여' 몇 가지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1. 예배에 대하여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예배가 '영과 진리로 참되게 드리는',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자. 모든 예배 순서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기 좋고 감동되고 화려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찬양: 하나님을 찬양함에 어떤 대가나 재화(財貨)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유명인을 앞세워 노래하고 연주하게 하는 순서가 있다면 지양해야 할 것이다.

기도: 기도하는 자는 믿음으로 하되 먼저 자신을 깨끗이 한 후에 기도할 것이며, 말씀에 순종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는 망령됨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씀: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은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자신의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 담임목회자에 대하여

교회의 모든 문제는 근원적으로 담임목회자에게 귀결된다.

담임교역자는 전하는 말씀과 삶이 유리(遊離)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상황에 따라 자신이 한 말을 변개(變改)해서도 안 될 것이다.

목회를 함에 있어 어떤 방법론으로 교회를 섬기고 부흥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건한 삶에서 오는 권위로 목회를 하여야 할 것이다.

재물(財物)이 많은 목회자는 그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고 목회를 하든지, 그러지 못하면 교회를 떠나야 할 것이다. 예수를 따르든지 재물을 따르든지 한 가지를 택해야 할 것이다.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막 10:21-22).

3. 사명(使命)에 대하여

남한 교회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 있다. 2,500만 동족에게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 복음전도를 위한 전문 사역자'를 준비하는 일이다.

이 사역만이 남한 교회가 살 길이고, 우리 민족이 살 길이고, 하나님께서 예배를 회복하여 주실 축복의 길이다.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 영과 진리로 예배하지 못하는 허울만 남은 교회, 이기심으로 운집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바라시겠는가? 혹시 이러한 교회와 목회자가 있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성찰하고 고쳤으면 한다.

코로나19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는 '요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 밑층에 숨어 잠을 잔 회개하지 않은 요나 한 사람 때문에, 한 배에 탄 사람 모두가 폭풍을 만나 죽을 것 같은 재앙을 만나고 생존의 위협을 당해야만 했다.

남한 교회가, 아니 내가 요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배 밑층에 숨어 잠을 잔다면, 나 때문에 이 세상이 죽음의 고통과 엄청난 시련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가 자신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박넝쿨이 없다고 성을 내지만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에는 내가 아끼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이천오백 만 너의 형제들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하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지혜자 솔로몬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맺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3-14)".

"하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땅을 고쳐 주셔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같이 해주시옵소서."

박병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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