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두메산골 학 마을의 이야기입니다. 학마을은 아름답고 포근한 마을이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한 쌍의 학이 날아와 마을 복판에 있는 노송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를 학나무라고 불렀고, 그들은 학을 신처럼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학은 마을 사람들에게 길흉의 전달자였습니다.
학이 돌아온 날은 온 마을이 기쁨으로 잔치를 했고, 청년들은 화톳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밤이 깊도록 놀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만약 학이 오지 않거나 학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흉한 일이 일어날 것을 걱정했습니다. 어느 해 기다리던 학은 오지 않고 가뭄만 계속되어 농사를 망쳤습니다. 계속되던 가뭄에 기다리던 학 대신에 일본 놈들이 나라를 빼앗았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후 36년간 학은 오지 않았습니다.
36년이 지나고 마을 사람들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학에 대한 궁금함을 이야기하던 그때, 학이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잔치를 벌였습니다. 학들이 집을 짓고 새끼 세 마리를 낳자 마을 사람들은 대운을 기대하며 좋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에 왜놈에게 끌려갔던 이장네 손자 덕이와 훈장네 손자 바우가 돌아왔습니다. 해방이 된 것이었습니다. 학마을은 한껏 즐겁고 풍성했습니다.
다음 해에도 학은 날아와 새끼 세 마리를 쳤습니다. 그해는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두 마리의 새끼를 쳤고 농사는 평년작이었습니다. 그해 이장네 손자 덕이는 마을의 봉네와 혼인을 했습니다. 그러자 봉네를 사모했던 훈장댁 바우는 아무도 모르게 마을을 떠났습니다. 마을 사람중에 아무도 바우의 마음을 몰랐지만 이장 영감은 바우의 마음을 알고 후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바우가 떠난 뒤였습니다.
어느 해 학이 돌아와 두 마리의 새끼를 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비 오는 날 아침에 새끼 학 한 마리가 바람에 날려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입니다. 학의 새끼가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은 불안했습니다. 그 후 한 달도 못 되어 625가 터졌습니다.
곧 인민군들이 들어 왔는데, 그 중에 덕이가 결혼할 때에 상처를 받고 떠났던 바우도 있었습니다. 누런 군복을 입고 돌아온 바우는 인민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위원장 노릇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치나 이념을 몰랐지만 학이 죽고 이어서 인민군이 들어왔기에 인민군을 좋아하지 않았고 인민군이 하는 일들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인민위원장 바우가 학나무 밑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반동은 즉결 처분해야 한다며 총으로 학을 쏘아 버립니다. 그래서 학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불길해합니다. 남은 학은 그런대로 잘 지내다 한 마리의 새끼를 치고 날기를 가르치더니 가을에 떠나 버렸습니다. 겨울이 되자 중공군이 쳐내려온다는 소식에 겁먹은 마을 사람들은 난생처음으로 고향을 등지고 모두 남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모진 피난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니 난리 통에 학나무는 타 버렸습니다. 학나무 뿐만 아니라 집들도 불에 타버렸습니다. 탄 집들을 정리하다가 탄 집에서 박 훈장의 시체를 찾습니다. 훈장의 시체가 나왔다는 소식에 노쇠해 시름시름 앓아 누워있던 이장 영감도 눈을 감습니다. 두 사람을 함께 장사 지냅니다. 두 사람을 장사 지내고 돌아오는 덕이와 봉네는 학 나무로 키울 애송나무 하나를 어린애처럼 앞에 안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이상은 거칠게 간추린 이범선의 소설 "학마을 사람들"의 줄거리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겪은 암울한 전쟁의 아픔을 부각 시키면서 인간의 약함을 설파합니다. 전쟁의 위력에 인생들은 힘없이 망가집니다. 전쟁으로 풍비박산 된 마을은 전쟁의 비극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학이 알아차리고 보여 준 것처럼 전쟁은 비극중의 비극이었습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 건너편에 전쟁 기념관이 있습니다. 전쟁의 폐해와 아픔을 기억하는 이곳에 평화광장이 있고, 이 평화광장에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If you want peace, remember war!)"는 문구가 새겨 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의 참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대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If you want peace, prepare the war!)"는 말을 남겼습니다. 군인들에게는 속담 같은 경구입니다. 전쟁준비는 군사훈련입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기억하고 훈련을 통해 힘을 길러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29:11)"라고 말씀합니다.
강태광 목사(남가주 625 한국전쟁 70주년 예배 진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