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골 하고도 아주 벽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전기도 안 들어오는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도 때마침 학교가 세워졌기에 그 학교 덕택에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서울이 멀지 않은 동네여서 일류학교 다니는 애들이 부럽긴 했지만 어디에서나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줄 알고 모든 교과서를 통 채로 외우다시피 철저히 공부했습니다.
교과서라야 선배들이 쓰던 것을 값싸게 구입했습니다. 공부 못하는 선배의 것이 더 깨끗하기는 했지만 공부 잘하는 선배의 것을 사려고 애썼습니다. 어떤 것이 중요한지 표시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과외공부라는 것은 전혀 받아본 적도 없지만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한 것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교과서에는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지식이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격언이 매우 중요하지만 아무 지식이나 힘이 되는 것이 아니고"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지식"이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배우면서 더 큰 진리를 깨닫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과서(textbook)보다 사실입니다. 책에서는 지식을 배우지만 사람에게서는 인생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저에게 좋은 교과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지도력이 부족한 것을 늘 느껴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분단장과 부반장을 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장을 여러 번 했지만 수줍은 성격이 강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서 무엇이든지 먼저 하는 정신을 배웠기에 그런 대로 반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유학 와서 배운 것이지만 베드로의 이런 특성을 선도성(initiation power)이라 하고 이것이 지도력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열쇠랍니다. 선도성은 지도력의 핵심인 용기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를 알게 된 뒤부터는 베드로 보다는 바울이 더 친근해졌습니다. 그는 대단한 학자였는데 저도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정치적 지도력보다는 지식을 다루는 학문적 재능이 휠씬 강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26:24)
이것은 재판정에서 총독이 바울에게 한 꾸지람입니다. 한데, 이 말에서 저는 학문하는 사람은 반드시 미쳤다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책에 미쳐 삽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정말 "나를 본받으라"(고전4:16, 11:1)는 말을 자신 있게 할 만큼 휼륭한 교과사람입니다.
한편, 저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교과사람"이 될 만할까 하는데 생각이 이른 적이 있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목사로서 신자들에게, 그리고 대학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과연 "나를 본 받으라"고 자신 있게 교과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얘들아, 예수 잘 믿자. 너희 아빠는 신앙생활 반세게 동안 두세 번 정도 제외하고는 꼭 주일성수를 했느니라'
기껏 해야 그런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