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전학생이 하나 왔는데 아주 밝은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금새 가까워졌고, 학교가 끝나면 축구도 같이 하고 숙제도 같이 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 집에 놀러갔다가 여러 번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구 집은 인터폰이 달린 커다란 철문을 지나면 파란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2층인지 3층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커다란 본관을 지나면 작은 수영장 하나가 달려있는, 당시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저택이었습니다. 그런 놀랄만한 저택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소개해주던 친구가 왜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지... 그날 친구 어머니가 스파게티를 해주시면서, "홍석이 스파게티 좋아하니?"라고 물으셨을 때, 그냥 멋쩍게 "예~"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스파게티라는 음식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지만, 그냥 놀란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몇달이 지나 그 친구가 제게 무언가를 건내 주며 꼭 오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뭔가 보았더니 생일잔치 초대장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 생일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짜장면으로 때우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 친구는 아이들을 선별해서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초대장을 돌렸습니다. 뭔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물이었습니다. 아이들마다 뭘 가지고 가겠다, 뭘 가지고 가겠다...하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선물을 가지고 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띵똥~' 한 시간은 족히 늦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머니를 조르고 조른 덕에 예쁜 자석 필통 한 개와 연필 몇 자루를 사서 생일잔치에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잔치 상에 남은 것은 빈 접시 뿐이었지만, 제가 늦어서 그런 것이니 괜찮았습니다. 그저 친구 생일 잔치에 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중국 집에 뭐든 시켜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한사코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선물을 친구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제가 건네준 선물을 보고 아이들 한 둘이 피식 웃었습니다. 생일을 맞은 친구도 고맙다고는 했지만 그리 기쁜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습니다. 저는 잠시 후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에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엔 여름 캠프가 한창입니다. 40여명의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매일 60여명이 2주 넘게 교회에서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도와야 할 일이 좀 더 많았었는데 올해는 일꾼들이 많아서 청소나 하며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교회가 매일 잔칫집 같아서 좋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한 영혼도 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했습니다. 세상 잔치에는 환영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는 모두가 환영 받아야 마땅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문지기로라도 주의 궁정에서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