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칼럼에는 영화 <알라딘> 스포일러가 다소 들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공간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바로 '공간을 지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공간에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예배당이라는 곳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본질적 모습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2. 공간에서 자기를 발견하면 비로소, 내가 다른 공간에서도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공간이란 자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좋은 공간은 내면의 공간을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나쁜 공간은 외형적 공간에 심취하게 하는 곳입니다. 그러한 공간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지 못한 채 그런 공간 안에 우리를 가둡니다.

만남도 늘 특정한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환경에서만 만나야 합니다. 사실상 아름다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갇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공간에 지배당하느냐, 공간을 지배하느냐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삶으로 나타납니다.

3. 저희 가족은 오랫동안 살던 집을 허물고 새로운 '공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이름을 '공간 달꿈'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공간 안에서 학교도 카페도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곳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 공간 안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곳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잠시라도 '자유'를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공간을 통해 자기 내면의 공간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4. <알라딘>이라는 디즈니 만화가 실사 영화로 개봉되었습니다. 처음 개봉할 때는 생각보다 별로라는 평이었습니다. 저도 그 영화를 보았습니다.

왜 그런 평이 나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원작과의 비교 때문입니다. 원작과 비교해 보면 노래도 평범하고, 특별히 알라딘도 너무 평범합니다. 그러나 모든 창작물은 비교의 대상이 아닌 독립적 가치를 지녔음을 알아야 의미도 알게 됩니다.

5. 하지만 영화 <알라딘>과 만화 <알라딘>은 완전히 다른 내용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의도성을 느꼈습니다. 의도적으로 알라딘이라는 인물은 평범합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자스민은 부각됩니다. 또한 매우 의도적으로, 지니는 굉장히 부각됩니다.

6. 부각되는 둘 사이의 공통점은 '공간'과 '힘'입니다. 술탄이라는 강력한 왕의 공주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술탄(왕)이 될 수 없는 힘. 지니라는 가장 강력한 마법사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램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힘.

공주는 왕궁에서 벗어날 수 없어 괴로워하고. 지니는 램프에서 벗어날 수 없어 괴로워합니다.

7. 원작 <알라딘>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내가 원하는 이 여성과, 이 남성과 사랑을 하는 것이 주된 초점입니다. 그래서 본래 왕자가 아닌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는 법을 바꾸면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런데 영화 <알라딘>의 핵심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함은 공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왕궁 안에도 없고, 강력한 램프 안에도 없습니다.

알라딘
▲알라딘과 지니.

8. 지니(윌 스미스)는 알라딘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이봐.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단 두 가지를 못해! 사람을 살릴 수 없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없어."

곰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입니다. 사람을 살릴 수 없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없는 존재에 얽매여 살고 있는 모습.

지니는 금은보화를 보여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금은보화 물질을 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돈과 권력에 만족이란 없어. 거짓으로 얻는 것이 많아지면 진실로 얻게 되는 것은 작아지는 거야."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구하는 것이 자기 만족이라면, 아무리 그것을 얻어도 내면에 채워지는 것은 점점 공허해지는 이유를 말입니다.

지니는 알라딘(메나 마수드)을 왕자처럼 꾸며줍니다. 그런데 그런 알라딘에게 말하기를, "내가 바꿔준 것은 겉모습일 뿐, 네 내면은 바뀌지 않았어."

사실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고백이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모든 힘을 다 가지고 있어. 하지만 내가 사는 공간은 이 램프 안일 뿐이라구."

9.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추구하는 모든 것들, 바라보는 모든 것들, 꿈꾸는 힘, 바로 지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지니도 생사를 주관할 수 없고, 사랑하게 하는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 아니 램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자파(마르완 켄자리)는 바로 그런 삶을 추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그 힘을 손에 넣은 그는, 그래서 램프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힘과 자유를 바꾼 운명입니다.

이것에 저항하는 인물이 바로 지니인 것입니다. 힘을 가졌지만 자유를 꿈꾸는 인물, 그래서 그는 마지막 원작과 다르게, 자유를 얻은 즉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참된 자유함은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그래서 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0. 이 램프를 그대로 구현한 삶이 공간만 바뀐 자스민(나오미 스콧)의 삶입니다. 강력한 국가 속 왕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 할 수 없는 존재, 늘 방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존재, 힘이 소용 없는 존재, 꿈이 있어도 법에 가로막혀 꿈꿀 수 없는 존재.

그 여인이 사는 세상은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규모가 커도, 결국 그저 커다란 램프의 공간일 뿐이었습니다.

11. 그래서 자스민은 원작에 없는 노래를 하는 것입니다. 'Speechless'라는 새로운 노래는, 램프의 세상을 향한 선전포고입니다.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힘으로 묶어두고 입을 막아도 이제 침묵하지 않겠답니다. "네 자리를 지켜라!" "보고도 못 들은 척 하라!"

아주 오래되고 굽히지 않은 것들에 대해, 법이 사람보다 소중해, 변하지 않는 규칙과 말들에 대해, 이제 그 이야기를 끝내겠답니다. 와서 도전해 보라고, 입을 막고 쓰러트리려 해도, 나는 무너질 수 없고 침묵하지 않겠답니다.

12.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공간은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기를, 지니의 능력을 구하는 것은 아닌가?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자가 있을까? 술탄의 왕국에 살면서 결국 그 방안에서 못 벗어나는 자스민으로 가득찬 세상은 아닌가?

온통 자파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과 램프가 만든 환상 속에서 살다 보니, 결국 내면의 공간은 '램프 안의 비좁은 공간'이 되어버린 것을 모르는 우리의 삶, 우리는 바로 이 환상의 공간에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환상의 공간에서 탈피해, 평범한 지니가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모두 한 목소리로 노래해야 합니다.

'When they try to suffocate me. Don't you underestimate me. Cause I know that I won't go.'

자파가 만든 환상의 공간과 맞서 싸우는 침묵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모든 이들에게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발적으로 사람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