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기적에 목말라 있습니다. 너무 부정 뉴스가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듣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마음이 막히고 또한 우울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우울증을 많이 앓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신약성서에 예수님께서 ‘귀가 먹고 어눌한 사람 one who was deaf and had an impediment in his speech'(막 7:32)을 고쳐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호수의 동쪽을 가리키며, 엄밀하게 말하면 이방인 지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역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이 병든 자를 고쳐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 병자는 귀가 먹은 반벙어리였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말을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청각 장애로 인한 고통은 정상인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의 청각은 언어와 지능과 방향 감각과 정서 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청각을 상실하면 그 모든 기능도 상실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음식의 맛도 제대로 못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위의 장애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장애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영적인 ‘막힘’입니다. 육체적 장애는 주위의 관심과 당사자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장애를 극복해 갈 수 있으며, 나아가 헬렌 켈러 같은 위대한 위인도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철학자 키에르 케고오르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도들도 닫혀 있고 묶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닫혀 있으니 들리지 않고, 묶여 있으니 바른 생각을 하며 바른 말을 하며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독특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을 떠나 한적한 장소로 병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를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너무 많이 듣다보니 정말로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들리지 않습니까? 주위의 모든 소리로부터 떠나보세요. 그러면 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33 ) 명령했습니다. ‘애바다!’ 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닫힌 것은 열리고, 묶인 것은 풀어졌습니다. 그 때부터 ‘경계할수록’ 더욱 자기가 체험한 사실을 전하고 다녔습니다. 본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험한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상인의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으로 되돌아 온 것입니다.
‘에바다 ejffaqa’라는 말은 ‘열려라 Be opened’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모든 것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행복하고 평안을 누리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닫혀 있는 것이 많습니다. 너무 묶여 있는 것이 많습니다. 모두가 같은 환경에 살다보니 그냥 그 환경에 고착되어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이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일상이 그렇습니다. 답답해도 답답한 줄 모르고, 들리지 않아도 그렇커니 체념하면서 삽니다.
‘에베다’의 기적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 음성이 들려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에바다!’하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에바다! 에바다! 에바다!
신약성서에 예수님께서 ‘귀가 먹고 어눌한 사람 one who was deaf and had an impediment in his speech'(막 7:32)을 고쳐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호수의 동쪽을 가리키며, 엄밀하게 말하면 이방인 지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역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이 병든 자를 고쳐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 병자는 귀가 먹은 반벙어리였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말을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청각 장애로 인한 고통은 정상인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의 청각은 언어와 지능과 방향 감각과 정서 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청각을 상실하면 그 모든 기능도 상실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음식의 맛도 제대로 못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위의 장애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장애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영적인 ‘막힘’입니다. 육체적 장애는 주위의 관심과 당사자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장애를 극복해 갈 수 있으며, 나아가 헬렌 켈러 같은 위대한 위인도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철학자 키에르 케고오르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도들도 닫혀 있고 묶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닫혀 있으니 들리지 않고, 묶여 있으니 바른 생각을 하며 바른 말을 하며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독특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을 떠나 한적한 장소로 병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를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너무 많이 듣다보니 정말로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들리지 않습니까? 주위의 모든 소리로부터 떠나보세요. 그러면 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33 ) 명령했습니다. ‘애바다!’ 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닫힌 것은 열리고, 묶인 것은 풀어졌습니다. 그 때부터 ‘경계할수록’ 더욱 자기가 체험한 사실을 전하고 다녔습니다. 본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험한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상인의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으로 되돌아 온 것입니다.
‘에바다 ejffaqa’라는 말은 ‘열려라 Be opened’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모든 것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행복하고 평안을 누리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닫혀 있는 것이 많습니다. 너무 묶여 있는 것이 많습니다. 모두가 같은 환경에 살다보니 그냥 그 환경에 고착되어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이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일상이 그렇습니다. 답답해도 답답한 줄 모르고, 들리지 않아도 그렇커니 체념하면서 삽니다.
‘에베다’의 기적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 음성이 들려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에바다!’하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에바다! 에바다! 에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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