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윤수 목사 (수정교회 담임, 서북미장로회신학대학)
남윤수 목사 (수정교회 담임, 서북미장로회신학대학)

언어는 행동이다. 특히 인간 사회는 말로 형성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주위에 보면 말을 하는데 있어서 미성숙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를 불문하고 말하는 법을 습득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거짓된 신앙과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경에 이름같이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적게 하라. 그래야 실수가 적다. 많이 할수록 영혼이 피폐해지고 후회가 많아지지 않는가. 말의 종류에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로, 입술의 언어이다. 이 언어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중언부언(empty words)하는 식이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심지어 교회에서 입술의 언어가 많을 수 있다. 아무런 의미나 감정, 생각 없이 내던지는 언어들도 때론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입술의 언어가 많아질수록 오해의 소지를 낳는다.

아무 생각없이 던지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허언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허언증 환자인지 한번 체크해보라. 또한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 중에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언어가 있다. 가령,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인사차 "예쁘시네요"라고 했다면 듣는 여성은 성적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뜻에서 한 말이라도 상대방의 감정과 정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정서를 배제한 좋은 소리도 입술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이런 언어들은 많이 하면 할수록 전혀 상대방을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다.

둘째로, 머리의 언어이다. 이는 정보와 지식을 나누는 언어인데, 어느 정도는 서로 유익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다. 생각의 방향제시를 할 수 있을 뿐더러 보다 나은 질적인 삶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머리의 언어로만 상대방을 대하려 한다면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관계는 똑똑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분위기를 압도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움츠리게 된다.

요즘은 인터넷시대이므로 도시와 시골이 구분이 없다. 누구나 정보에 능하다는 말이다. 머리의 언어는  삶의 힘을 제공하지 못한다. 핸들은 있으되 엔진이 없다면 그 관계는 얼마가지 않아 깨질 것이다. 목회자가 성도에게 머리의 언어, 즉 성경의 지식으로만 다가간다면 성도는 곧 지쳐버릴 것이다.  머리의 언어, 그 이상의 언어를 말하라.

셋째, 영혼의 언어이다. 기분과 느낌의 언어라고 한다. 공감해주고 이해하는 언어인데 상대방을 알아주는 언어를 사용하라.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기쁘다,슬프다,화나고 무섭다.'라는 종류의 말을 하라. 상대방과 감정을 나누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본인 뿐 아니라 상대방을 치유하는 에너지가 발산된다. 특히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이런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식과 지혜, 감정의 언어가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감정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다. 영혼의 언어는 진심의 언어이다. 마음을 나누는 언어이다. 미국의 캐네디 공항연구소는 발표하기를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  80%가 공감적 인간관계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기업마다 과학기술은 대동소이하지만 기업주가 사원들과 영혼의 언어를 나누면 그만큼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감의 언어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배가시킨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1650년대 한국 속담이었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이에 속하지 않던가. 언어는 사건을 창출한다. 서로 손과 눈,얼굴을 통해 가급적 영혼의 언어를 사용하라. 보통의 언어보다 300, 400배의 영적 에너지를 공급하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상담)206-992-9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