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하와이 오세요!"

'한민족 고구마 나눔 운동본부'와 '우리 민족 뿌리 찾기' 대표이신 박형서 선교사님께서 연락해 오셨다. "우리 팀이 고구마 심으러 하와이 가는데 이번에는 목사님과 오셔서 쉬시면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후일에 샛별 팀을 데리고 오시지요?"

"몇 명이라도 가서 공연을 해야지 다음에도 가게 됩니다." 

"단원들과 오실 수 있다면 이승만 박사가 힐로의 사탕수수 밭 노동자들을 위해 세운 교회와 코나 한인교회, 그리고 열방대학에서 공연하시도록 목사님들과 연락해 보겠습니다."

"사탕수수 밭 노동자들 교회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1월 13일, 바로 하와이 이민 116주년이 되는 날이 아닌가?

샛별은 34년 동안 미국과 세계를 다니며 2천 번 넘게 공연을 했지만 단 한번도 쉽고 편할 수가 없었다.

자금 동원 문제, 단원들의 직장과 학교 문제, 악기 등의 짐 문제, 단원들 건강 문제, 등 등의 문제가 우리 앞의 장애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다는 믿음과 확신이 설 때는 두려움은 물러가고 힘이 솟아 났다.

이번에도 사탕수수 밭 이민 선조들이 세운 교회와 열방으로 매년 2천 명의 선교사를 보내는 열방대학에 대한 기대와 사명으로 서둘러 보따리를 쌌다.

미 이민 100주년을 맞던 2003년, 남편 최 목사가 나에게 종용하였다. "이민 100주년은 우리 평생에 다시 오지 않아요. 또한 후세들에게 선조들의 꿈과 희생을 알려야 하는데 본국에서는 할 사람이 없고, 미국에서는 할만한 단체가 없을 것이니 당신이 작품을 만들어요."

샛별은 해외 단체로서 본국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고, 우리 또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어 미루고 미루다 우연히 하와이에서 열리는 선교대회에 갔다가 미국 이민 선조들이 처음에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들어 왔고 사진으로 선을 보고 시집온 조선 처녀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면 하겠습니다.'

일제하 어려웠던 시절,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공부할 수 있다는 꿈도 꾸며 처녀들은 2달 동안 배를 타고 하와이 부두에 내리면 사진에서 보았던 청년이 아닌, 신부들을 기다리다 늙고, 뙤약볕에서 일하다 머리가 다 벗겨진 늙은 아저씨들을 만나게 된다.

또 처녀들을 기다린 것은 호위호식 대신 파인애플 껍질을 까는 힘겨운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기독교인인 저들은 제일 먼저 교회를 세웠고, 나라가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게 된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철저한 기독교인인 이승만 박사의 지도 아래 교회가 중심이 되어 나라 찾기에 힘을 모았다.

하루 75전 받아 25전 애국헌금을 냈다니!  저들의 몸은 이억 만리 타국 땅에 있었지만 상해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사탕수수 밭에서 땀 흘리는 독립투사였던 것이다.

저들의 믿음과 인내, 애국과 희생을 무용극에 담기로 하고,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 주시고 음악도 찾게 해 주시면, 부족한대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한국을 나가 음악을 편집하기 위해 갔고, 놀랍게도 내 손에 얹어 주시듯, 나를 기다리고 있었듯이 생각했던 음악들을 찾게 되었다. 하와이 섬에 바람이 불면 사탕수수 잎들 부딪치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린다는, 내가 생각했던 음악을 만나면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눈물의 밤을 새우며 '시'를 썼다.

하와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며

어둔 구름 조국 해 가리고

별들도 빛을 잃어가던 날

기약도 내일도 모른 체

망망대해 실려온 지 어언 100년

조국 땅 비바람 칠 때

사탕수수 밭 몸부림쳤고

조국 하늘 통곡할 때

사탕수수도 울었다

대답 없는 님을 향한 사모의 정

구름에 실어 보고 파도에 띄워 보다

가버린 청춘

피맺힌 손과 발로 모은 정성

조국 독립씨앗 되었는가

한 맺힌 가슴 안고 베푼 사랑

이민 선구자 되었구나

이제 그대 모습 빛 바랜 사진으로 남아

그 이름 희미하나

쌓은 기도 거름 되었네

그 정신 이어받아 큰 무리된 한민족

솟으라! 높이높이!

흘러라! 길이길이!

사진으로 선을 보며 미국을 갈수 있다는 '소식', 가족, 조국과 이별하는 '이별', 동서남북에서 배를 타기 위해 처녀들이 모여 드는 '꿈의 나라로', 배에서 내려서 늙은 남편을 만나며 절망하는 '혼돈', 낙심하여 쓰러진 처녀들을 찾아온 위로의 주님, 조국이 어머니 모습으로 찾아 온 '새 소망', 새 소망이 생겨 힘차게 일하는 '일터' 6개의 작품으로 20분 무용극을 만들 때, 단원들도 눈물 흘렸고 100주년을 맞아 미국 내 13개 도시를 다니며 공연을 할 때에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눈물 흘렸다. 아프리카. 유럽, 동남아...... 세계를 다니며 공연을 할 때도 보는 사람마다 눈물로 대답해 왔다.

뉴질랜드 어느 교회에서 공연을 하자 어느 여자분이 와서 껴안는다.

"아이고 사모님, 우리 이모가 사진 신부인데 남편이 너무 늙어서 며칠 동안 울고 있는데, 친구가 찾아와 자기는 남편이 너무 못생겨서 도저히 살고 싶지 않다고 하여 서로 바꾸자고 하여 바꿔서 살았어요."

제주도 서귀포 어느 교회를 갔던 2010년 여름, 목사님은 서울 가셨고, 성도들은 샛별이 오는 줄도 몰라 서로 민망했던 중, 공연 도중에 교회가 눈물바다기 되어 의아해 했더니 이 교회가 바로 하와이 사진신부가 피땀 흘려 번 돈을 고향 서귀포로 보내서 세운 교회란다.

본토인 하와이에서 공연을 하기 원했지만 길이 열리지 않아 아쉬워하던 중, 16년 만에 박형서 선교사님이 주선해 주신 것이다.

러시아 선교사로 27년을 계시면서 모스크바 대학 교수들로부터 한민족 뿌리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며, 창조과학 탐사 팀을 수십 차례 안내하고 통역하다 우리 민족 뿌리에 관한 사명과 함께 많은 증거를 얻으신 것이다.

1월 15일 화요일, 하와이 빅 아일랜드 코나 공항에 내리자,  따뜻한 햇살과 파도소리가 샛별 예술단을 맞았다. 벤을 렌트하여 짐을 싣고,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렌트한 집은 코나 남쪽 바다가 270도 보이는 18에이커의 코나 커피 나무 농장 속의 멋진 집이었다. 단원들은 일을 하거나 숙제하고, 나는 닭도리탕을 만들어 단원들을 먹였다.

16일 수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열대 과일과 하와이 빵, 계란을 먹고 바다를 보며 감사 예배를 드리는데 모두 감사가 넘치는 얼굴이다. 우리를 태운 벤은 꼬불 꼬불 바다를 끼고 돌고 돌아 코나 시에 도착했다. 1820년, 하와이 최초로 세워진 모쿠아이카우아 교회 앞으로 가자 한복을 차려 입은 한민족 고구마 나눔 운동본부를 줄인  '한고운' 팀 20여 명이 보이고 흰머리 흰 수염, 북한 어린이들이 척척 할아버지로 부르는 박형서 선교사님이 오셨다.

코나 한인교회 담임이신 김교문 목사님게서 하와이 최초로 빅 아일랜드 하와이 섬에 선교사가 왔고 추장 부인이 기독교인이 되어 하와이 섬들을 통일한 코나 섬 추장이 하와이 왕국 왕이 되어 거의 모든 백성이 기독교인이었던 때도 있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매주 수요일마다 크루즈에서 내리는 천여 명의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위해 노방 전도하시는 김교문 목사님의 안내를 따라 교회 정문 앞의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한국의 소리와 춤으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었다.    

김교문 목사님과 사모님이 만드신 하와이 김밥 '무스비'와 하와이 도너스를 먹으면서 섬 반대쪽 도시인 힐로시로 떠났다.

북쪽 해변을 따라 가다가 섬을 가로지르는 새로 난 길로 접어들자 화산 돌들로 검은 광야가 펼쳐지고, 얼마나 높은지 바람이 차고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자 차는 내리막 길을 가기 시작했고 벌써 기후가 달라지고 있어 야자수를 비롯, 온갖 열대 과일나무들이 울창한 열대림이 시야로 들어 온다. '힐로'시에 온 것이다.

우리는 '한고운' 팀과 만나기로 한 무지개 폭포에 내려 사진을 찍고 서둘러 힐로 최초의 한인교회인 힐로감리교회로 가서 이말용 목사님을 만났다. 한인들이 세운 교회였지만 한인 성도는 모두 떠나고, 마침 한국 목사님이 담임을 하시게 되어 자료들을 찾아 정리해 놓으신 책자와 사진 액자들을 보여 주셨다.

교회 본당 벽에 걸린 액자 속의 색동저고리 한복에서 가슴 찡~하게 선조들의 조국을 향한 그리움이 느껴져 왔다.

이어 공연장소인 힐로 한인 기독교회로 오자 시애틀에서 살다가 이사 오신 여자 집사님께서 맞아 주신다. 시애틀에서는 볼 수 없는 노랗게 익은 싱싱한 파파야를 먹고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 한고운 팀과 고구마 심으러 가셨던 유영익 담임 목사님께서 오셨다.

코나 열방대학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힐로 한인교회에 담임 목사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100년이 지나도 변할 줄 모르는 시골마을에 정착하신 것이다. 수많은 여행객이나 선교 탐사 팀들이 다녀가는 교회이니 손님이 반갑지 않을 텐데 성도들은 정성으로 식사 준비를 해 놓았다. 한국 가게가 없으니 떡, 호박죽.. 모두 직접 만들 수 밖에 없으니 진미였다.

100년 전, 조국이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을 찾기 위해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세워진 한인교회,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번 돈을 바로 이 교회에서 모아서 조국 살리는 일에 앞장 선 것을 단원들에게 일깨워 주며 우리도 조국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 뜻을 따르자, 함께 모여 손 잡았다. 

박형서 목사님께서 북한 백성을 먹이기 위해 고구마를 심게 된 간증과 앞으로의 꿈과 비전을 나누시는데 이제는 온 세상의 한인 교회들이 뜻과 돈을 모아 우리 형제인 북한을 살리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단원들이 깨닫기 바랬다.

유영익 담임 목사님은 미리 보내드렸던 샛별 이야기 '별이 된 이슬' 책을 읽으셨고, 성도들과 이웃들을 초청하시어 뜻밖에 작은 교회당이 채워졌다.   

 천지창조의 소리, 통일을 소망하는 북소리로 공연은 시작되었고, 퓨전 국악 찬송에 이어 '사진 신부의 꿈'이 시작되자 곳 곳에서 눈물 흘리고 기립박수로 앙코르를 외쳤다.

시애틀에 있을 때에 꼭 시간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셨던 목사님은 앙코르를 요청했고, 단원들을 다시 불러 장고 합주와 태평소의 '비의 변주곡'을 연주했다.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코나 숙소로 돌아가야 하기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차에 짐을 실었다. 타코마 옆 긱하버에서 살았다는 노부부가 1시간 반을 운전해서 오셨다면서 단원들 먹으라고 사오신 파파야 한 박스도 감사히 챙겼다. 

'공연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있었어요!" "2세들이 와서 우리를 깨닫게 했어요! 우리 민족과 우리 교회에 대해 다시 배웠어요!" "목사님이 안 오면 평생 후회한다고 하셔서 오기는 했는데, 이렇게 가슴 뜨겁게 눈물이 날 줄 몰랐어요!"

장거리를 깊은 밤에 운전하는 것이 불안했는데 하와이 산을 오르며 구름을 넘고,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길을 밝히고 있어 광야의 밤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창조주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우리를 태운 벤들은 서쪽 바다를 향해 달렸다.

목요일, 아침 예배를 드린 후, 언니 형들은 직장 일을 하고, 동생들은 학교 숙제 하는 동안에 나는 숙소 주변 동네를 돌아보기로 했다. 코나 남쪽 바닷가 부자 동네, 길가에 자기 집에서 딴 과일들을 내 놓고 값을 써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돈을 통에 넣고 가져 간다. 도착하던 날 숙소에 오면서 길에서 샀던 과일들이 이제야 익고 있기에 또 사다 놔야 갈 때까지 현지 일들을 먹을 수 있다. 어느 집은 바나나가 수십 개가 달린 굵은 가지 채 놓아서 통째로 사고, 어느 집은 아보카도가 아프리카 아보카도처럼 어린아이 머리통만큼 컸다.   

'한고운' 박형서 선교사님이 점심을 초대해서 숙소로 가자 회원들인 권사님, 목사님들이 단원들을 자식처럼 챙겨 줬다. 스테이크보다 미역국, 무말랭이 무침을 단원들이 더 좋아했다.

열방대 강당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대학 스탭이신 1.5세 지미 최 목사님이 오셔서 반기신다.

"어제 힐로에서 공연하시고 난리 났다면서요?" "누가 그래요?" "힐로에서 농장하시는 장로님께서 코나에 오셔서 벌서 소문 났어요!" 태양이 서쪽바다 끝에 매달리는 즈음에 열방대 찬양팀이 찬양을 시작했고 사방에서 학생들과 스태프들 1천명이 몰려와 자리를 채웠다.

무대 위와 아래에서 춤추며 찬양하는 열방의 학생들과 함께 찬양하는 것만으로도 감사, 감격이었다.

드디어 가야금 소리로 '참 아름다워라'가 연주되고, 기타, 전자 바이올린 등의 퓨전 국악 찬양이 극장에 울려 퍼지고, 한국의 북들이 천지 창조의 소리를 외치는  '태초에......' 공연이 시작되면서 물이 바다를 덮듯이, 한국의 소리로, 창조의 소리로 언덕아래 코나 시를 덮어 나갔다.

공연 도중에 열방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질렀고, 누가 시작했는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박자에 맞춰 합창을 이어갔다. 조국 대한민국의 위상이 열방 위에 높이 높이 솟아 오르는 감격과 감사! 하나님이 택한 동방의 작은 나라,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언니 단원들은 15년 전인 2004년 시카고 세계 선교대회에서 공연을 하면서 만났던 열방대학 설립자 로렌 커닝헴 목사님과 사진을 찍었다.

하와이 음식 전문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바쁜 하루를 잠재웠다.

금요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쁜 날이다. 공연하느라 바빠서 그림의 떡이었던 하와이 바다로 들어가고, 저녁에는 열방대학 북한 포럼 시간에 공연이 있다. 어제 밤에 샀던 스노쿨링 도구들을 차에 싣고 수영복을 챙겨 한 시간을 운전하여 김교문 목사님이 아시는 한적한 코나 북쪽 쿠키오 비치로 갔다.

한고운 팀이 김밥, 무말랑이등 샛별 아침까지 싸오셨고, 우리는 한고운 팀을 위해 나름대로 아침을 챙겼지만 대부분 식사가 끝나셨다. 맑고 따뜻한 바닷물, 잔잔한 파도, 단원들은 벌써 스누쿨링을 하며 수많은 고기들에 매료 되었고, 서로 물에 빠트리며 신이 났다.

나는 수영복 입기가 귀찮고 어색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하와이 소금 물에 몸을 담그자, 차지도 덥지도 않은 물에 곧 익숙해 진다. 고운 모래사장에 누워 가슴 열어 하늘과 바다 끝을 보다가 김교문 목사님께서 성도가 운영하는 하와이 빙수 집으로 데려가 빙수를 사주시며 젊은 2세 사장을 소개해 주셨다.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열방대학 식당으로 가자 마침 북한 포럼에 오신 김진홍 목사님과 강선우 사모님이 계셨다.

2011년, 두 번째로 아프리카 순회공연을 할 때에 강 사모님을 모시고 함께 다녔기에 사모님과 단원들 모두 너무 반가웠다. 열방대학 북한 포럼 시간에 샛별이 30분 동안 공연을 하는 동안 천막 밖으로 야자수 그늘이 길게 드리우더니 해가 지면서 아름다운 하와이 섬의 석양이 배경이 되어 주었다.

언덕에서 울려 내리는 북소리에 이어 피리 소리와 10살 하원이의 맑은 목소리가 기타소리와 가야금 소리에 어울려 '큰 바다 있고, 큰 하늘 있는......아름다운 나라~' 애잔한 노래가 가슴 깊게 와 닿았다.

토요일, 오늘은 공연이 없는 날. 하와이 섬의 하나라도 더 단원들에게 보여주고 경험시키는 날이다.  하와이 빵에 아보카도를 두껍게 바르고, 옆집에서 산 바나나, 힐로에서 주신 파파야, 계란 등으로 아침을 먹고, 일찍 떠났다. 어제 밤에 사위 조니엘이 와서 우리 팀 벤 운전을 하니 더욱 안심이다. 남쪽 해변을 끼고 두 시간을 가자 몇 달 전에 폭발한 화산을 만났지만 다행인 것은 연방정부 샷다운에도 문을 닫지 않았고, 직원이 없어서 입장료를 안받았다. 불행인 것은 화산이 터져 다 날아가 버린 것이다.

지구상 유일하게 노천 마그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는데 수증기 올라오는 것과 훵하게 뚫린 빈터를 보아야 했다.  

다시 돌고 돌아 간 곳은 'Black Sand Beach' 화산 때문에 모래가 검은 바다란다.

정말 검은 모래였고 반짝이고 아름다워 보석 같았다. 곳 곳 바위나 물 속에 거북이들이 올라와 있어 처음에는 놀라서 보고 또 보았다. 오늘 아침에 구운 폭찹을 썰어서 싱싱한 로메인 상추에 학부모들이 싸준 쌈장과 멸치와 함께 먹으니 너무 맛이 있어 먹고 또 먹어 수영복을 입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단원들은 어제에 이어 바닷속에 뛰어 들어가 수영하고 모두 열심히 파도와 노는데 나는 보는 것만 감사하기로 했다.

숙소 가까이 돌아오며 단원들은 태평양 해지는 것 보는 바다에 내리고 나는 최우리 전도사와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첫날 공항에서 내려 코스코에 가던 날, 반갑게도 종갓집 김치와 현지에서 만들었는지 어설픈 김치가 있어 두 종류를 사서 숙성 시켜 놓은 것이다.  

폭찹 뼈들을 고기와 삶고, 김치와 통마늘 한 주먹 넣어 두부와 함께 끓이자 단원들이 두 그릇씩 먹는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2세는 한국말은 못해도 한결같이 김치찌개는 좋아했다.

주일, 아침 일찍 서둘러 코나 유일의 한인교회가 빌려 쓰는 '갈보리 교회'로 가자 기와 지붕의 멋진 건물, 그런데 벽이 없는 건물이었다. 날씨가 춥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으니 벽이 필요 없나 보다. 성도들은 백인이 많았지만 다민족 교회였다.

강단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와이 원주민으로 보였고 찬양 도중에 사모사인이 나와 사모아 말과 춤을 추고, 또 여러 나라 말이나 춤으로 찬양하는데 여자 남자, 뚱뚱하거나, 어리거나 늙거나 상관없이 영혼의 평안하고 행복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40분 정도 서서 찬양하다가 샛별이 천지 창조의 소리, 한민족이 일어나는 춤 공연을 시작하자 200여 명의 각 나라 성도들은 환호성 지르며 박수 쳤다.

단원들이 옷을 갈아 입는 사이 시간에 작품 설명과 하나님이 샛별에게 이루신 기적과 보여주신 사명을 간증했다. 지구를 사랑하고 자연을 지키고자 만든 부채춤 '숲' 공연과 우주의 소리 '사물놀이' 탕자를 맞는 아버지의 '한마당' 잔치가 끝나자 하와이 원주민인 목사님이 내 손을 잡는다.

"바로 이 팀입니다. 우리가 함께 공연하기 위해 찾는 팀이 바로 샛별입니다."

목사님과 이 교회 성도들로 구성된 훌라 공연 단이 하와이 주정부에서 지정한 공연 팀이었다.

목사님은 예배를 끝내기 전에 샛별을 위한 사랑의 헌금을 광고하시고, 공연 팀 총무에게 최시내 단장과 연락하도록 하셨다.

성도들이 앙코르를 요청해 퓨전 국악 찬양을 하고 싶었지만 전자 바이올린 최우리와 노래하는 세윤이가 베다니 교회 예배를 위해 어제 밤에 시애틀로 돌아갔기에 K-Pop 스타인 민이가 기타 치며 혼자 노래를 하게 했다.    

우리는 교회와 가까운 한고운 팀의 숙소로 갔고, 목사님, 권사님들이 엄마처럼 단원들을 또 챙겨 주셨다.

단원들은 온갖 과일, 고기, 미역국은 물론이요 라면까지 먹었다. 오후 1시 45분에 시작하는 코나 한인 선교교회로 가서 단원들은 지미 최 목사님을 따라 2세들과 함께 예배 드리며 민이가 찬양을 하고 성연이가 간증을 했다.

나는 어른들과 박형서 목사님의 북한을 '먹이고! 살리고! 구원하자!'는 설교를 다시 들으며 다시 은혜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방대학에서 샛별 공연을 보았을 것에 간단히 공연을 하였지만 성도들은 뜨겁게 화답해 왔다.

박형서 목사님이 한국에서 떡국 떡을 한 보따리 가지고 오셔서 평소에 오지 않던 열방대학의 2세들이 다 오고 여기 저기 한인들, 200여 명이 모두 모이는 대잔치가 열렸다. 예배가 끝나 모두 한고운 숙소로 모였고, 박형서 목사님께서 성찬식 준비를 하셔서 뜻밖에 교회가 아닌 집에서 성찬에 참여하며 뜻밖의 은혜를 받았다.

한고운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찬양을 하시고, 단원들 중에 샛별을 통해 받은 은혜와 하와이 공연을 통해 느낀 것들을 나누었다. 깜짝 선물로 김교문 목사님의 이양순 사모님 훌라 댄스 찬양은 뜻밖의 감사한 선물이었다.

 

월요일, 오늘은 하와이 섬 마지막 날. 한시라도 일찍 일어나 이 아름다운 경치를 눈과 가슴에 담고, 따뜻한 공기와 향기, 바람을 더 느껴야 한다. 아침을 열심히 먹고 너무나 아름답고 편했던 숙소를 떠났다.

겁이 없는 단장 시내는 비행기가 밤 11시 30분이라고 코나를 지나 공항지나 다시 30분 북쪽으로 아름다운 비치를 찾아 가는데 나는 늙어서인지 불안을 감출 수 없다..

바다에 가면 누군가 발가락을 다치게 되니 수영은 하지 말고 점심 먹고 발만 담그자고 명령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말로만 듣던 아름다운 바다가 아닌, 상상 속의 바다였다. 바로 백사장까지 아스팔트 도보가 나 있고 쉘터와 화장실, 샤워시설이 너무 깨끗하였다. 화산석이 덮여 있으니 잡초도 없고, 열대 꽃과 식물들이 백사장과 조화를 이루는데 발에 조개나 돌도 걸리지 않는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흰 모래를 밟으며 물속에 들어가 한참을 걸어도 물이 가슴까지 차고 바다 끝에 고래 한 가족이 물을 뿜어 오르며 춤추고 있었다.

"얘들아 점심은 늦게 먹는다. 수영해! 백만 불짜리 기회야 모두 들어가!" 

나부터 먼저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다가 고래를 보고, 튜브를 타고 파도에 둥실 둥실 떠밀려 오면서 넓고 큰 하늘의 흰 구름을 보는데 함께 오지 못한 시애틀 가족들과 성도들 생각이 나고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천국가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며, 얼마나 좋을까?' 배가 고픈지 단원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니 나도 물에서 나와 서둘러 샤워하고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밥을 차렸다.

어제 떡국 고명을 만드느라 우려낸 고기 국물에 남은 김치와 온갖 야채, 통마늘을 몽땅 넣고 밥을 새로 지어 아침 일찍 볶았더니 아직도 따뜻하다. 남은 반찬과 상추에 싸서 먹으니 꿀맛이다. 

다시 물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짐을 챙겨 코나 시내로 돌아와 단원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나는 2주 후에 피아노 콩쿨 나가는 단이가 피아노 연습을 하도록 김교문 목사님 댁에 내려 주고, 3면이 바다인 100년 넘은 건물로 들어가 단원들을 기다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제주도의 6배요 남한의 거의 3분의 2가 되는 하와이 코나 섬을 비롯 상업도시 호놀룰루가 있는 오하우 섬 등 8개의 큰 섬들과 127개의 작은 섬들의 군도를 이루는 대 하와이가 100년 전과 큰 차이 없고 사람들은 육지, 본토로만 나가려 하는가?

시애틀에서는 피아노가 귀찮아서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와이는 생산되는 농산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물자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오기에 피아노를 보기 어렵고 무엇이든 구하기 어려운 것이 많은 것이다.

최시내 단장의 제안에 따라 떠나기 전에 열방대 국기들 앞에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열방을 향한 꿈과 비전을 우리 가슴에 심었습니다. 끝날까지 열방을 품고 살게 하소서!"

공항에 도착하자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곳이 많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모기도 없고, 추울 걱정도 없으니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집으로 돌아가는 얼굴들이 도착할 때의 긴장이나 설렘 대신 늦은 시간인데도 모두 편안하고 만족한 표정이다.

이 비행기를 타고 아침 7시에 시애틀에 내리면 직장으로 학교로...... 딴 세상이 된다.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나자 박형서 선교사님께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모님! 좋은 소식 들으세요! 오늘 아침에 호놀룰루 조찬모임에서 샛별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한인 2세들이 하와이 사진 신부들의 눈물을 국악과 무용으로 만든 작품을 복음 방송에서 주최를 하고 그리스도 연합교회를 비롯하여 100년 넘은 교회들은 모두 공연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공연하는 날에 한인회에서 사진신부 후손들을 초대해서 앞에 앉게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님을 통하여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