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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이혼하는 사람들.... 관계가 회복됐으면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지만, 얼른 헤어지라 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겪는 부부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혼을 바람직하게 생각할 수 없는 크리스천들의 이혼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 앞에 닥친 이 문제를 더 젊었을 때 다루지 못한 것은, 답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떻게 말해도 마음을 다칠 사람들을 염려해서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이라고 정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혼을 반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도 있고, 구약 시대에 행했던 일부다처 방식이나 이혼도 원래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있다(마 19:4-9).
또한 호세아는 창녀인 아내의 일탈에도 끝까지 견딜 것을 명령받았으며, 신랑과 신부 관계인 그리스도와 성도는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영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무엇으로 보나 이혼은 성도가 해선 안 될 일이고, 성도가 아니더라도 많은 상처를 남기며 대가를 치르는 불행한 일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혼한 크리스천은 교회에 계속 다니기 어렵게 된다. 이혼한 부부가 계속 교회에 남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조직이라도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한쪽이 너무 큰 잘못을 했거나 부정, 폭력 등으로 이혼이 불가피할 때, 피해자 쪽은 교회에 남기도 한다. 이혼이라는 결정을 하기까지 조언하고 도움을 준 것도 교회 지체나 목회자일 때가 많다.
이런 경우 외에는 교회에 남아 있기가 쉽지 않다. 수군거리는 이야기도 들릴 수 있고, 여러모로 덕이 되지 않아 피해를 주는 것만 같고, 무엇보다 부끄럽고 당당하지 못해서 더 그렇다. 자녀가 있을 때는 자녀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래저래 이혼한 사람은, 특히 여성들은 죄인처럼 위축되는 것을 많이 본다. 특히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부정한 사람처럼 느껴져 괴로워하며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곤 한다.
어쨌든 이혼에 대한 시선 때문에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힘든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회에서 이혼이 늘어날수록 교회도 구성원이 줄어갈 것은 분명하다.
2
얼마 전 이런 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한 여성의 사연이 도착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고자 애쓰던 그녀는 이혼 후 재혼을 한 것도 아닌데, 이혼한 자체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또 이혼 후에 다른 남자를 사귄 것도 아닌데, 잠시 흠모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은 헤어진 뒤의 깨달음을 통해 전 남편과의 재결합도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미 자신은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간음한 것이고, 이혼의 잘못을 한 번 저지른 상태라 재결합의 자격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슬퍼하고 있었다.
긴 사연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생길 수 없는 고민이었다. 이런 분이야말로 정말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것은 죄에 대해 당당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작은 죄에 민감하게 되어 시시각각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자신을 미워하며, 이런 육신을 지닌 채 더 오래 살기보다는 속히 예수님이 오시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분의 끝없는 자책은 바람직하다고만 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꼬여버린 과거에 얽매여 슬퍼만 하며 사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혼은 잘못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불가항력적인 일도 있다. 노력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 이겨낼 수 있다면 좋지만 못 이길 수도 있다. 그런 일로 자신을 괴롭혀 슬퍼한다고 잘못이 조금이라도 상쇄될 수 있을까?
이혼하지 않은 이들도 다른 일에서 자주 주님의 뜻을 어기며 살아간다. 이혼했다고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니다. 주님 앞에서 상을 받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이혼 때문에 '페널티'를 받진 않는다. 오히려 이혼은 지상에서 더 많은 불편함과 대가를 치르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이혼했더라도 과거에 매이지 말고, 회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을 괴롭힌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뉴에이지적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아니어도,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가장 바라시는 분이다. 그렇게 도탄에 빠져 사는 것은 원치 않으실 것이다.
어떤 부모든, 자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삶이 순탄치 않더라도 극복하고 가정을 유지하면서 인내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식의 삶은 자식의 것이다. 부모의 뜻은 이미 자녀들이 알고 있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살라고 명령할 수 없고, 불행이 닥친다 해도 자기 길을 간다는데, 무작정 반대할 수도 없다.
하나님도 바로 이런 마음 아니실까 싶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뜻을 품고 계시지만, 그 길이 아닌 곳으로 간다고 몹쓸 죄인이라고 하시거나, 호적에서 파 버리지 않으신다. 구원은 이런 모든 상황에도 위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보증을 받는 일이므로, 매사에 지나치게 영적으로 집착할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각자 살아내고 겪으며 헤쳐나갈 일이다.
혼났다고 골 부리거나 오래 자책하는 자식보다, 속상해 하다가도 싹싹하게 금방 다가오는 아이가 예쁜 법이다. 속이 없어서가 아니라 야단치고 난 부모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혼을 하게 됐다면 어쩔 수 없다.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돌에 맞을 일도 아니니, 자신을 추스르고 당당히 건강하게 살 필요가 있다.
자녀는 회초리를 맞고, 아물고, 다시 부모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징계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자국으로 남을지 몰라도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해 다시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
같이 살면서도 남만 못한 사이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같이 살면서 밖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결혼을 유지한다 해도,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고 했다. 여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고, 정죄할 자격도 아무에게도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일찌감치 선언하신 것이다.
물론 치명적인 위험이 아니라면, 이혼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앙이 달라 어쩔 수 없는 경우 상대방이 원한다면 보내주는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떠나거든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경우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셨느니라(고전 7:15)".
억지로 잡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일이 화평을 깨는 일임은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3
그렇다면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눈 죄, 그리고 하나님이 처음에 만드신 질서를 깬 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 그것은 우리 세대 전체에게 주어진 타락의 죄이기도 할 것이다. 모두 인지하다시피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를 너무나 멀리 떠나왔다. 변명이라고 한다면, 오염된 물에서 태어난 처지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성경의 기준이 있어도 국가에서 이혼을 합법화하고 있으니, 각 나라의 법에 영향을 받고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법으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 분명하다.
국민으로서는 의무지만, 하나님의 법에는 위배되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지만, 국가의 법에 따라 다른 종교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에 따라 자녀나 이웃을 타 종교로 가도록 방치하는 것을 죄가 아닌 시민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국가 권력에는 복종하고 법을 잘 지키라고 성경에 말씀했듯, 그런 것들을 죄라고 할 수 없다. 요셉과 다니엘도 이집트와 바벨론에서 그렇게 살았다. 이처럼 국가법에는 합법인데 성경이 금기하는 문제들 중 하나에 이혼도 개념적으로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모세 시대에만 해도 이미 인간은 창조 질서로부터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졌다. 예수님의 말씀에 단서가 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이 강퍅하므로 너희 아내를 버리도록 너희를 허락하였으나 처음부터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였느니라(마 19:8)".
그런 자들이지만 예수님은 창조의 원래 의도를 알려주신 것이며, 가능하면 그에 맞게 살라고 하신 것이다. 최대한 지켜야 하지만 지키지 못했을 때는 다음으로 넘어가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사연을 보내온 자매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고, 내가 보낸 위와 같은 내용의 답장에 마음의 짐을 덜었다면서,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사례를 글로 써도 좋다고, 묻지도 않은 배려를 보내왔다. 그때 쓴 답장의 마무리 부분이다.
"이제 부디 밝고 자신 있게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 번 지은 죄를 평생 따라다니며 두고두고 묻지 않으십니다. 자매님도 제자들이 출석을 게을리하거나 시험을 잘 못 보면 F학점을 줄 수 있지만 다음 학기에는 다시 평가를 하시겠지요. 졸업 때까지 그 학생에게 낙제점을 주지는 않잖아요.
힘내십시오. 우리는 타종교처럼 있지도 않은 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시는 창조주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는 자이며, 주님의 가족이 된 사람들입니다. 가능하면 재결합에 성공하시기 바라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밝고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죄하고 욕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소신껏 처리하고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회계보고하는 것이다.
이 자리는 정죄의 심판석이 아니라 상을 결정하는 자리이며, 지옥에 보내거나 벌을 주는 자리가 아니다. 좋은 것만 보고한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노력도 않고 결혼을 저버린 자가 아니라면 각자 자신이 감당하면 된다.
겪어 보지 않고는 아무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이혼이다. 교회도 이혼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가르쳐야겠지만, 이혼이 많은 세상에서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을 품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면 목숨 걸고 최대한 예방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열 배 더 고민하며, 이미 갈라선 사람들은 또 다른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어쨌든 불순종하게 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후 삶의 새 페이지를 여는 것..., 이것이 크리스천이 이혼에 대해 정리해야 할 생각이 아닐까 싶다. 이것이 불행하게 헤어진 이들을 위한 변명이 되었으면 한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