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뉴욕시교회협의회(사무총장 지미림 목사)는 1857년 뉴욕 풀턴가에서 시작해 미전역에 영적대부흥을 일으켰던 ‘풀턴가 정오기도회(led by Jeremiah Lanphier) 150주년 기념행사’를 21일부터 23일까지 뉴욕힐튼호텔에서 갖는다. RCA도 23일(주일)에 교단차원에서 기념행사를 갖기로 했다.
다음은 <본국 부흥을 꿈꾸는 청년연합(again1907.cyworld.com)>에 올려진 ‘뉴욕 풀턴가 정오 기도회를 통한 부흥의 불길’ 관련 내용이다.
1857년 뉴욕에는 조용하고 열심있는 한 비즈니스 맨이 살고 있었다. 당시 46세였던 그는 뉴욕시내 한 화란 교회에서 선교사로 임명됐다. 그 이름은 제레마이어 람피엘이었다. 그는 피니가 세웠던 브로드웨이 성전에서 회심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비지니스맨이 정오에 모여 기도회를 열길 원하신다는 생각을 하고 기도모임에 초청하는 전단을 만들어 뿌렸다.
기도회로 모이던 첫날 1857년 9월 23일에는 람피엘 혼자 한 시간 반 동안 기도했다. 그 기도가 끝날 때쯤 되자 여섯 명이 기도하러 왔다. 그 다음 수요일에는 20명이 참석했다. 그후 10월 7일에는 40명이 참석했다. 기도 모임이 얼마나 좋았던지 참석자는 매일 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후 그 모임에는 백 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했다. 그 중에는 불신자도 참석했는데 성령 역사를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
한 달 만에 풀턴 가에서 정오 기도회에 참석했던 목사가 자기들 교회에서 아침 기도회를 갖기 시작했다. 곧 그 기도회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와서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석 달 만에 그 기도회와 비슷한 기도회가 미 전역에 생기기 시작했다. 즉 보스턴, 볼티모어, 워싱턴, 리치몬드, 찰스턴, 사바나, 모빌, 뉴올리안즈, 빅스버그, 세이트루이스, 피츠버그, 신시내티, 시가코 이외에 수많은 대도시나 소도시 그리고 시골 지역까지 정오 기도회가 열렸다. 3월 말 쯤에는 뉴욕 시에서만 매일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6천명 이상이 됐다.
맨하탄과 브루클린 전역에 매일 150개 연합 기도회가 모였다. 장로교지는 5월에 5만 명 사람이 회심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2월에 뉴욕에 있는 한 감리교 잡지사는 일주일 만에 8천 명이 회심했다고 보고했다. 루이스빌에서 발행되는 일간 신문은 3월, 석주 동안 만 칠천 명이 회심해 침례교인이 됐다고 했다. 6월에는 96,216명이 회심했으며 회심하는 사람이 아직도 더 있다고 하였다.
그 이후 2년 동안 부흥이 한창 절정에 달한 6주 내지 8주 동안에 매주 약 5만 명씩 회심했다. 2년간 부흥 기간 중 매주 평균 일 만 명씩이 회심해 교인이 됐다. 당시 메사추세츠주에서 150개 지역, 뉴욕주에서 200개 지역, 뉴저지주에서 60개 지역, 펜실베니아주에서 65개 지역, 오하이오주에서 200개 지역, 인디애나주에서 150개 지역, 일리노이주에서 150개 지역, 미조리주에서 50개 지역, 아이오와주에서 60개 지역에 있는 교회가 매일 기도회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미국 인구가 3천만 명이었는데 그 중 거의 2백만 명이 부흥회 기간 중 그리스도께 인도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것은 어느 뛰어난 설교가들 통해서 일어난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신도에 의해 일어난 부흥 운동이었다. 기도회는 시간이 되면 찬송과 감사기도를 한 사람이 드리고 누구든지 돌아가면서 간단하고 구체적인 기도를 했다. 다른 사람은 그 기도를 듣고 함께 아멘을 해 주었다. 기도나 격려의 말이나 간증이나 설교나 기도부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5분을 넘지 않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그 기도는 즉시 응답되는 역사를 일으켰다.
당시 뉴욕 항구에 도착한 배는 뉴욕 상공에 하나님 임재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160km 밖에서 뉴욕을 향해 오다 무엇인가 거룩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한 배는 도착하기도 전에 배 위에서 부흥이 시작됐다. 그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통회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항구에 도착할 때 선장은 목사를 보내달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또 다른 작은 상선은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 240km 밖에서 이미 전 승무원이 회심했다고 한다. 항구에 도착하는 배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즉, 배가 그 해안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승무원과 선객이 갑자기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더니 그리스도를 믿게 됐다는 것이다.
부흥 역사를 보면 사람은 초자연적인 역사에 집중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그런 생각에 강력히 반발한다. 찰스 피니는 “부흥에 대한 열망은 인간보다 하나님이 더욱 강하시다. 다만 인간이 그런 하나님 부흥을 일으킬 통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본국 부흥을 꿈꾸는 청년연합(again1907.cyworld.com)>에 올려진 ‘뉴욕 풀턴가 정오 기도회를 통한 부흥의 불길’ 관련 내용이다.
1857년 뉴욕에는 조용하고 열심있는 한 비즈니스 맨이 살고 있었다. 당시 46세였던 그는 뉴욕시내 한 화란 교회에서 선교사로 임명됐다. 그 이름은 제레마이어 람피엘이었다. 그는 피니가 세웠던 브로드웨이 성전에서 회심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비지니스맨이 정오에 모여 기도회를 열길 원하신다는 생각을 하고 기도모임에 초청하는 전단을 만들어 뿌렸다.
기도회로 모이던 첫날 1857년 9월 23일에는 람피엘 혼자 한 시간 반 동안 기도했다. 그 기도가 끝날 때쯤 되자 여섯 명이 기도하러 왔다. 그 다음 수요일에는 20명이 참석했다. 그후 10월 7일에는 40명이 참석했다. 기도 모임이 얼마나 좋았던지 참석자는 매일 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후 그 모임에는 백 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했다. 그 중에는 불신자도 참석했는데 성령 역사를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다.
한 달 만에 풀턴 가에서 정오 기도회에 참석했던 목사가 자기들 교회에서 아침 기도회를 갖기 시작했다. 곧 그 기도회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와서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석 달 만에 그 기도회와 비슷한 기도회가 미 전역에 생기기 시작했다. 즉 보스턴, 볼티모어, 워싱턴, 리치몬드, 찰스턴, 사바나, 모빌, 뉴올리안즈, 빅스버그, 세이트루이스, 피츠버그, 신시내티, 시가코 이외에 수많은 대도시나 소도시 그리고 시골 지역까지 정오 기도회가 열렸다. 3월 말 쯤에는 뉴욕 시에서만 매일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6천명 이상이 됐다.
맨하탄과 브루클린 전역에 매일 150개 연합 기도회가 모였다. 장로교지는 5월에 5만 명 사람이 회심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2월에 뉴욕에 있는 한 감리교 잡지사는 일주일 만에 8천 명이 회심했다고 보고했다. 루이스빌에서 발행되는 일간 신문은 3월, 석주 동안 만 칠천 명이 회심해 침례교인이 됐다고 했다. 6월에는 96,216명이 회심했으며 회심하는 사람이 아직도 더 있다고 하였다.
그 이후 2년 동안 부흥이 한창 절정에 달한 6주 내지 8주 동안에 매주 약 5만 명씩 회심했다. 2년간 부흥 기간 중 매주 평균 일 만 명씩이 회심해 교인이 됐다. 당시 메사추세츠주에서 150개 지역, 뉴욕주에서 200개 지역, 뉴저지주에서 60개 지역, 펜실베니아주에서 65개 지역, 오하이오주에서 200개 지역, 인디애나주에서 150개 지역, 일리노이주에서 150개 지역, 미조리주에서 50개 지역, 아이오와주에서 60개 지역에 있는 교회가 매일 기도회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미국 인구가 3천만 명이었는데 그 중 거의 2백만 명이 부흥회 기간 중 그리스도께 인도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것은 어느 뛰어난 설교가들 통해서 일어난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신도에 의해 일어난 부흥 운동이었다. 기도회는 시간이 되면 찬송과 감사기도를 한 사람이 드리고 누구든지 돌아가면서 간단하고 구체적인 기도를 했다. 다른 사람은 그 기도를 듣고 함께 아멘을 해 주었다. 기도나 격려의 말이나 간증이나 설교나 기도부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5분을 넘지 않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그 기도는 즉시 응답되는 역사를 일으켰다.
당시 뉴욕 항구에 도착한 배는 뉴욕 상공에 하나님 임재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160km 밖에서 뉴욕을 향해 오다 무엇인가 거룩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한 배는 도착하기도 전에 배 위에서 부흥이 시작됐다. 그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통회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항구에 도착할 때 선장은 목사를 보내달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또 다른 작은 상선은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 240km 밖에서 이미 전 승무원이 회심했다고 한다. 항구에 도착하는 배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즉, 배가 그 해안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승무원과 선객이 갑자기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더니 그리스도를 믿게 됐다는 것이다.
부흥 역사를 보면 사람은 초자연적인 역사에 집중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그런 생각에 강력히 반발한다. 찰스 피니는 “부흥에 대한 열망은 인간보다 하나님이 더욱 강하시다. 다만 인간이 그런 하나님 부흥을 일으킬 통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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