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탈레반의 피랍사태가 벌어진 지난 40여 일간은 피랍자 가족은 물론 온 국민들에게 지옥과 같았다. 이 기간 동안 23명 중 2명이 살해되고 2명이 석방되는 등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머지 19명이 무사히 귀환을 앞두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자국민을 돕기 위해 방문한 민간인 자원봉사자를 납치, 감금, 살해한 비인간적인 테러로 말미암아 그동안 탈레반은 이슬람권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맹비난을 받아 왔다. 그들이 ‘19명 석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카드를 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잠재우면서도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얻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인간의 생명으로 자익을 계산하려는 탈레반의 비인간성이 바로 이것이다.

먼저, 이슬람권과의 연대다. 이슬람권은 이번 피랍사태로 인해 ‘모든 이슬람은 테러집단’이라는 오명을 쓰는 것을 매우 껄끄럽게 생각했다. 탈레반은 김지나, 김경자 씨에 이어 19명을 무사히 석방하면서 자신들을 ‘무자비한 테러집단’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피랍, 살해했지만 인도적으로 석방한 이슬람 세력’으로 미화하면서 반서구, 반외세적 정서를 가진 이슬람 사회와의 적극적인 연대감을 구성해가려 할 것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과거 서구의 식민지 체제 등을 거치면서 형성된 반감에 근거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테러’를 심리적으로 긍정, 합리화한다는 면에서 탈레반의 전략은 유효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그들이 내세운 협상 조건 중 ‘기독교 선교 금지’ 조항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들은 종교 자유가 보장된 전세계에 이슬람 사원을 얼마든지 세우고 대학생들을 입학시켜 선교하면서 역으로 자신들의 나라에는 선교사가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살해하고 추방하면서 이제는 봉사단원들까지 죽이는 것이 합당한가? 이슬람권에 있어서 서구의 대변자처럼 인식되는 기독교의 선교 금지 조항을 이번에 탈레반이 내세웠다는 것은 자신을 이슬람의 대변자, 이슬람의 수호자로 인식시키면서 이슬람권 안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한다는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외에도 전세계에 자신들의 위상을 드러내는 효과도 있다. 탈레반은 한국정부를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면서 정부 차원의 대등한 협상을 벌이며 자신을 일개 테러세력이 아닌 정부로 인식시켜 왔다. 한국군 철군 요구도 이런 맥락이다. 또 탈레반은 피랍 기간 동안 전세계 언론들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며 자신들을 과시했다. 이제 나머지 피랍자들을 다 석방해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이미 얻은 셈이다.

그동안 불철주야 수고한 정부 관계자들과 이를 위해 애써 준 온 국민들, 기도한 기독교인들에게 이번 무사귀환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진짜 숙제는 지금부터다. 이번에 한국정부는 ‘테러집단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룰을 깼다. 이것은 9.11 사태 이후 전세계의 반테러 정책에 어긋나는 일이다. 한국정부가 향후 외교적, 정책적인 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될 것이고 테러세력은 한국인 납치를 위해 전세계에서 눈에 불을 켤 것이다.

교회에도 몇가지 과제가 남았다. 한국교회는 이번 사태로 인해 아프간 선교가 전면 금지되고야 말았다. 그동안 아프간에서 벌여 왔던 수많은 구호활동과 선교활동이 이제는 아예 불가능해졌다.

한국교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의 선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과 함께 대안을 내 놓아야 한다. 말 그대로 우월주의적 선교에서 섬김의 선교가 필요하다. 요즘 기독교계의 우월주의적 선교에 대한 비판과 섬김의 선교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그러나 무조건 가서 봉사하고 온다고 그것이 섬김의 선교는 아니다. 여기서 ‘우월주의적 선교’라는 말은 타문화를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현지와의 협조도 없이 ‘일단 가보면 뭐가 되겠지’라는 안일한 태도의 선교다. 이것은 선교가 아닌 여행이며 현지 선교의 문을 닫게 하는 무책임한 행위다. ‘섬김의 선교’는 현지 선교계와의 협력과 조율 속에 장기적인 안목과 전문성을 갖고 현지인을 복음에로 돌이키는 선교다. 이렇게 한다면 닫힌 문도 열리게 된다.

이번 피랍사태는 있어서는 안될 비극이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한국인들도 테러로부터 안전할 수만은 없다는 교훈과 한국 선교의 각종 맹점들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어찌되었거나 나머지 19명이 무사히 석방된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타깝게 먼저 세상을 떠난 2명의 숭고한 피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