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종합상사에 근무하면서 수출 역군으로 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흔하지 않았지만 여러 나라을 출장 다니면서 판매를 협상하고, order를 수주하고 제품을 납품하고, 뒤처리를 하면서 상사 세일즈맨으로 밤늦게까지 데스크를 지키며 텔렉스로 지사나 buyer와 교신하였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시장을 조사한 후, 제품을 소개하고 buyer를 물색하는 모든 과정이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 제품 판매에 어려움이 있고 실적이 오르지 않을 때마다 등장하는 화두(話頭)는 시장 다변화였습니다. 시장을 다변화하고 판매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라는 경영층의 지시였습니다.
선교는 "복음의 수출"이라고 일컫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받은 좋은 소식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뻐서 그것을 값없이 소개하고 전해주는 복음 수출이 선교입니다. 제품 수출과 다른 것은 그 대가를 받지 않고 오히려 어떠한 역경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대가를 전하는 자가 치룬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전하는 것이기에 그에 대한 보상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보상으로 갚아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 선교입니다.
한국 정부 오랜 노력과 우리 모두 기도로 19명 아프가니스탄 피랍자가 풀려나게 됐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에 의하면 한국 정부가 탈레반에게 상당한 몸값을 치불하였다는 후문입니다. 이에 따라 입방아를 찢기 좋아하는 네티즌은 안티 기독교 화살을 다시 맹렬히 발사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우리에게 선교에 새로운 도전과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품수출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대응책으로 생각하던 시장 다변화를 이제 복음 수출에도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선교 다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
첫째: 선교지 선정에 있어서 중복을 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마다 선교지를 선정할 때, 다른 교회가 이미 많이 선교하고 있는 곳을 또 선택해서 선교에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는 이제 지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창의적인(creative) 선교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지역별 전문화도 필요합니다.
뉴욕교계 상당수 교회가 멕시코, 도미니카, 과테말라, 혼두라스에 집중해서 선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선교센타를 마련해서 이중삼중의 선교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선교의 know-how가 많이 소개되어 손쉽게 선교에 착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남의 터 위에 집을 세우려는" 근시안적인 계획일 수 있습니다. 또한 멕시코를 제외한 이러한 몇몇 국가들은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선교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소국"들입니다.
선교의 중복 투자로 오는 부작용은 먼저 현지 선교사들의 자세가 해이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목적과 수단이 자칫하면 전시효과나 과시용이 될 수 있기에, 현지 선교사들이 복수의 교회들과 연관을 맺게 되고 선교 브로커도 만들어 질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선교 투자의 다변화를 이루기 위해 중대형 교회는 교회 자체가 창의적으로 선교지와 선교전략을 마련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단 또는 몇몇 교회가 연합하여서 선교지를 선정하고 집중 지원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둘째: 핍박과 방해가 심한 지역에는 "우회선교"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해외수출의 방법이 다양해지기 시작할 무렵, 처음으로 이루어진 방법이 "현지법인"이었습니다. 해외지사 체제로는 다양한 상품개발과 시장 다변화에 한계가 있자, 해외에 법인체를 만들고 그곳에 여러 직원들을 상주시키고 동시에 현지직원들을 채용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시장다변화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 삼국(三國)무역입니다.
이제 모슬렘 지역이나 기타 핍박이 있는 지역으로의 복음수출은 "우회선교"의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해당 지역에 인접한 제3국에 거점을 마련하고 선교인력을 현지인으로 훈련시켜서 그 사람들을 파송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제로 모슬렘 지역으로의 선교는 카자흐스탄이나 타지키스탄 등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덜한 나라에 거점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현지 일군들을 양성해서 그들로 하여금 선교의 사명을 감당케 하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에 참여하고 감당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중국 크리스천들입니다. 중국의 도처에 선교사 훈련학교가 open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모슬렘을 복음화하는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중국의 모처에 예수마을을 마련하고 약 100명에 달하는 한족(漢族) 사역자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6쌍의 젊은 부부들은 예수 마을 자체의 훈련조교 및 자체 사역자로 양성되어 전담 사역자로 일하고 있으며, 8명의 미혼 사역자들은 이미 2006년에 A국으로 파송하여 그곳에 거점을 확보하고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6명의 사역자는 P국에 타 교회와 협력하여 파송한 바 있습니다. 또한 올해 안에 6명의 사역자를 추가로 A국에 파송할 계획입니다.
우회선교는 우리가 직접 선교를 담당하기가 어려운 지역에 타 민족을 일으켜 훈련하고 파송하여 선교를 이루는 전략을 말합니다. 우리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다른 민족에게 과감하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체제입니다.
셋째: 복음의 수출인가? 문화의 수출인가?
이러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면서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의 선교 자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수출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기독교 문화를 수출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기독교 문화를 전수시킬 수 있습니다. 문화는 피선교지의 독특한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창출되어야 하는데, 선교를 하면서 잘못하면 껍데기만을 전하고 선교를 하였다는 안일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단기선교의 약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2세에게 선교 현장을 경험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선교에 임하는 사람이 복음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문화만을 보여주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Power Evangelism(능력전도) 사역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선교한 과정에서 그가 임했던 자세를 다시 회복 하고 그 전략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2:4-5)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시장을 조사한 후, 제품을 소개하고 buyer를 물색하는 모든 과정이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 제품 판매에 어려움이 있고 실적이 오르지 않을 때마다 등장하는 화두(話頭)는 시장 다변화였습니다. 시장을 다변화하고 판매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라는 경영층의 지시였습니다.
선교는 "복음의 수출"이라고 일컫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받은 좋은 소식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뻐서 그것을 값없이 소개하고 전해주는 복음 수출이 선교입니다. 제품 수출과 다른 것은 그 대가를 받지 않고 오히려 어떠한 역경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대가를 전하는 자가 치룬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전하는 것이기에 그에 대한 보상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보상으로 갚아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 선교입니다.
한국 정부 오랜 노력과 우리 모두 기도로 19명 아프가니스탄 피랍자가 풀려나게 됐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에 의하면 한국 정부가 탈레반에게 상당한 몸값을 치불하였다는 후문입니다. 이에 따라 입방아를 찢기 좋아하는 네티즌은 안티 기독교 화살을 다시 맹렬히 발사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우리에게 선교에 새로운 도전과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품수출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대응책으로 생각하던 시장 다변화를 이제 복음 수출에도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선교 다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
첫째: 선교지 선정에 있어서 중복을 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마다 선교지를 선정할 때, 다른 교회가 이미 많이 선교하고 있는 곳을 또 선택해서 선교에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는 이제 지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창의적인(creative) 선교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지역별 전문화도 필요합니다.
뉴욕교계 상당수 교회가 멕시코, 도미니카, 과테말라, 혼두라스에 집중해서 선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선교센타를 마련해서 이중삼중의 선교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이미 선교의 know-how가 많이 소개되어 손쉽게 선교에 착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남의 터 위에 집을 세우려는" 근시안적인 계획일 수 있습니다. 또한 멕시코를 제외한 이러한 몇몇 국가들은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선교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소국"들입니다.
선교의 중복 투자로 오는 부작용은 먼저 현지 선교사들의 자세가 해이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목적과 수단이 자칫하면 전시효과나 과시용이 될 수 있기에, 현지 선교사들이 복수의 교회들과 연관을 맺게 되고 선교 브로커도 만들어 질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선교 투자의 다변화를 이루기 위해 중대형 교회는 교회 자체가 창의적으로 선교지와 선교전략을 마련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단 또는 몇몇 교회가 연합하여서 선교지를 선정하고 집중 지원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둘째: 핍박과 방해가 심한 지역에는 "우회선교"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해외수출의 방법이 다양해지기 시작할 무렵, 처음으로 이루어진 방법이 "현지법인"이었습니다. 해외지사 체제로는 다양한 상품개발과 시장 다변화에 한계가 있자, 해외에 법인체를 만들고 그곳에 여러 직원들을 상주시키고 동시에 현지직원들을 채용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시장다변화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 삼국(三國)무역입니다.
이제 모슬렘 지역이나 기타 핍박이 있는 지역으로의 복음수출은 "우회선교"의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해당 지역에 인접한 제3국에 거점을 마련하고 선교인력을 현지인으로 훈련시켜서 그 사람들을 파송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제로 모슬렘 지역으로의 선교는 카자흐스탄이나 타지키스탄 등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덜한 나라에 거점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현지 일군들을 양성해서 그들로 하여금 선교의 사명을 감당케 하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에 참여하고 감당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중국 크리스천들입니다. 중국의 도처에 선교사 훈련학교가 open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모슬렘을 복음화하는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중국의 모처에 예수마을을 마련하고 약 100명에 달하는 한족(漢族) 사역자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6쌍의 젊은 부부들은 예수 마을 자체의 훈련조교 및 자체 사역자로 양성되어 전담 사역자로 일하고 있으며, 8명의 미혼 사역자들은 이미 2006년에 A국으로 파송하여 그곳에 거점을 확보하고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6명의 사역자는 P국에 타 교회와 협력하여 파송한 바 있습니다. 또한 올해 안에 6명의 사역자를 추가로 A국에 파송할 계획입니다.
우회선교는 우리가 직접 선교를 담당하기가 어려운 지역에 타 민족을 일으켜 훈련하고 파송하여 선교를 이루는 전략을 말합니다. 우리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다른 민족에게 과감하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들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체제입니다.
셋째: 복음의 수출인가? 문화의 수출인가?
이러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면서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의 선교 자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수출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기독교 문화를 수출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기독교 문화를 전수시킬 수 있습니다. 문화는 피선교지의 독특한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창출되어야 하는데, 선교를 하면서 잘못하면 껍데기만을 전하고 선교를 하였다는 안일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단기선교의 약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2세에게 선교 현장을 경험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선교에 임하는 사람이 복음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문화만을 보여주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Power Evangelism(능력전도) 사역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선교한 과정에서 그가 임했던 자세를 다시 회복 하고 그 전략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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