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를 지나면서 두 가정과 연이어 이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두 가정 모두 동부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습니다. 늘 그렇듯, 섭섭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을 보며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이리 저리 바쁜 일이 많았을 텐데... 그래도 목사라고 찾아오셔서, 자신이 지나고 있는 삶의 자리를 나누며 기도를 요청하시는 성도님들의 진심을 마주하며 참 고마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다음에 만날 때까지 이들을 지켜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인연을 우리가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도 참 특별한 것인데, 같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가 하필이면 이역만리 이 미국 땅 워싱턴 주, 그것도 훼드럴웨이란 곳에서 한 교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면, 이런 우리의 만남 가운데 얼마나 큰 그분의 뜻이 있는 것일까요?
요일 3:18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가 얼마나 '사랑', '사랑' 말을 많이 합니까? 교회만큼 사랑을 이야기하는 곳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정말 사랑이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나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선대하지 않는 우리의 사랑이 정말 진실한 사랑인가...라는 것입니다.
눅 22장에 보시면 예수님께 입맞춤을 하고 있는 유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48절에 말씀하시기를,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하십니다. 당시 입맞춤은 존경과 헌신의 표시였습니다. 유다는 그런 존경과 헌신의 입맞춤을 예수께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사실, 유다는 로마 군인들과 군호를 짜고 예수를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겉과 속이 전혀 달랐던 유다의 입맞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입맞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입맞춤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우리가 예수께 그런 입맞춤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 선친께서는 12년 전 전립선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10여일 곡기를 끊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나가, 아버님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평생 '장사'라는 말을 듣고 사셨던 아버님께서 쪼그라든 노인의 모습으로 신음하며 누워 계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쪼그라든 아버님께 드린 말씀은 딱 두 마디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불효 자식을 용서해주세요...그리고 사랑합니다." 돌아보면, 그 때만큼 아버님께 진실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유들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그것이, 우리들이 이곳에 교회로 부름 받은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