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저지도민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국에 와서 그 동안 이사를 몇 번 했으나 뉴요커로서 줄곧 뉴욕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맨하튼을 사이에 두고 있는 뉴저지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인(知人)으로부터 이런 정감(情感)이 넘치는 인사를 받았던 것이다.
몸은 비록 멀리 타국에 있어도 마음만은 고국에 있듯 사는 우리네 모습이기에 왠지 마음이 푸근하기까지 한 인사였다.
뉴저지도민으로서의 달라진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다만 주거환경 즉 주거지(住居地)가 복잡한 아파트에서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배경에 아담한 정원이 있는 조용한 단독주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처음에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기분에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아라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그리 얼마 가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자라는 풀들이 정글을 이룬 우리 집 정원과 달리 이웃의 정원은 그야말로 정성스레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의 자태를 한껏 뽐내듯 하고 있으니 더욱 비교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앞집의 할머니와 단둘이 사시는 이탈리안 할아버지는 날마다 아니 하루 종일 정원에서 사시는 것 같았다.
창문너머로 보아도 얼마나 정성껏 정원을 손질하시는지 마치 어린 손주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듯 하기까지 보였다.
하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사시는 집이 궁금해 역시 정원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며 집 구경을 청하였더니 흔쾌히 허락하시고 앞 마당을 거처 뒤 마당 그리고 집안 구석 구석을 신 바람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구경시켜 주셨다.
비록 큰 저택은 아니었지만 구석구석 정성과 사랑이 담긴 할아버지의 따뜻하고 푸근한 손길을 느끼기에 충분한 노 부부의 가정이었고 행복이 넘쳐 보이는 집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다시 한번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 집 관리하는 법을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말씀 드렸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짧게 대답하셨다.
“You can do it”
집으로 돌아와 잠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집은 가족이라는 사랑의 공동체가 함께 하는 장소이기에 이처럼 관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관리여하에 따라서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잠만 자고 나가는 썰렁한 여관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집은 삶의 보금자리를 넘어 부(富)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도 집을 세 채나 가지고 있는 엄청난 부자라 하겠다.
하나는 지금 가족이 살고 있는 주택이고 또 하나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의 집 성전이며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비록 컴퓨터 인터넷상의 가상공간(假想空間 cyberspace )이긴 하지만 엄연히 주소가 있는 교회 홈페이지인 것이다.
이렇게 부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버지께서 잘 관리 하라고 위탁(委託)하신 집이기에 마냥 좋아하기보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가정 집은 자주 공개할 기회가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지만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출입이 가능한 성전과 홈페이지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믿음의 가족들이 주인의식으로 내 집 이상 잘 관리들 하였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앞으로 아버지께서 허락하실 더 큰 새집을 위해 지금부터 더욱 더 긴장의 끈을 동여매고 안과 밖 그리고 어느 한구석 소홀함이 없이 쓸고 딱고 다듬어 잘 관리해야 하리라.
손님이든 방문자이든 교인이든 불신자이든 같은 민족이든 이방인이든 심지어 불청객까지라도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편안하고 즐겁게 내 집처럼 출입할 수 있는 대문(大門) 큰 예쁜 집이었으면 좋겠다.
틀림없이 이런 집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일”이 많이 생길 텐데 그나저나 어떻게 잘 관리해야 하지?
대문(大門)을 걸어 잠글 수도 없구.....
“You can do it!”
미국에 와서 그 동안 이사를 몇 번 했으나 뉴요커로서 줄곧 뉴욕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맨하튼을 사이에 두고 있는 뉴저지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지인(知人)으로부터 이런 정감(情感)이 넘치는 인사를 받았던 것이다.
몸은 비록 멀리 타국에 있어도 마음만은 고국에 있듯 사는 우리네 모습이기에 왠지 마음이 푸근하기까지 한 인사였다.
뉴저지도민으로서의 달라진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다만 주거환경 즉 주거지(住居地)가 복잡한 아파트에서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배경에 아담한 정원이 있는 조용한 단독주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처음에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기분에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아라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그리 얼마 가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자라는 풀들이 정글을 이룬 우리 집 정원과 달리 이웃의 정원은 그야말로 정성스레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의 자태를 한껏 뽐내듯 하고 있으니 더욱 비교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앞집의 할머니와 단둘이 사시는 이탈리안 할아버지는 날마다 아니 하루 종일 정원에서 사시는 것 같았다.
창문너머로 보아도 얼마나 정성껏 정원을 손질하시는지 마치 어린 손주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듯 하기까지 보였다.
하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사시는 집이 궁금해 역시 정원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며 집 구경을 청하였더니 흔쾌히 허락하시고 앞 마당을 거처 뒤 마당 그리고 집안 구석 구석을 신 바람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구경시켜 주셨다.
비록 큰 저택은 아니었지만 구석구석 정성과 사랑이 담긴 할아버지의 따뜻하고 푸근한 손길을 느끼기에 충분한 노 부부의 가정이었고 행복이 넘쳐 보이는 집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다시 한번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 집 관리하는 법을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말씀 드렸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짧게 대답하셨다.
“You can do it”
집으로 돌아와 잠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집은 가족이라는 사랑의 공동체가 함께 하는 장소이기에 이처럼 관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관리여하에 따라서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잠만 자고 나가는 썰렁한 여관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집은 삶의 보금자리를 넘어 부(富)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도 집을 세 채나 가지고 있는 엄청난 부자라 하겠다.
하나는 지금 가족이 살고 있는 주택이고 또 하나는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의 집 성전이며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비록 컴퓨터 인터넷상의 가상공간(假想空間 cyberspace )이긴 하지만 엄연히 주소가 있는 교회 홈페이지인 것이다.
이렇게 부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버지께서 잘 관리 하라고 위탁(委託)하신 집이기에 마냥 좋아하기보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가정 집은 자주 공개할 기회가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지만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출입이 가능한 성전과 홈페이지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믿음의 가족들이 주인의식으로 내 집 이상 잘 관리들 하였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앞으로 아버지께서 허락하실 더 큰 새집을 위해 지금부터 더욱 더 긴장의 끈을 동여매고 안과 밖 그리고 어느 한구석 소홀함이 없이 쓸고 딱고 다듬어 잘 관리해야 하리라.
손님이든 방문자이든 교인이든 불신자이든 같은 민족이든 이방인이든 심지어 불청객까지라도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편안하고 즐겁게 내 집처럼 출입할 수 있는 대문(大門) 큰 예쁜 집이었으면 좋겠다.
틀림없이 이런 집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일”이 많이 생길 텐데 그나저나 어떻게 잘 관리해야 하지?
대문(大門)을 걸어 잠글 수도 없구.....
“You can do it!”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