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든 요즘이다. 밖에 나갔다 오면 곧 목이 칼칼해져 시원한 물을 찾게 된다. 왠지 물을 마시고 나면 몸속에 먼지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 작은 안도감이 든다. 그런데 지구 어딘가에는 물을 마실 때마다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올해 초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의 홍보대사로 아프리카 니제르에 가서 그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니제르는 작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189개국 인간개발지수 국가 순위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저개발 국가이다. 국토의 80%가 사하라 사막으로 뒤덮여 있고, 연중 강수량이 20mm 미만이라 눈을 돌리면 메마른 풍경만 보이는 곳이다. 한여름에는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는데 마실 물을 찾기 어려워 사람과 동물, 농작물 모두가 목마른 땅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나는 씩씩하게 살아가는 12살 소년 아지즈를 만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온종일 일하시는 어머니를 돕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년이었다. 내 둘째 아들보다도 어린 아이였는데, 본인보다 더 어린 두 동생을 돌보느라 작은 어깨에 큰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어 특히 마음이 쓰였다.
아지즈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집에서 한참을 걸어가, 너무나 깊어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그 길을 함께 따라나섰는데, 한참 동안 퍼 올린 물을 조그마한 머리에 이고 가는 아이의 모습 뒤로 광활한 하늘이 보였다. 커다란 하늘과 작은 아이의 모습이 대비되어, 아이가 이 고된 일을 하기엔 너무 작고 어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소년이 매일 반복되는 치열한 삶에 매몰된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 대단한 꿈을 품고 있다. 이다음에 커서 마을에 워터펌프를 설치해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매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대체 미래의 꿈에 대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12살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이런 대견한 꿈을 꾸는 아이가 매일 마실 물을 얻기 위해,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지금 니제르의 현실이다. 기회가 주어지면 정말 훌륭하게 자랄 것 같은데 그 작은 기회조차 없으니 말이다.
비단 아지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니제르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물통을 이고 가는 사람과 나귀들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모래만으로 꽉 차 있는 땅을 한참 걸어가 일용할 물을 얻는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과정으로 얻을 수 있는 물은 흙탕물이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내가, 내 가족이 아픈 이유가 물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 물이 아니면 마실 물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해결 방안은 없다. 살기 위해 힘들게 얻은 귀한 물로 인해 누군가 아픈 것을 보는 그 모습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은 UN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물의 소중함을 알리고 물 문제 해결에 전 세계의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1992년 제정됐다. 다행스럽게도 전 세계에서 굿네이버스와 같은 NGO들이 니제르에 식수 펌프, 우물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NGO만의 노력으로 니제르 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부디 오늘만큼은 니제르의 메마른 땅과 깨끗한 물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 그리고 12살 아지즈의 원대한 꿈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한 명, 한 명의 생각이 모여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내년 물의 날에는 니제르에 메마른 땅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장현성 / 배우, 굿네이버스 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