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A대표 강순영 목사
JAMA대표 강순영 목사

18세기 사도바울이라 불리는 요한 웨슬리는 부패한 영국을 유혈혁명에서 구하고 명예혁명을 안겨준 부흥운동가요 신학자였다. 최고의 지성과 경건을 갖추었으나 미국 조지아 선교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임에서 뜨거움을 체험한 후 성령께 붙들리자 그를 통해 영국사에 가장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고 그 결과 영국의 사회 문화, 종교등 전반에 변화가 일어났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영국의 엡워즈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 사무엘 웨슬리와 수산나 아네슬리의 19자녀 중 15번째로 태어났다. 5살 때 목사관에 화재가 일어나 가족들은 모두 피했으나 요한은 피하지 못했다가 지붕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에 구출되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왜 나를 죽음에서 구해주셨을까?"를 생각하며 평생 헌신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부모로 부터 그리스어를 배워 원어로 신약성경을 읽었으며, 모친 수산나는 자녀들이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도록 훈련시켰다. 그녀는 매주 한명씩 따로 대화하고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요한은 매주 목요일 밤에 어머니와 잊을 수 없는 개인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요한은 17세 때 옥스포드대학교 크라이스처치 칼리지에 입학하여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곳에서 신학, 고전, 현대문학, 역사, 과학 등을 폭넓게 공부했다. 24세-26세 기간에 아버지의 교회 담임하면서 25세에 영국 국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26세에 옥스포드대학 링컨칼리지에 연구교수로 돌아와 강의하면서 동생 찰스가 중심이된 Holy Club 의 지도자가 되어 성경연구, 경건서적 읽기, 구제, 감옥방문, 매주 2회 금식 등 경건 생활에 힘썼다. 

이때 조지 휫필드도 찰스의 초청으로 Holy Club 에 참여하게 되어 웨슬리 형제와 평생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 때 철저했던 그들에게 규칙주의자(Methodist), 초대교회, 성경벌레 등의 별명이 주어졌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윌리엄 로의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의 부름"등의 책을 읽고 최선을 다해 예수님 처럼 살려고 노력할 것과 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이를 '옥스포드 회심'이라 부른다.

조지아 선교의 실패

1735년, 32세의 나이로 옥스포드대학 시절을 마감하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요한과 찰스 형제는 조지아 주의 선교사로 지원한다. 어머니 수산나는 남편과 사별한 상황이었지만 (한 아들만 남고) 두 아들이 선교사로 떠나고 싶다고 하자 "내가 20명의 아들을 가져 모두 선교사로 미국에 건너가서 비록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이다" 라는 말로 두 아들의 선교사 지원을 지지해 주었다고 한다.

57일간의 대서양 항해 도중에 심한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함께 배에 타고 있던 26명의 모라비안 교도들이 평온히 찬송하는 모습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도전을 받는다. 최고의 학력, 부모로부터 받은 훈련, 그리고 Holy Club을 통한 경건 생활 훈련, 하나님 앞의 헌신, 성숙한 인격 등 선교사로서 성공할 모든 외적 조건을 갖추었지만, 선교지에서 내놓을 만한 열매 없이 여러가지 갈등으로 인해 참담한 마음으로 1년 반 만에 선교사 생활을 접고 도망치듯 영국으로 들어와야 했다.

요한 웨슬리의 회심

영국에 돌아온 후 모라비안 리더들과 계속 교제를 나누다가 35세 되던 어느 날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열린 모라비안집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어떤 사람이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을 때 웨슬리의 마음이 뜨거워졌고 사죄와 구원의 확신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전에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열심히 선포했지만 "과연 나는 구원 받았는가?"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긴 세월을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이제 이론적, 신학적으로가 아니라 체험적으로 구원받았다는 강한 확신이 성령의 비췸 속에서 그에게 안겨 온 것이다. 이를 '올더스게이트 회심'이라 부른다.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이 확신 후 마음의 무거운 짐이 다 풀어지고 전에 핍박하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생겼다"라고 요한은 고백했다. 요한은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동생 찰스를 만났는데 찰스도 일주일 전에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읽고 비슷한 체험을 했다면서 함께 기뻐했다.

감리교 운동의 시작

그 후 웨슬리 그룹에서 '감리교의 오순절' 이라 부르는 성령의 뜨거운 성령의 임재가 있었다. 웨슬리 형제는 그토록 갈망하던 확신과 평안을 찾음으로 일생을 쏟아 부을만한 멧세지를 찾았고 그들의 가슴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채워졌다. 1738년 웨슬리와 그의 동역자들은 성경적인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어디에 있든지 최선을 다해 성경적 기독교에 대해 설교하기로 다짐한다.

요한 웨슬리의 강력한 설교에 교회들이 설교강단을 내어주기를 거부하자 조지 휫필드 처럼 야외설교를 시작했는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는 그의 야외 설교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 후로 그는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기 원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선포하며 영국 곳곳을 말을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성령과 복음에 사로잡힌 요한 웨슬리는 큰 확신을 하고 50년간 말타고 25,000마일 즉 지구를 10바퀴 도는 거리를 다니면서 4만번의 설교를 통해 복음으로 영국을 뒤흔들며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쓰임 받는다.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감리교운동은 영국 사회에 신선한 바람과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감리교운동은 무능한 교회들을 살렸고 개인 옇혼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새로운 이상을 심어주었고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소생시켰다.

요한 웨슬리 부흥운동 정리

1, 성경연구과 풍부한 학식, 구제와 선행과 금식, 철저한 헌신과 인격을 갖추었지만 조지아 선교에 참담한 실패을 경험 했으나 이런 훈련이 성령께 사로잡히자 영국을 변화시키는 인물로 쓰임 받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일만 하신다" 라고 말하며 매일 두 시간 이상씩 기도하며 평생 전심으로 성령님을 의뢰했다.

2, 웨슬리가 청중들의 죄들을 지적할 때마다 회중들은 통회의 눈물, 죄사함의 감격으로 인한 찬양, 기도 소리로 설교가 안들릴 정도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강하게 나타남으로 곳곳에 강력한 회개운동, 사회 변화운동이 일어났다.

3, 조지 휫필드와 요한 웨슬리에 의해 시작된 대규모 야외집회의 불길은 찰스 피니, DL 무디, 빌리 그레함으로대형 야외집회가 오늘까지 이어지고있다.

4, 루터의 '오직 믿음',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다 보니 인간의 책임이 무시되는 경향이 심했고, 믿는 자들의 방탕이 심해졌다. 그래서 웨슬리는 '오직 믿음'에 '믿는 자가 거룩하게 살아야한다' 는 성결론을 가미했다.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에 인간 편에서 책임있게 반응하고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5, 조지 휫필드는 곳곳에 다니며 많은 사람을 회심시켰으나, 요한 웨슬리는 회심시키고 회심한 자들을 속회를 만들어 성장하도록 체계적 양육을 했다. 그는 과감하게 회심한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매주 속회를 인도하게 했을 뿐 아니라 가슴이 불붙은 자들을 순회전도자로 세움으로 부흥운동을 확산 시켰다.

6, 웨슬리의 감리교 부흥운동은 영국 사회에 사회 정의, 사회개혁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었다. 월버퍼스 중심의 노예제도 폐지운동, 미성년자 노동 폐지,금주 운동, 배우지 못한 아이들 교육시키기 등 사회 개혁 운동들이 활발히 일어났다.

7, 조지 휫필드와 요한 웨슬리를 통한 대 부흥운동은 영국주도 선교의 문을 활짝 열게 된다. 그 후 영국은 역사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오늘날 공부도 많이하고 전문적인 단체에서 잘 훈련된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성령께 사로잡히기 전까지는 Gas가 없어 시동이 안 걸린 고급 자동차처럼 달리지 못하고 있다. 요한 웨슬리를 붙잡아 영국을 뒤흔드신 성령님! 우리를 취하시어 정결하게 하시고 마지막 시대 부흥의 도구들로 사용하소서! 부흥세대를 일으켜 주셔서 곳곳에 회개운동과 부흥운동이 타오르게 하소서.

부흥을 사모하는 작은 종 강순영(JAM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